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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여금 Jan 27. 2024

어이구, 임자 만났네

나 자신을 알라Ⅰ

나는 평소 참을성도 많고 인내심이 꽤나 넘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한번 보고 단번에 걸러내어 상대하지 않는 사람이나 수시로 선 넘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100번의 기회를 준다. 아니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학대하며, 그보다 많은 기회를 주거나 수년간 지켜본 사람도 많다.



필요할 때 우쭈쭈해서 써먹으려는 수작들이 빤히 보임에도 표현하지 않았던 적이 허다했다. 습관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 보려 노력했던 것 같고, 은근히 측은지심은 또 넘쳐서 내가 챙기거나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어이없는 강박 아닌 강박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수백 번의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는 마치 나만의 생존본능인 듯 내 인생에서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삭제시켜 버릴 테지만 그 한계치 직전까지도 아낌없이 내어드린다.


어쨌든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걱정고민 하나 없이 잔잔한 바다처럼 온화하고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침착하고 차분해 보인다거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뭐 그렇게 곱고 아름답게 자랐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했겠지만, 세상물정 모르고 순둥해 보여서 이용해 먹기 딱 좋겠음을 비꼰말인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리 본인이 유아기 아이처럼 까불거려도 무엇이든 다 받아 줄 것처럼 생겼는지 유치원 선생님을 직업으로 보기도 했었고 막내로 보기보다 포용력 넓은 첫째로 보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어릴 적 환경으로 인해 긍정이나 부정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도 했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과 널뛰는 감정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하고 꺼내야 할지 도무지 정리가 안되어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기도 했다. 그리고 스몰토크에 약하고 낯을 가려, 스무 살 무렵부터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장착한 사회적 웃음과 몸에 베인 a.i공감능력, 과잉친절이 나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실상은 답답한 것을 못 참는 아주 급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친하다’라고 생각될만한 사람에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겉모습과는 달리 머릿속은 하루에도 수만 번씩 쓰나미가 휘몰아 치곤 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잔잔함과 평온함을 깨뜨리는 참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불평등, 부조리, 불합리, 무례함, 그리고 내가 분명하게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거짓말하고 둘러대며 하는 가스라이팅이다.

나는 직급이나 가진 부와 명예를 떠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하대하는 무례함을 기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상대에게 최대한 웃으며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 편인데 나의 그러함을 만만하게 보고 선을 수시로 넘나들며 간을 본다거나 기싸움하는 것은 나의 분노버튼을 누르는 행위였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열손가락 안쪽이지만 그 분노버튼이 눌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억압이나 기싸움 등이었는데 거기에서 굽히며 들어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윗 상사나 나에게 월급을 주시는 최 고위 상사 일지라도.


많은 것을 바란 적은 없었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달란 것뿐. 동물이 아닌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어디서 그런 용기나 어처구니없음이 나오는지 나도 알 수 없었고, 스스로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여태껏 살아왔으나 최근 관심 있게 보게 된 사주명리학 유튜브에서 내가 [임자일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거나 굽히지 않는, 자존심과 고집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야말로 “임자 만났네”할 때 쓰는 그 임자란다.


하하.


그랬다. [가만 놔두면 세상 평온하고 내 모든 걸 내어 드릴 수도 있지만, 건드리면 물어요]하는 임자였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아부하고 숙이고 비위 맞추며 살지 못했던 걸까. 그 많은걸 참고 억누르고 살았으면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엔 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큰 분노심이 일었던 걸까. 그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이 순식간에 풀리는 듯했다.


그 밖에도 나는 MBTI의 가장 큰 수혜자다. 살면서 나 같은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나는, 누구라도 공감해 줄 수 있지만(그게 악인일지언정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겠지 하며 이해했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왔으나 이제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그저 별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저 많고 많은 인간유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마치 종교라도 찾은 듯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알기 전까지는 누구나 나처럼 생각하며 사는 줄 알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아성찰을 하며 자신을 엄격하게 되돌아보는 줄 알았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가 빤히 보이는 줄 알았기에 눈치껏 내가 하는 배려를 왜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 않는지 의아했고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인가 하며 서운했었다.

이제는 그런 서운함도 그저 [다름]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말과 행위에 [나]를 투영해 나의 존재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은 우선 타인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저기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 “가 아니라

“저기요, 기분 나쁜 일 있었나요? 저에게 왜 그러는 거죠?”가 되어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고, 훨씬 더 중요함을 최근 들어 깨닫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려고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남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이해하고 관대해 지려 노력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믿음을 주고 있는지.


그동안은 가족을 비롯한 주위에서 하는 말들만 듣고 나에 대해 판단하고 비판했었다. 아니, 비하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 말없고 예민한 아이. 꼭 고쳐야 하는 성격을 가진 아이. 어릴 때부터 세뇌당하듯 듣고 자라온 말이라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도 퍽 괜찮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칭찬받는다거나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성적도 중상위권은 대부분 유지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아부하거나 화려한 말발로 나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을 뿐, 야근이나 철야도 마다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어 인정받기도 했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때는 그것을 몰랐고 자존감 부족으로 그 사람들의 애정을 의심하고 집착하며 비난의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며 나 스스로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제는 내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고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 다르듯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 나갈 것이고  내가 싫지 않아 졌다.

타인의 비하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 대해 이해했을 때 드디어 자기혐오를 멈출 수 있었다.




특히 경쟁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거나 외면하려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상대방을 깎고 밟아서 그 우위에 서려는 사람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그들은 흡혈귀처럼 자신보다 약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빨아먹으며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는 참으로 하찮은 사람들이다. 하찮은 사람들에게 쓰임 당하지는 말자.


내가 말랐을 때는 징그럽다며 살 좀 찌라고 난리였고 그나마 살이 좀 쪘을 때는 저 떡대 좀 보라며 너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며 난리였다. 아직도 내 키의 평균 몸무게에 훨씬 못 미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그 중간 어딘가 즈음에는 딱 적당했던, 보기 좋았던 몸도 분명 존재했을 텐데 나는 딱 보기 좋네, 괜찮네 하는 소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날씬한데 살 뺄 때가 어딨냐며 말해도 “아니에요 뱃살 보면 놀랄걸요”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러면 또 그 말에 아니꼬워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때로는 화장을 하면 했다고, 안 하면 안 했다고 내키는 대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직업이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평가의 대상이었고 사랑받기에 부적합한 몸이었으니까. 나도 내 몸을 사랑할 수 없었다. (BGM : 화사의 I love my body.)


놀랍게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 역시, 누군가를 평가할 만큼의 완벽한 모델의 몸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평균이라고 할만한 몸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싫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외모에 대한 평가는 싫어하겠지..' 하며 그 상황에서도 멍청하게 역지사지를 하고 있었다.

흡혈귀에게 내 손으로 주삿바늘을 꽂아 직접 수혈해주고 있었던 거다.


얼마 전 댄스가수 유랑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엄정화 님이 과거 영상들을 보며 “난 저때(20,30대) 내가 예쁜 줄도 몰랐어 너무 억울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마흔이 넘어, 젊을 적 사진을 보면 이목구비의 아름다움이나 예쁨을 떠나 젊음 그 자체로 너무나 반짝반짝거리고 빛이 났다. 심지어 징그럽지도 않았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언제나 나는 [부족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나 자신을 알라Ⅱ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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