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나의 20대. 연애를 하고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며 창작에 대한 영감의 충만함이 몽글몽글 차오르던 시절
싸이월드에 [a.k.a옛날사람] 글을 올리며 꽤 많은 공감을 얻고 주위의 몇몇 사람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었더랬다.
그 이후로는, 나이를 탓하고 감성의 메마름을 탓하며 단어조차 기억이 안 나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마음먹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나는 참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구나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나 애써 덮어놓았던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를 굳이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 한다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더 고통을 주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바깥 활동 없는 오랜 육아로 인한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오히려 너무 많은 잠을 자서 탈이었던 전과는 달리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고 알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망각은 인간을 지켜내는 생존본능이라 했던가.
그러나 두 번째 브런치북에서 첫사랑에 관한 짧다면 짧은.. 마무리조차 미처 못한 챕터를 쓰면서 어느새 나는 스무 살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벚꽃 휘날리던 그날의 스잔함과 따스함, 그 냄새와 공기 속으로.
셀프치유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앞으로는 좀 더 밝고 설렘 가득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물론 그것도 쉽지야 않겠지만.
작년 초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을 우연히 알게 되어 나도 어릴 적 막연한 꿈이었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작가 신청 후 탈락의 고비를 한번 맛보았었다.
그리곤 '에잇.. 역시 내 필력으로 작가란 건 어림없구나' 싶어 의기소침해져서 한참을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더랬다. 그러나 지난 화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감을 준 누군가가 있었고, 또 이미 브런치의 작가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지인분을 보며 묘한 질투심이 일었다.
나는 명품이라든가 좋은 집, 좋은 차에 대해선 ‘좋겠네’ 싶고 부럽긴 해도 딱히 질투는 하지 않는 편인데 (그게 그 말인가.. 하하.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슥슥 아주 손쉽게 멋진 그림을 그려 낸다거나, 손으로 아주 예쁜 작품들을 뚝딱 만들어 낸다거나 사진을 잘 찍고, 쉽게 쉽게 읽히면서도 감탄할만한 글을 쓰시는 분들의 재능을 보면 그렇게 질투 나고 샘이 날 수가 없다.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된 후 또 한 번의 좌절감을 느꼈던 건, 많은 분들이 이미 수십, 수백 개의 글을 쓰셨고 프로페셔널한 크리에이터 배지란 것도 달고 계신데 나는 긴 시간 동안 허송세월 보내며 뭘 했나 싶어 자괴감마저 느껴졌었다.
당연히 그분들에게도 시작이란 게 있었고, 오랜 시간 꾸준히 갈고닦은 세월의 흔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비교하게 되고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다. 작아지고 하찮아지는 느낌이랄까. 전편 [질투에 대한 고찰]에 쓴 딱 그 느낌이었나 보다. 하하.
이제 나의 그 질투심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볼까 한다. 급히 마음먹지 않고 남과 비교하기보다 묵묵히 내 갈길을 간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운동과 외국어 공부에 루틴을 만들고 지켜 왔던 것처럼 글쓰기 또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남들보다 뛰어나진 못하더라도 그 꾸준함으로 어딘가 비벼볼 언덕이라도 생겨주지 않을까.
글이 하나하나 쌓여 갈 때마다 나를 채워 간다는 느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흐물거리던 나의 멘털이 조금은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항상 나의 뒤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내편, 아군이 생긴 느낌이랄까.
마치 [슬픔을 견딜 수 있는 백신]을 맞은 것처럼.
생각해 보니 정말 백신을 맞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일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마주했을 때, 처음 열이 심하게 나거나 뻐근하게 근육통이 오는 고통을 겪고 나면, 다음부터는 그 병균을 조금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면역력이 생겨나는 것처럼.
작년 12월. 일단 다시 도전은 해야겠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시작을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해하다 일단 그냥 내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갈피가 잡히고 강한 의지가 생기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약 서너 편의 글들이 막힘없이 써내려 져 갔었다.
그렇게 써진 글들로 2024년이 시작된 1월 초 다시 작가 신청을 했고 두근거리던 기다림 끝에 기분 좋은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내 필력 어때요? 글 좀 쓸만한가요?”의 허락이나 심사의 영역이라기보다 "나는 이런 스토리와 서사를 가진 사람이에요. 궁금하지 않아요?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줄래요?"의 영역이란 걸 깨달았다.
유명하고 존경받을만한 대단한 필력의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간 묵묵히 걸어온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의 집합소.
그곳에서 나도 함께 글을 쓰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영광스럽고도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단번에 통과가 됐었더라면 그 감사함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2024년 새해 첫 시작이 나쁘지 않다. 아니 뭔가 예감이 좋다. 오랜 우울의 바닥을 찍고 닫아놨던 마음을 열어, 이젠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보려 한다.
P.S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부족함 넘치는 저의 글을 따뜻한 관심으로 읽어 주시고, 라이킷과 정성스러운 댓글 달아주신 작가님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