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삶] 고치긴 뭘 고쳐요?
이따금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 위해 동네 맘카페에 들어가 보면 이런 제목들이 참 많다.
아들/딸 내성적인 성격 고민이에요
내성적인 아이 태권도 보내면 어때요?
내성적인 아이 스피치학원 보내볼까요?
[내성적인 성격]이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몹쓸 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고쳐서 바로 잡아야 할 큰 흠이나 단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들 안달이다.
특히 [외향적] 부모는 아이의 [내성적/내향적] 성향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듯하다. 물론 내향적 성향의 부모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녹록지 않음을 이미 느껴봤기에 똑같은 어려움을 내 아이만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테다.
예전에 봤던 유튜브 채널에서 초등 저학년 아이 둘을 인터뷰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한 명은 외향적, 한 명은 내향적 성격이었다.
외향적 아이는 자기 성격이 너무 좋으며 맘에 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반면 내향적인 아이는 자신이 소심한 성격이라며 바꾸고 싶다고 자신 없게 말하며 움츠려 드는데 어릴 적 내 모습이 투영되어서인지 마음이 아팠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배려심 깊은 성격을 단지 [소심 :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 하다는 부정적 단어로 치부해 버리며 '그건 고쳐야 하는 거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해봐',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나가서 놀아야 해'등등의 말을 일삼는 어른들의 영향이었으리라.
연예인 노홍철 님이 대학교에 찾아가 고민 상담해 주던 영상이 있었다. 어떤 남학생이 평소 [진지충]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어떡하면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표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노홍철 님은 "우선 답변하기 전에, 왜 꼭 밝아야 하죠? 진지한 게 본인일 수 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도 학창 시절엔 항상 혼나는 아이였다고 했다. 왜 그런 옷을 입어? 왜 그런 머리색깔을 해? 왜 그렇게 말이 많고 시끄러워? 그랬던 그가 방송일을 시작하며 위치를 옮겼을 뿐인데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상도 주고 돈까지 준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엔 자신과는 전혀 달라서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이스트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와의 대화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단다.
누군가 그 진지함을 불편해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내가 안 맞는 거지 그 사람 때문에 나를 바꿀 필요는 없는 거라고, 자신이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든지 간에 어떤 장소에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분명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 쓰일 곳이 있다고.
[내성적 성격]은 장미꽃은 빨갛고 개나리꽃은 노란색인 것처럼 그 사람 고유의 타고난 특성이다. 개나리꽃에게 "너는 왜 장미꽃처럼 빨갛지 않고 화려하지 못해?"라고 말할 것인가. 고양이에게 "너는 왜 강아지처럼 살갑게 다가와서 나에게 충성하지 못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단 말이다.
얼마나 어이없고 폭력적인 언사인가.
장미꽃이 예쁘다고 생각했다면 장미꽃을 사거나 심으면 되고, 강아지가 더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면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를 입양하거나 예뻐하면 그만인데 개나리를 장미로 바꾸려는 노력은 누가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납득하기 힘든 기이한 말과 행동을 주위 사람들에겐 서슴없이 하고 있는 거다.
본인의 여섯 살 아들이 낯가리고 예민하고 소심하다며 한숨 쉬던 지인이 있었고, 나는 "그 나이대 아이들은 대부분 낯 가리는 시기가 있잖아. 좀 더 크고 학교에 가면 나아지지 뭐, 예민한 건 창의적이고 예체능에 소질 있는 아이일 수도 있겠다! 예술가들이 그렇게 예민하다잖아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나의 그 말은 투명한 공처럼 벽을 치고 순식간에 튕겨 나갔고, "으휴 지 아빠 닮아가지고.. 언니도 좀 그런 성격이잖아. 지아빠 같은 성격 되면 안 되는데.. 짜증 나"라는 말만 덩그러니 남아, 그녀의 가족과 나를 포함한 [내향인] 세 사람을 동시에 녹다운시켰고, 순간 그녀는 정체 모를 위너가 되어 우리들을 짓밟고 우뚝 섰다.
하하.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우리들의 [내향성]이 그녀의 무엇을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던 걸까.
라는 착한 생각 따윈 물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생각 없이 내뱉고 타인의 다름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깎아내리며 함부로 하는 너의 그 무례함도 40 평생 바꾸지 못했으면서 누가 누굴 평가하려는 거지? 맘에 안 들었으면 결혼을 하지 말던지 왜 너의 불안과 예민, 부족함을 나에게 투사하다 못해 네 남편에 대한 미움까지 나에게 투사해 막말하려 드는 거니?
워워. 컴 다운
앞서 [슬픔을 견딜 수 있는 백신] 편에서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줬다고 했던, 내현 나르 성향의 이 지인과는 거리를 두기로 했다.
_거리라 쓰고 손절이라 읽는다_
그러나 아주 오랜 세월 사람들이 [내향인]을 보는 시선은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 큰 [외향인]의 시선으로 외향적이지 못한 이들을 억측하고 깎아내리며 내향성은 나쁘고 불편한 것, 바꾸고 고쳐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최근 들어서야 MBTI라든가 유튜브 심리학 채널이 많이 생겨나면서 "나는 에너지의 방향이 내면을 향해 있어서 바깥활동에 에너지가 금방 소진되고 나만의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그것을 충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그나마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억압받고 움츠렸던 많은 내향인의 삶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잘못된 게 아니라고, 틀린 게 아니라고. 나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달라고. 조금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야호.
[내향성]은 틀린 게 아니지만, 그러한 내향성을 부모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시선 그대로를 흡수하고 영향받으며 자라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부모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앞서 말한 그 내성적인 어린아이는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싶다고 힘없이 말하는 대신.
“저는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을 가졌어요. 조금 느리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저는 신중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래요. 제 장점을 살려서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주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
라고 활짝 웃으며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성향의 인간이건 간에 마치 고장 난 가전제품을 본 것처럼 뜯어고치려 하기보다 누구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다름을 인정하면 내 마음도 훨씬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넌 신중하고 꼼꼼하니까 이런 일을 해보면 좋겠다. 넌 활발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일이 참 잘 맞겠네. 넌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앉아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로구나 그림 정말 멋지다. 그냥 그렇게.
이제, 슬픔을 견딜 수 있는 백신을 맞지 못했던 그 작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다 먹고 난 과자 상자조차 그냥 버리지 않고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로구나. 미술이나 국어시간을 좋아하니까 그런 일을 찾아보면 좋겠다. 너의 마음을 말로 바로 표현하는 게 어렵고 힘들다면 네가 좋아하는 글로 써서 표현해 보는 건 어때? 너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싶어. 너의 마음을 알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돕고 싶거든.
그냥 사람마다 다른 거야. 친구가 많다고 꼭 좋은 건 아니란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두 명이면 충분해. 넌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당연히 널 사랑하니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