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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여금 Feb 15. 2024

질투에 대한 고찰

나를 미워하긴 싫으니까


너처럼 되고 싶은데 안되니까,

나를 미워하긴 싫고

대신에 너를 미워했던 거 같아


- OTT 드라마 [이두나] 中 -




왜 가까운 친구사이에 질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걸까. 주변 사람의 성장과 발전에 마냥 기뻐하고 축하만 해주면 좋으련만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영원히 내편이 되어줄 것만 같고 전생에 잃어버렸던 나의 반쪽이 아닐까 싶게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을 것만 같던 친구에게 어느 순간 질투의 감정을 느끼고 또 받게 되다 보면 죄책감이 들거나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제어하기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이라서' 느끼는 본능의 감정이기에.




질투 (嫉妬/嫉妒)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예) 질투가 나다.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예) 그는 관옥의 출생은 물론이고 그녀의 학력과 아름다움에까지 질투를 느꼈다.

3. 칠죄종(七罪宗)의 하나.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이른다.




평소에는 고만고만한 동네와 환경, 스펙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가끔 여행을 간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놓이다 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곤 한다.

그중에는 물질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안정감과 아우라던, 학력과 직업의 고 스펙이던, 가진 게 많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지언정 나도 모르게 위축되거나 내가 가진 결핍이 더욱 확대되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상대방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걸 충분히 느끼면서도 왠지 거리감이 생기고 그 인연을 길게 끌고 가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었다.


나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방어기제가 작동되어선지 주변에 가까이 두지 않게 되고, 그러한 이유로 질투의 선상에 놓이지 않게 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더욱 큰 자격지심으로 인간관계에 있어 나를 옭아맸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후회를 해 본다.


아무튼 친구란 게 그렇다. 나와 비슷한 환경의 나와 비슷한 결핍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며 물리적, 심리적 위협(열등감, 자격지심 등)을 가하지 않을 만한 안정적인 사람들과 비슷한 결의 고민이나 상처들을 나누고  함께하며 친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게 안정감을 주며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끼리 어느 순간 서로의 환경과 삶에 작은 격차가 생겨나게 되면서 조바심과 심한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평소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하] 등급을 매겨놓은 지인이 자신을 제치고 올라가려 하면 더욱 발작/분노를 일으키는 듯하다. 때론 권모술수를 이용하거나 이간질로 고립시키고 끌어내리려 하는 것도 종종 당하거나 보아왔었다.


상대방의 발전과 성장이 일종의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마음속 깊숙이 들어가 보자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라기보다 드라마 속 대사에서 처럼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열등감, 자격지심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방어기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점점 벌어지는 그 격차로 인해 서로 멀어지거나 홀로 남겨질 것 같은 불안감 이라던가 소유욕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되어 얽히고설켜 질투라는 한 단어로 툭 내뱉어지는 것은 아닌지.


질투가 나쁘다거나 잘못된 감정이라는 것은 아니다. 세상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 다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건강하게 풀어내며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그 온갖 감정의 쓰레기를 주체하지 못해 상대를 흠집 내고 깎아내리며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단 한 계단이라도 먼저 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적어도 쟤보단 낫잖아?’하며 남을 깎아내리고 우월감 느끼며 자기 위안 삼으며 사는 인생이라.




여러 가지 환경이나 조건이 나보다 훨씬 나음에도,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힘든 점들은 외면한 채. 단 한 가지 구석이라도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비아냥거리거나 저평가하고 짓밟으려는 심리를 가진 이들이 내 주변엔 꽤 있었다.(ing)

        

마치 자석처럼 결핍이 결핍을 끌어들인 것인지, 결핍이 없는 이들은 내가 느낀 질투나 자격지심으로 멀리멀리 쳐내어서 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둘 다겠지만)


아무튼 과거엔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하고 일부러 나를 깎아내리며 변명 아닌 변명까지 할 때도 있었다. 피곤하고 번거로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랑이라고 여겨질 만한 모든 것을 말하지 않거나 철저히 숨기려 할 때도 있었다. 상대방이 자랑을 하면 부러울 게 없더라도 최대치의 리액션을 하며 부러워했었다.

나와 같은 배려를 상대방도 조금은 되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으로.


이제는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내 탓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만족을 모르는 그들의 지옥 같은 마음까지 내가 어찌해 줄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변명하거나 숨기고 받아주던 행동들이 그들이 나에게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비아냥거리고 무례할 수 있게끔 강화시킨 행동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족들끼리 느끼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주위 사람들과 서로 힘든 점을 보듬고 이해하며 격려하고 살아가는 건, 책에서나 보는 이상주의적 세계에 불과했던 걸까.


친구사이, 남과 여, 형제자매, 부모 자식, 거의 모든 관계에 있어 [질투]는 아주 많은 부정적 감정들의 불씨가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 팽배한 비교와 경쟁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슬픔과 우울, 불안, 수치심, 증오, 욕망, 짜증, 절망, 자괴감등을 낳는다.


그러한 수많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마주하거나 또한 내 안에서 느낄 때면 썩 유쾌하지 않은 수많은 감정들이 또다시 나를 휘감곤 한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그러한 본능의 감정들이 점점 더 짙어지는 인간유형을 자주 보아 왔기에 인간관계가 점점 더 힘들어짐을 느낀다. 혼자가 편하면서도 '그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거지'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한다.




그래도 글을 쓰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그동안 인간이란 존재를 너무 이상화시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살았던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인 것을 부모에게 부모로서의 사랑을 갈구하고, 친구에게 친구로서의 우정과 믿음을 갈구하며 직장 상사에게 상사로서의 책임감과 신뢰를 갈구하며 혼자 배신감과 좌절을 느끼며 살았던 건 아닌지. 평생의 숙제로 안고 가야 할 문제이겠지만, 일단 인간에게서의 지나친 기대감은 내려놓으려 한다.


그러나 힘들고 난처한 상황에서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도 있었기에, 그분들을 기억하며 세상은 그래서, 그래도 여전히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나를 포함한, 세상에 나를 미워하긴 싫어서 남을 미워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랑의 백신이 놓아질 수 있기를. 

(BGM : 아이유 love win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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