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냄새는 싸도 싸도 못 감춘다
"이런 마할것들. 어디서 사람을 들여도. 허, 참!'
"너무 그러지 말아요. 유명한 배우며 가수들이 드나든다잖아요. 돈만 잘 버는데"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안팎으로 꼭 같은 것들끼리 어울린다더니, 참. 어디서 그런게 나왔을까?"
"어디서 나오긴! 나 혼자 낳았어요?"
"치마폭에 싸고 돌지만 말고 내 눈 앞에 안 보이게 해요! 내 그것들 꼬라지도 보기 싫으니!"
"아이고, 내가 이날 이때꺼정 고생 고생 하면서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사는데, 그렇다고 자식을 내쳐요?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멀쩡한 회사 다닌다더니 댄스홀이 말이 돼? 기생 오래비같은 꼬라지 하고"
"알았어요. 알았어. 내 대문 안에 발도 못 디디게 하리다"
신문로에 댄스홀이 생겼고 유명한 배우, 가수들이 댄스를 배우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삐닥 구두를 신고 모피를 걸친 영순이 그들과 어울려서 나오는 모습이 종종 보이자 궁금했던 영천 사람들이 화성옥으로 왔다.
딸 아들 할 것없이 자식이라면 배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채소장사 떡장사를 하며 육남매를 키웠다. 조신하고 손끝 여문 큰 딸처럼 나머지 자식들도 자라길 바랐는데 신여성이니 뭐니 하면서 바람이 잔뜩 든 둘째 딸은 아픈 자식이라기 보다 속을 뒤집어 놓는 자식이었다.
비단저고리는 해 입어도 여우 꼬리로 만든 털 목도리는 엄두도 못 내던 할머니에게 사치스러운 물건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저 여자들 일이겠거니하고 말았다.
집 구석을 뒤져 발칵 뒤집을 일이야 있겠냐 싶어 댄스홀을 하든 구걸을 하든 다 큰 자식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일찍 안채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집에 와있던 영순 내외는 급히 다락으로 몸을 숨겼다. 조용히 숨어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햇볕 받을까봐 마루 안쪽으로 밀어넣어두던 반짝거리는 구두를 치우지 못한게 사단이었다.
불같은 성격이지만 큰 일이 아니고서는 큰 소리치거나 살림을 부수거나 하는 일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꼬장꼬장한 성격 안에 자식에 대한 속상함을 꼭꼭 눌러 담아두었는데, 자신의 눈을 속이고 몰래 들어온 것에 화가 난 할아버지는 그 다짐을 짚단 타듯 화르륵 태워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 마할 것들. 내 집에서 썩 나가~~~~~~~~~~"
빳빳하게 뻗은 수염에서 길게 내지르는 고함소리에 놀란 영순 내외가 다락에서 뛰어내려오다 데굴 데굴 굴렀다. 허겁지겁 신발도 챙기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뒷 모습에 대고 할아버지는
"이 옘병할 것들! 댄스홀을 해? 땀병날 것들! 속 병 날것들!!!!"
하며 온갖 욕을 퍼부었다.
"아이고, 자식한테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지, 세상에나. 이 망할 영감탱이"
할머니도 마당에 퍼질러 앉아 소리를 높였다.
"이 부끄러운 것도 모르는 것들. 어디 상놈의 집구석을 만들어! 다시는 얼씬거리지도 마!! 할망구도 저것들을 자식이라고 들여?"
안방으로 뛰어들어간 할아버지가 여우 목도리며 가죽 가방, 금박이 화려한 비단 옷을 마당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쉽게 지나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할머니는 전략을 바꿔 곡을 멈추고 일어났다.
"물건이 무슨 죄람? 왜 죄없는 물건을 던져요. 육십 평생 영감이 나 이런거 하나 사줘봤어? 딸이랑 사위나 되니까 내가 털목도리라도 둘러보지!"
"아이고, 저런 저런 속없는 할망구가 있나.... 창피한 줄도 모르고"
"창피는 무슨! 차라리 나를 쳐요. 왜 사람은 못 치고 물건만 집어 던지는데!"
"어머 이게 다 무슨 일이예요?"
영순 부부가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보고 정균이 아무래도 사달이 나겠다 싶었는지 급히 내려가 큰 누나를 불러온 것이다.
영순과 함께 병은도 올라왔다.
"아버님 저랑 나가세요"
병은이 한 쪽 팔을 잡고 끌었다.
"마할 것들, 집 안 말아먹을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