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작가
정재승 교수님께
무더운 여름도 어느덧 막바지네요. 벌써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교수님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과학콘서트’에 이어 이번 여름에 저서 ‘열두 발자국’을 통해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소 뇌에 관심 많았던 저로서는 책으로나마 뇌 과학자이신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대컨대 남은 21세기는 뇌 과학의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인간의 뇌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씩 뇌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는 자신의 뇌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저서 <어린 왕자>에도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는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말이 있죠. 각종 실험 데이터에 기반하여 아름다운 뇌의 무궁무진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흥미진진했습니다.
많은 현대 우리나라 성인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계 다른 어느 나라 보다 경제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및 자살률이 높은 것은 왜일까요? 치열한 경쟁 및 여러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50달러에서 최근 3만 달러 수준에 육박할 만큼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데 반해 그에 걸맞은 의식 수준이 향상되었을까 의심이 듭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의식 수준이라고 함은 특히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언제 기쁨을 느끼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좇다 보니 방향성을 상실하고 방황하기 쉽다고 봅니다. 책에서 언급된 선택과 결정, 그리고 결핍에 관한 여러 사례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면이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사례 중에 미신에 관한 연구들도 흥미로웠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비롯해서 저도 알게 모르게 혼자만의 징크스나 미신을 갖고 있었거든요.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욕구와 능력의 괴리가 발생할 때 비합리적인 신념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부터 복잡하게 보이는 중요한 정치 사회적 결정까지 그릇된 신념 체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겠습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이 무섭게 인간을 추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교수님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와 종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여러 서적을 뒤적이고 있답니다. 과거 인간들이 어떻게 해왔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시간 축으로 사고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미래를 예측할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요? 다른 종교를 공부하다 보면 어떻게 상이한 집단이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해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내린 저만의 결론은 융합하는 사고야말로 기계나 컴퓨터가 가지기 어려운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도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책에서 언급하셨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유(有)를 무(無)의 영역으로 연결하는 능력이야말로 창의성이고 곧 가장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관해 교수님과 더욱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당부처럼 세상에 대한 저만의 지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저는 제 진로에 관해 고민이 깊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된 직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란 말을 떠올리면, 과연 지금 살고 있는 방식대로 살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라는 끊임없는 의구심이 듭니다. 바쁘게만 살아오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만 급급했지 ‘왜?’라는 철학이 부재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에 있는 C(choice, 선택)이라는 샤르트르의 말이 요즘 따라 더욱 와닿습니다.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서 책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과정’이라고 위로해주시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라틴어 구절 중에 ‘Optimus magister bonus liber(최고의 스승은 좋은 책이다).’라는 말이 있죠. 비록 멀리 계시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 교수님과 대화하는 것 같아서 참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2020년에도 뇌에 관해 연구해 주셔서, 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남은 여름 잘 이겨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또 뵙길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2018년 도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