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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노는만큼 성공한다]

마음놓고 놀기

by 살살이v

조선일보 칼럼에서 뜻밖의 해학과 웃음을 주는 칼럼니스트를 만났다. 개성있는 '미력창고' 도 돋보였고, 나름 문화심리학자라는 자기 소개도 재밌었다. 우연히 최진기의 인문학 소개 책을 보다 보니 익숙한 저자의 이름이 보여서 당장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완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한 셈이다.


저자는 여가학을 창시할 만큼 노는 것을 설파하는 데 탁월한 식견이 있다. 세바시 강연 등을 통해서 만나 보았지만, 그의 재밌는 입담 속에 놀랄만큼 숨겨진 내공이 느껴지곤 한다. 책 제목만큼이나 노는 만큼 성공하는 것은 진리이다. 여기에 의문이 생기는 사람은 성공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06년 초판이라 현재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법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한국 사회의 본질을 관통하는 식견은 날카롭다. 특히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아주 쉬운 비유로 풀어내는 능력은 본질에 대한 충분한 재해석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책 중간에도 소개 되지만, 교수는 크게 3부류가 있다고 한다.



1.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교수 및 전문가)

2.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한다. (내용의 본질에 대한 높은 이해도 뿐만 아니라 청중/독자를 위한 공감능력까지 겸비)

3. 쉬운 내용을 어렵게 설명한다 (본인도 내용을 잘 모르면서, 청중/독자도 배려하지 못하는 부류. 양심도 없고 아는척 하고 싶은 부류)



학교에서 수많은 수업과 강사/교수 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었다. 실제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가진 교수/강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강의의 원래 목적이 타인에게 지식/정보 전달 혹은 감화 및 동기부여라는 것을 고려할 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앞으로 더더욱 요긴할 것이다. AI가 절대 쫓아오지 못하는, 인간만의 능력이 바로 이 공감능력일 것이다. 여기 관련해 책 중간에 재밌는 대화가 소개되어 있다.



"똥 싸?"

"똥 싸."

"똥 싸??"

"똥 싸!!"

"똥 싸~"



얼핏 단어만 나열하면 "똥싸"의 5번 반복이지만, 우리 인간이 이 단순한 단어의 나열에 스토리를 입히는 순간 완벽한 대화가 된다.

(학교에서 좀 논다는, 일진 친구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화장실에서 만나서 나누는 대화다.)

1. 똥싸? --> 담배 안피고 진짜 큰 볼일 보는거니?

2. 똥싸. --> 응. 나 개인적인 볼 일 중이니 말 걸지마. 끝나고 나갈게.

3. 똥싸? --> 구라치는 거 아니고 정말 똥 싸는 거 맞니?

4. 똥싸!!--> 사람을 못 믿어. 진짜 똥싸고 있으니 저리 꺼져!

5. 똥싸~~ --> 알았어. 발끈하기는 ^^; 똥 잘 싸고 이따 봐~



탁월한 비유다. 저자는 단순히 이러한 재밌는 예시 뿐만 아니라 어려운 심리학적, 학술적 용어를 쉽게 녹여낸다.



우리가 가장 추구하는 창의성과 공감능력에 관해 노는 것 만큼 좋은 재료가 없다고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1. 논리적 추론

2. 시각화



우리가 어떤 내용을 떠 올릴때 위의 두가지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코끼리를 떠올려 보자. 코끼리의 울음소리나 촉감보다는 회색의 긴 코를 가진 코끼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 오를 것이다. 이런 시각화의 폴더가 다양할 수록 다채로운 상상력 및 창의성이 배가 된다고 한다. 애들에게 미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화가가 되기 위해서 미술관/박물관을 간다기 보다 이런 낯설게 하기를 통한 시각화의 다양화가 그 본래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내 장담컨대 모든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순간을 더 값지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언제 죽느냐에 관한 불확실성이 살아 있는 동안의 고통과 고뇌를 깊게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백퍼 공감하는 바다. 인간이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을 년/월/일/시/분/초 로 나누었다는 것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동안



"왜 인간들은 시간에 숫자를 부여했지?"



라는 것에 의문 없이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결론은, 이러한 무한한 시간과 불확실성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시간이 반복되고 하루가 반복되고 일년이 반복되도록 구성했다는 것이다. 오늘 일을 그르치더라도 반복되는 내일의 해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실상은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완전 다르다. 일년 전 3월과 이번 3월도 완전 다른 시간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질 못한다. 그래서 새해마다 다짐을 하고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면서 올해는 다르겠지라고 믿는다. 인위적인 그 숫자에 대한 것들도 어찌보면 사회가 만든 거대한 통념일 것이다. 이를 극복해야 비로소 시간에 쫒기지 않고,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즉 시간에 대해 우위를 갖게 되지 않을까.



평소에도 노는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더욱 마음 편하게 놀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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