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
허무함...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형주성을 빼앗긴 관우가 여몽의 손에 참수 당하고, 장비는 장강과 범달에 의해 어이없이 시해당하고, 무리한 이릉전투에서 수풀 속에 진지를 구축하는 어리석음으로 명을 다하는 유비. 한 왕조의 부활을 꿈꾸며 도원결의로 굳게 맹세했으며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치열한 머리싸움을 했건만 그들의 최후는 하나같이 무상하였다. 조조 역시 관우가 죽은 후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가 두통을 호소하며 어이없이 생을 마감한다. 화타의 말로 보아 당시 머릿속에 꽈리(aneurysm) 혹은 두개내혈종 등이 있지 않았을까. 환시를 보는 것으로 보아 후두엽 쪽에 병변이나 혈관성 치매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여튼 남을 의심하는 조조 성격이 오히려 그를 죽게 만드는 비극이야 말로 우리네 인생과 묘하게 닮아 있다.
삼국지를 볼 때마다 보는 관점이 바뀐다. 이것이 또한 삼국지를 다시 읽게 되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주목한 점은 바로 공명과 관우의 라이벌 관계이다.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된 정사삼국지를 보다보면 제갈량은 전술의 천재라기보단 탁월한 정치가라고 한다. 후대에 유교를 받든 명나라에서 나관중이 필요 이상으로 제갈량과 관우를 미화한 것을 감안한다면, 정사 삼국지의 정치가로서의 제갈량이 더욱 신뢰가 간다. 그가 오나라 신하와 손권을 설득시켜 적벽전투를 이르게 하는 점을 보아서도 훌륭한 언변으로 무장한 외교가이자 정치가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형주성에 홀로 남겨진 관우가 왜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는지 다시금 보게된다. 삼국지를 연구하는 학자에 따르면 관우와 제갈량은 처음부터 2인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갈량은 관우가 혼자 형주를 지키면 동오에게 침략당하고 위험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를 혼자 형주성을 지키게 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가만히 보면 관우가 죽고 나서야 제갈량이 승상으로서 1인자 입지를 굳히게 된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이릉전투에 제갈량이 따라나서지 않는 점도 처음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었으나, 제갈량이 정치적 야욕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조금 알것도 같다. 백수앞을 볼줄 하는 신출귀몰한 재능을 가진 제갈량이 유비가 어리석게 산속에 진지를 구축할 정도를 몰랐을까? 제갈량의 주특기가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처방을 내는 것이다. 유비를 측근에서 수십년간 보좌하면서 개인의 성향 및 능력을 누구보다 빠삭하게 파악하였을 텐데 유비의 역량을 진정으로 몰라서 이릉전투를 홀로 보냈을까? 이릉전투에서 유비가 죽은 다음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가. 제갈량은 명실공히 1인자의 위치에 등극하게 되고 유선(아두)을 허수아비로 세워두고 촉한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게 된다. 오히려 자기를 시해할 또다른 정치적 후한이 두려웠기 때문에 수려한 출사표로 자신의 명분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을 한다고는 하나, 사실 그 동기역시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는 낙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형주성부터 점령한 후 장안과 낙양을 점령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다. 현재로서도 지형적으로 촉한 (서안)에서 대륙으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 50만 대군을 이끌고 보급로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하면서 위를 쳐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선의 말대로 그냥 이대로 3국 체제로 남아 있으면 안되었을까. 보통 전쟁은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할 때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일으킨다고 한다. 정치적 거물인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죽은 상황에서 제갈량의 입지 및 명분이 줄어들었음에 틀림없다. 조조가 조비, 하후씨 등 다음 정권을 위해 준비해 둔 것에 비해 제갈량이 후학을 양성하지 않았음도 혼자 정권을 독식하려는, 어찌보면 독재자의 풍모를 언뜻 내비친다. 결론적으로 내부적으로 정적이 많았기에 무리한 북벌을 하지 않았을까. (설민석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제갈량이 강유를 총애하여 2인자로 키우긴 했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관우 역시 형주성에서의 행동을 보면 이전에 관우와 많이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정치적으로 제갈량에게 밀려 촉한 내에서 입지가 크게 줄어듬은 물론 거기에 조바심 마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관우 답지 않게 성급한 출정 및 부하 관리 등으로 보아 본인의 의식 내지 잠재의식 속에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그런 관우의 속내를 이용하여 정적 관우를 제거했다라고 보기에 큰 문제가 없는 대목이다.
설민석씨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있다. 그는 단순히 역사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을 넘어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생산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생산, 재해석 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인류가 지식을 축적하고 과학 기술을 발달 시키게 된 근본 동력이 바로 문자를 통해 100여년도 되지 않는 생애의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글을 통해 타인과 지적 교류를 하면서 기존 생각과 새로운 생각들이 묘한 접점을 이루게 된다. 이는 동시대 뿐 아니라 과거 혹은 앞으로 태어날 미래 인류와의 조우를 의미한다. 여튼, 글을 통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삼국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코하마 미쓰테루의 <삼국지>이다. 아마 젤 먼저 보게 된 삼국지라 인물상이 굳혀진 것 같다. 암튼 볼때마다 새로운 삼국지. 2천년 전 이야기 맞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