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영상을 보게 되었고 지난 기억과 감정의 교차로 인한 감정이 솟아올라 오랜만에 한 글자 적어봅니다.
얼마 전 발생했던 시청역의 차사고 영상을 어제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원본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총 9명이 사망하고 7명의 부상자를 낸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사건.
급발진이냐 아니냐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수사당국과 재판에서 잘 밝혀지겠죠.
가슴 아픈 기사 한 줄 때문에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렇게 감정이 올라오더군요.
그 기사 한 줄은..
'사망자 중 4명은 XX은행 승진 회식 자리를 갖던 중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참변을 당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이랍니까. 은행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 그 안에서 살던 치열한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단순히 승진 회식자리에서 잠시 담배피러 나간 사이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세 달이고 반년이고 푹 쉬어보지도 못했을 것이 뻔하니 그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일만 하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버린.. 남아 있는 가족들도 그 상심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16년 간 다녔던 직장생활에서 기억에 깊숙이 박혀있는 3가지 일들이 떠오르더군요. 모두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떠난 직장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회사를 물리적으로 떠난 경우와 회사와 함께 세상을 떠나버린 경우가 섞여있는 안타까웠던 기억들.
Episode.1 - 우리 다신 보지 맙시다.
5년 차 대리시절이었죠. 당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의욕이 한창 넘치던 30대 중반이라 업체 PM님과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전화와 미팅을 진행했었어요. 회사와 회사가 만나 일을 진행하다 보면 각자 자기 입장에서의 고충이 분명히 있게 되고 그것을 얼마나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느냐가 사실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의욕 넘치던 5년 차 외국계기업 대리였던 저와 중견기업 과장이었던 PM과의 일은 정말 숨 쉴틈도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진행되었어요. 야근은 그냥 기본이었구요.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자리 잡기까지의 3달을 밤 9시 전에 퇴근한 날이 손에 꼽혔습니다. 주말출근은 말할 것도 없이 잦았고요.
안 그래도 루틴 한 업무들로 바쁜데 프로젝트까지 하다 보니 정말 정신이 없더군요. 그만큼 예민해지고 성격은 날카로워지더라고요. PM님도 이상하리만치 많이 피곤해했어요. 저도 초췌해져 갔고 그 PM님도 한 없이 초췌해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전쟁 같은 3개월이 지나, 안정화 기간을 거쳐 5개월 만에 프로젝트가 일단락되었어요. 마치고 뒤풀이 회식에서도 서로 웃으며 지난 시간을 곱씹으며 술잔도 기울였고요.
그렇게 한 1년 정도 지났을까...
작은 규모의 사업이 진행되어 다시금 해당 업체와 계약이 되어 일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서로 일이 바빠 연락이 없었던지라 새로 오신 분께 작년 PM님의 안부를 물었죠.
돌아온 충격적인 대답..
"X과장님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 에??!...
순간 벙찐 표정으로 담배를 물어 들고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으나 동일한 대답뿐.
작년 저와 함께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후 다른 프로젝트에 다시 투입되었다고 하더군요. 저와도 수도 없이 많은 야근과 철야를 했었는데 그것들을 새로운 곳에서 또다시 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철야를 한 어느 날.. 새벽에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도중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순간 멍해지고 먹먹해지는 기분. 작년 프로젝트 당시 저와도 많은 언쟁이 있었고 나름 말다툼 비슷한 것도 있었는데. 그리고 프로젝트 완료 후 웃으며 술잔 기울이며 우리 다신 보지 말자며 농담했었는데. 그 말이 진짜가 되어버릴 줄이야..
이후 한동안 먹먹한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좋은 곳에서 현생에처럼 치열하게 살지 마시고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계셨으면 합니다...
Episode.2 - 회사에 인생 갈아 넣지 마.
예전 중견기업을 다니던 30대 초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대리였던 저는 차장님 한 분과 사수/부사수 개념으로 업무를 진행했었죠. 그러다 당시 차장님이 다른 일로 인해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고 그렇게 저도 다른 업무를 맡게 되어 서로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바닥 바쁜 거야 하루이틀 아니니까. 그렇게 또다시 정신없이 일을 하던 도중. 사내메일로 감사인사 메일이 도착합니다. 발신자는 당시 나이 42세였던 예전 사수였던 차장님.
'안녕하세요 XX사업부 XX차장입니다. 이렇게 메일로 인사드리게 되어... 블라 블라..'
퇴사자의 인사메일이더군요. 갑자기 퇴사소식을 접한 저는 바로 전화를 했죠.
- 차장님! 갑자기 퇴사라뇨. 어디 좋은 데 가십니까?
- 아냐 그런 거. 사정이 생겨서 퇴사하는 거야.(매우 침울한 분위기)
- 아네.. 가시기 전에 꼭 저녁 한번 드시죠!
- 그래, 그러자. 연락할게.
물론,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하셨고, 통화당시 목소리가 매우 침울하던 게 생각이 나 따로 연락하기도 뭐 하더라고요.
이후 듣게 된 이야기.
너무나 바쁘고 스트레스받는 회사일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되었고 정신과치료를 하다가 도저히 이대로는 가정도 위태로워질 거 같다는 판단이 서게 되어 과감하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다고 하네요.
1년도 넘어서 예전 사수였던 차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2011년 차장님은 회사를 접고, 서울에 집도 팔아서 온 가족을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가 작은 펜션을 운영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목소리는 예전 퇴사 전의 목소리와는 180도 다르게 너무나 밝게 바뀌어 있었어요.
"XX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직 30대 초반이라 너는 모를 수도 있어서 노파심에 그냥 하는 말이야. 흘려들어. 회사일도 좋고 월급도 좋고 다 좋은데. 너를 잃어버리진 마라. 회사에 목숨 걸고 회사를 중심으로 인생이 흘러가면 나처럼 마음의 병이 생길 수도 있어. 또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회사로 인해 놓치고 살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 난 요즘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당연히 버는 돈이야 예전 회사만큼은 못하지. 근데 말이다. 십 수년을 같이 산 아내의 새로운 모습. 내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들이 퇴사하고 나니 눈에 보이더라. 열심히 해. 근데 말야. 인생을 갈아 넣진 마 인마. 결국 너의 가족, 너의 인생, 너의 시간, 건강이 제일로 중요하다는 거 절대 잊으면 안 돼."
아무 말도 못 하고 꼰대처럼 말하는 저 말을 한참 듣고 있다 짤막하게 '네 선배'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죠. 당시엔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회사가 없으면, 월급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그 인생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던 때라서요.
지금은 물론 많이 달라졌습니다.
Episode.3 - 언제까지 XX처럼 살 겁니까.
제가 몇 차례나 썼던 그 프로젝트. 결혼과 동시에 진행되었던 승진이 달렸던 그 프로젝트 때의 일입니다.
이때는 제가 총괄로 진행을 하던 프로젝트였던지라 더욱 꼼꼼하고 세심하게 일을 진행했었어요. 조금이라도 스케줄이 밀리거나 이슈가 생기거나 하면 곤란했거든요. 그러기에 신혼여행 가서도 메신저를 하며 일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중견기업이었던 마더업체의 PL 중 한 분이었던 X과장님. 실질적인 현장실무자였고, PM을 제외한 나머지 PL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직접 일들을 진행하던 분이었어요.
당시 약 한 달의 시간을 가지고 마이그레이션 해야 했던 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하기로 한 날 열흘 전까지도 아무런 내용이 전달이 되지 않아 그 과장님과 PL 몇 명과 따로 미팅을 진행하며 쓴소리를 했던 날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초췌해 보이는 과장님 얼굴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미팅이 끝나고 따로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던 중, 조심스레 물어봤습니다. 요즘 정신없는 거 아는데 무언가 계속 한 가지씩 빠뜨리고 계신 거 같다고,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냐며.
그때 얘기하더라고요. 본인이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여기 말고도 5개가 더 있다구요. 규모는 여기가 제일 크긴 한데 나머지 프로젝트들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라 진심으로 요즘 너무 힘들다고 말이죠. 이 말을 들은 저로썬 PM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에 더 많은 신경을 썼으면 했거든요.
수 일후, 5개에서 3개로 참여프로젝트가 줄었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럼에도 영혼 없는 표정과 순간순간 멍 때리는듯한 그 얼굴을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 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옥같이 바쁘고 힘들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뒤풀이 하는 날. 그날도 그 과장님은 스케줄이 있다며 밥만 먹고 일찍 자리를 뜨더라구요.
다른 프로젝트 때문인 거 같았어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저는 승진하였고 카톡친구였던 그 과장님의 프로필이 업데이트되었다고 떠있네요.
눌러보니 다소 공격적인 멘트의 이미지 한 장...
'언제까지 그렇게 XX처럼 살 겁니까!'
이후 다른 건으로 만나게 된 해당 팀장님과 담배를 피던 중 그 과장님 얘기가 나오게 되었죠. 저는 당연히 잘 지내고 계시냐를 물었고, 팀장님은 그 사람 퇴사했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이직이냐 물었더니 아예 업계를 떠났다고 하더군요.
우리 업계에서 High-end급 자격증을 2개나 소유하셨던 그 과장님. 자격증 취득에 엄청 많은 돈과 시간을 쓰셨을 겁니다. 그 자격증은 따기도 어렵거니와 돈도 많이 들거든요.
그걸 그렇게 어렵게 2개나 취득하고선 업계를 뜨다니.. 보험업종으로 갔다고 하더라구요.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고. 그 과장님이었던 분의 프로필 사진이 무슨 시상식 사진 같은 걸로 바뀌어있길래 생각이 나 톡을 보내봤습니다.
- X과장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퇴사하셨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보험업종으로 가셨다구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과장님~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퇴사하고 새로운 업계에서 새롭게 시작했어요. 다행히 일도 즐겁고 예전처럼 일에 파묻혀 살지도 않아요.
-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가셨겠어요~!
- 기존보다 시간활용이 자유로운 편이라 신세계를 경험 중이에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저만의 시간도 여유 있게 가지고 있죠. 벌이는 예전회사보단 조금 못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시간으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정말 축하드려요! 오며 가며 시간 되시면 같이 차라도 한잔해요~! 수고하십시오~!
- 넵! 연락 꼭 드릴게요~!
2016년 톡 내용인데 현재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뭐 다들 이해는 하시죠? 한 번 보자, 밥 한 번 먹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사치레지요. 하하하하하.
저 카톡의 프로필 멘트가 잊히질 않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더욱 공감되는 한 마디.
인생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많이 바뀌는 거 같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취업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기.
회사에 인생을 갈아 넣던 시기.
정작 회사에서 흘러간 시간들이 기억 속에 많이 남지 않아 후회하던 시기.
등등.
수 차례 얘기했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좇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순간에는 그것을 좇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입니다. 아니라면 과감히 놓을 줄도 알아야 하구요.
세 가지 제 인생의 경험을 상기하고 글을 쓰며,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 작은 것에 감사하며 내 배우자와 웃으며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오늘 하루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