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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Sep 22. 2024

40대, 직장 퇴사자의 꼰대짓거리.

나 백수

작년 말 퇴사를 했는데 여전히 백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쉬자라는 생각이 아직도 강렬합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 좋은 걸 어찌할까요 하하하하.


어느 한 분야에서 15년을 넘게 하면 베테랑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해당분야에 대한 노하우와 조예가 깊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저도 직장인을 16년 했으니 직장인으로서 베테랑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 시절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내가 왕년에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공사장판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켜던 아저씨들의 모습.


요즘말로 '꼰대들의 향연' 그 자체입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도 난 저렇게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 저러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내는 개인사업을 합니다. 직원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어요. 나름 저도 직장인시절 고참급에 있던지라 후임들을 대하고 부리는(?) 방법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사업을 하다 보면 참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회사라는 조직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름의 조직입니다. 대표가 있고, 한마음으로 같이 가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이런 요구사항이 있으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등등의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고, 아내는 고민을 합니다. 저와 아내는 성향이 매우 다릅니다. 저는 직진의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좋지 않은 소리를 할 땐 확실하게, 뒤 끝없이 풀어버리고 다시금 파이팅!


아내는 기본적으로 싫은 소리를 못 합니다. 본인이 쉴 때조차 직원들의 눈치를 살핍니다. 어느 날 아침은 몸이 좀 힘들다고 하기에 직원들에게 얘기하고 마무리 맡기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 도착한 아내. 왜 좀 더 일찍 들어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직원들 눈치 살피다 일찍 못 왔다고 합니다. 한 직원이 좀 힘들어하길래 그 직원 먼저 보내고 남은 사람도 퇴근시키고 마지막에 불 끄고 나왔답니다.


'아니, 왜.....'

아침에 몸이 좀 힘들다며 평소보다 활기차지 않은 모습으로 나가더니. 기어코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퇴근했네요.


아니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너가 대표잖아. 이럴 때 조금 편하려고 대표하는 거 아냐?

대체 어느 대표가 직원눈치 보면서 쉬고, 퇴근을 하냐 그래.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이제 직원들 좀 시켜.

XX는 이런 게 좀 문제인 거 같은데 왜 이런 것도 말을 못 해.

예전 회사생활 때는 이랬고 저랬고.

등등.

'내가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이런 거 상상할 수도 없는 거였다.'

라는 다소 꼰대적인 말을 내뱉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울컥했는지, 나름 성질을 부립니다.

너는 가능할지 몰라도 난 그런 말 못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나는 그게 더 스트레스다.

직원들도 힘들 텐데 내가 힘들다고 먼저 쏙 퇴근하기가 눈치 보인다.

'그리고 나는 회사생활을 하는 게 아니다. 난 이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다.'


아...

맞네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분기에 8조 매출을 올리던 나의 옛 외국계 회사. 그런 회사에서 내가 무언가라도 된 마냥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여 내가 마치 회사인듯한 착각 속에서 살던 그 시절. 그 안에서 배웠던 각종 프로세스와 각종 내규들.

이런 것들이 대단한 것 마냥 떠들며 아내에게 저도 모르게 주입시키고 있던 거죠.


회사 때려 친 백수가 말이에요.


언제나 상황이라는 게 있고, 각자마다의 역할이 있는 것인데. 난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정답인양, 내가 다녔던 16년의 회사생활이 마치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해낸 것 마냥 아내에게 훈수를 두고 있던 것이죠.

특히나 내가 다녔던 회사에 대한 강한 애사심을 바탕으로 내뱉었던 말들이, 어떤면으로는 아내에게 박탈감을 주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미안한 마음이 한 움큼 들었습니다. 나 편히 쉬라며, 그동안 고생한 거 다 안다며. 돈은 내가 벌테니 당분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쉬라던 그녀에게 참 몹쓸 짓을 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나이가 들은 건가..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듭니다. 파릇한 20대 시절의 내가 여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꼰대질을 하고 있던 제 자신이 어떤면으로는 한심합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 내가 해보지 않은 역할에 대해서는 '입꾹닫' 해야 합니다. 개뿔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다른 분야에서 이렇게 해왔다고 해서 그게 정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 아닌 거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가지 배움을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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