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합시다 이제.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팀장, 그 대상이 저였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느끼며 그렇게 회사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팀장 입사 당시, 미리 승인받았던 리모트오피스로의 출, 퇴근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팀장으로 인해 스팀이 조금씩 받기 시작합니다.
일전 회의석상에서 저에게 언성을 높인 팀장. 프로젝트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이유로 인해 뭉그러졌습니다. 팀장과는 그 일 이후로 서먹해집니다. 본사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 한번 티타임을 가졌던 것도 없어졌습니다.
다시 한번 잡힌 회의. 이번엔 대리급부터 차장급까지 모인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저에게 또다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규모가 조금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어떤 한 부분에 대한 경력자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부분을 팀장은 어떻게든 팀원들로 끌고 가고자 했고, 저는 반기를 들었습니다.
나 : 이러이러한 부분은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경험이 전무합니다.
팀장 : 그러니까 이번에 해보자는 거지.
나 : 규모도 있는 프로젝트인데, 어설프게 하다가 일 자체가 잘 못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팀장 : 그럼 안 할 거야??!!(언성을 높이며)
나 : (아니, 또 언성을 높이네 이양반이)
또다시 언성을 높입니다. 이번엔 참지 않았습니다.
나 : 안 한다는 게 아니고요.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해봐야 제대로 일이 안된다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경력자를 초빙해서 이 부분을 맡기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싸해진 공기에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예산이며 저 부분에 대한 경력자를 초빙하는데 드는 비용도 압니다. 전문가 한 명 초빙한다고 해서 회사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5분 정도의 정적.
그렇게 회의는 종료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도 팀장에게서 마음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제가 쓴 다른 글에서 처럼 1년 여가량을 퇴사를 놓고 지옥 같은 고민의 시간을 거치게 됩니다. 팀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직장생활이 흔들린 건 아니었어요. 퇴사는 조금은 더 깊은 부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
한창,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던 시기. 일에서조차 눈에 띄게 저를 배제하는 모습이 자꾸 걸려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최대한 차분하고, 공손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나 : 팀장님, 이런 이런 부분은 제가 받아들이기에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야 할 부분인데, 굳이 저를 빼고 진행하시려는 게 어떤 이유가 있는 건가요?
팀장 : 그런 건 딱히 없어.
나 : 일전에 이러한 일도, 이번일도 제가 느끼기에는 일부러 그러시는 거 같습니다.
팀장 : 네가 일주일에 두, 세 번만 본사로 오는데 어쩔 수가 없다.
나 : 팀장님이 승인해 주셨고, 집도 내놓은 상태입니다. 부동산경기가 안 좋아 집이 안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팔고 이사하겠습니다. 최대한 이번 연도 안에는 본사로 쭉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 : (살짝 언성을 높이며) 이거 봐. 이게 문제라는 거야 X차장은.
나 : (어이없어하며) 네? 아니... 어떤 부분이...
팀장 : 나한테 지금 통보하고 있잖아.
나 : 팀장님, 일전에 승인해 주신 내용이기도 하고 시간이 조금 지체되곤 있지만 저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값도 더 내려서 다시 내놓았고요. 통보가 아니라,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승인해 주신 기한 내에는 최대한 이사하려고요.
팀장 : 그리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태도가 글러먹었어.
나 : (한숨, 더 이상 이런 사람과 대화를 못하겠다.)
팀장 : 사람은 애티튜드가 중요해. 평판이라고들 하지. 내가 볼 때 x차장은 그게 좀 부족해 보여.
나 : 어떤 부분이 그런 거 같으신가요?
팀장 : 이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한테 통보를 하고 있잖아.
나 : 아니... 통보가 아니라 보고를 드리는 거라고 아까 말씀을...
정말 답답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최대한 차분하고, 공손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이야기하면 할수록 이 사람은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거 같았습니다. 조금 더 차분한 말투와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나 : 팀장님, 아무래도 저와 팀장님은 결이 많이 다른 거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말씀을 드려도 안 좋게 받아들이시는 거 같습니다.
팀장 : 내 생각에도 그런 거 같다.
나 : 네, 그리고 절대 통보는 아니고요. 보고를 드린 부분은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팀장에게 통보하는 팀원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오해하시는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사는 최대한으로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대체 어느 부분을 실수한 걸까요."
위 사건 이후로 팀장과 저는 서로 큰 벽이 생겼고, 저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1년 반가량의 퇴사에 대한 답을 짓고, 마지막으로 퇴사통보를 위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나 : 퇴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팀장 : (의아한 표정) 왜지?
나 : 개인적인 사유가 있습니다. 조금 쉬려고 합니다.
팀장 : (잠깐의 정적) 생각을 바꿔볼 순 없는 건가?
나 : (왜 이래 갑자기)
의외였습니다. 당연히 쌍수 들고 환영할 줄 알았는데, 한번 잡는 모습에요.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제가 꼭 해주어야 하는 일이 있었더군요.
"네, 오랜 시간 고민했고 마음의 결정은 내렸습니다."
이후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에게 빼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 : 팀장님, 다른 건 차치하고 인생선배로써 제가 고쳐야 할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새겨듣겠습니다.
팀장 : (잠깐의 정적) 일단, 팔로우십이야. X차장이 리더십이 있는 건 인정해. 하지만, 팔로우십이 있어야 그 리더십도 발휘될 수 있지. 윗사람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무언가 하자고 할 때 태클을 걸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잘 따라오는 것에 대해서도 키우는 게 좋을 거 같다.
나 : 아네, 어떤 말씀이신지 알 거 같습니다.
제가 본인의 의견이나 진행사항에 대해 반기를 들고, 다른 방향의 의견을 내놓았던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말한 내용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대화의 막바지. 전 그래도 잘 풀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사과를 던졌습니다.
나 : 팀장님, 그간 죄송했습니다. 저 때문에 골치 아프셨을 거 같습니다.
팀장 : 이 업계에 있는 한, 나랑 언젠간 부딪히게 될 거 같다. 나름 리더십도 있고 하니, 잘할 거 같다.
그렇게 마지막은 나름 훈훈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결이 달라, 서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팀장과의 수많은 대화들.
결국, 퇴사를 앞두고 어느 정도 풀게 되었습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저도 이번계기를 통해 느낀 게 많았고, 팀장도 분명 느낀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와 결이 다르다고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거고, 결이 다른 거죠.
팔로우십에 대한 것도 나름 신선한 관점이었습니다.
"잘 따를 줄 알아야, 잘 이끌 수 있다는 것."
분명히 훌륭한 관점임에는 어떤 반기도 들 수 없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