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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13. 2022

도예 시간에는 노동요를 틀어주세요

사랑과 영혼은 다 거짓말

 


대개 도자기를 만든다고 하면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흙을 빚는 몰리와 그녀를 뒤에서 감싸는 샘의 로맨틱한 명장면 말이다. 나도 영화에서 본 물레 돌리는 장면이 익숙했고, 초등학교 때 체험학습으로 으레 가던 곳이 도자기 체험장이었으니 흙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강 등록을 하고 다음날, 첫 수업시간. 세상에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6월 21일, 24도에 맞춰놓은 에어컨이 무색할 정도로 공방 안은 후끈했다. 첫 시작은 흙 자르기부터였다. 선생님은 창고에서 원기둥처럼 생긴 흙덩이를 가지고 나오셨다.


 "오늘부터 제일 기초인 원형 그릇을 만들어 볼 거예요. 흙은 분청토라고 하는 데, 지금은 그냥 찰흙 같지만 유약을 발라 구우면 옥색으로 변해요. 그럼 메간 씨가 흙 한번 잘라볼래요?"


낚싯줄을 건네주셨다. 선생님이 자르는 걸 봤을 땐 쑥쑥 미끄러지듯 흙이 잘렸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꽤 무게감이 느껴지며 쉽게 잘리지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그대로 쭉 당겨요."라고 내 손을 잡고 흙 자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처음 도전하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흙을 세 덩이로 나눴다. 그릇의 밑바닥이 될 아이들이다. 나무판자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자른 흙을 놓은 다음 막대기나 손으로 때려서 공기를 빼고 동서남북 돌려가며 밀대로 밀어주고, 뒤집어서 또 밀어주고 그렇게 원하는 두께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주면 된다. 이 작업을 판밀 기라고 한다.


 "어머? 메간 씨 힘이 좋은데?"


 시범을 보여주신 뒤 한발 물러나 내가 첫 번째 판을 밀기 시작하는 걸 보시던 선생님이 밀대를 잘 미는 날 보고 칭찬을 해주셨다.


 "아니, 메간 씨 내가 원래 다른 학생들은 힘드니까 3개 이상 잘 안 시키는 데, 힘이 정말 좋다. 우리 5개 해봐요."


 "네? 네. 함 해볼게요."


나도 이왕 만들 거 다다익선이지.라는 생각으로 동의했다. 그게 어떤 화를 부를지도 모르고 말이다.  첫 판을 밀고 두 번째 판을 시작할 때부터 옷 속이 땀에 습해지기 시작했다. 3번째 판부터는 손바닥이 살짝 붉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흘렀다.


 "메간 씨, 안 힘들어요? 이마에 땀 맺히는 데?"


솔직히 힘들었다. 하지만 첫날인데 벌써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의지가 약해 보일까 봐 힘들지 않은 척했다. 그래도 눈앞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두 개의 동그란 흙더미를 바라보니 헛기침이 나왔다.


"이제... 이거 두 개만 밀면 되는 거죠?"


수다를 멈추고 열심히 밀었다. 판밀 기를 다 한 후에는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주고 끝이 갈라져서 나중에 크랙이 생기지 않도록 물로 마무리를 해준다. 다 끝내고 나니 운동을 한 듯 땀이 나고 팔뚝이 아렸다.





"이제 보니 메간 씨 손도 빠르잖아? 그럼 아예 틀을 잡고 가요. *핀칭 기법이랑 *코일링 기법도 있고 간단하게 *판성형해도 좋…."


 *핀칭 기법: 점토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하여 성형하는 기법
*코일링 기법: 흙가래 성형, 떡가래처럼 흙을 길게 늘여 흙가래를 만든 후 흙판 위에 쌓아 올리는 성형법
*판성형: 흙을 밀대 등으로 판을 만들어서 흙판끼리 서로 이어서 붙이거나 구부려서 만드는 기법


네...? 제가요...? 제가 운동을 즐겨해서 체력이 좋긴 한데 두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을 걸 가르쳐주신다고요...? 그래도 하고 싶던 도예 클래스고, 오늘 안 하면 다음 주까지 기다렸다 이어서 해야 하는 건 또 싫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두 개는 만들어 놓은 원형 판을 잘라 붙이고, 세 개는 코일링 기법으로 만들어 놓은 판에 벽을 우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내 표정


이날 깨달았다. 도예와 어울리는 노래는 <사랑과 영혼>의  Unchained Melody가 아니라 <레 미제라블>의 Look Down이라는 것을. 작품을 만들 10kg짜리 흙덩이를 창고에서부터 들고 날라야 할 때도 있고, 초벌 된 그릇들을 모아 번쩍 들어 나르거나, 같은 자세로 흙을 다루고 눈 빠지도록 세심 조각 해야한다.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느린 샹송을 틀어놓으셨지만 내 귀에는 그 노래가 레미제라블에서 죄수들이 노동을 하며 부르던   "look down, look down, don't look'em in the eyes…"로 들렸다. 첫날 수업은 그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아직도 판밀기에 소모되는 에너지에 질려서 되도록 판밀기를 안 해도 되는 것만 만든다.


이렇게 힘듦에도 아직 도자기 수업을 듣는 건 매 시간 눈에 보이는 성취감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의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할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가 땀 흘린 만큼 도자기는 예쁘게 구워진다. 가마에서 나올 결과를 생각하면 공방에 샘 같은 남자가 없어도 흙 만질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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