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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16. 2022

손이 너무 떨리는 데 어떡하죠...?

어떡하긴 잘해봐야지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나 미술 교과서에서 또는 박물관 참고 사진에서 우연히라도 고려청자에 상감 조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때 개량한복을 입은 장인의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매서운 눈빛으로 운학문(文)을 새기는 모습을 본 것 같다.

 

 도자기를 배우기 전까지 고려청자 조각 정도는 아니어도 선 몇 개 휙휙 조각하는 게 뭐가 어렵겠나, 쉽게 생각했다. 내 앞에 놓인 물레에 나의 도자기가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조각을 해보자 -


 조각하기 일주일 전 그림을 그릴 부분에 칠해 놓은 백토가 조각하기 좋게 말라있었다. 나는 이번이 처음 해보는 조각이니 가장 기본적인 박지기법을 이용해서 조각을 해보기로 했다. 박지기법이란 분청에 백토(하얀 흙은 물에 갠 것)를 발라 놓은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필요 없는 부분이나 배경을 긁어내는 기법이다.



조각할 때 쓰이는 도구.

 우선 초보이니 만큼 조각에 필요한 도구란 도구는 책상 위에 몽땅 늘어놓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어떤 무늬를 새길지, 어떻게 새길지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새길 무늬는 이 물결무늬인데, "


 선생님은 선반에 있던 물결무늬가 조각된 그릇을 보여주시면서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백토를 바른 전체에 물결무늬를 새기면 무늬가 크고 지저분해지니까 위아래 경계의 의미로 선을 치고, 무늬를 그려주면 되는 데, 선을 한 번에, 곡선으로 이어주는 게 중요해요. 간격은 완전히 일정할 필요 없으니까 선이 예쁜 곡선이 되는지에 집중해서 그려주세요."


 선생님이 종이에 연필로 어떻게 무늬를 그리면 되는지 시범을 보여주셨다. 보는 건 쉬웠는 데 능숙하게 한 번에 그려낼 자신은 없었다.


 우선 물레 위에 접시를 올리고 위아래로 연필선을 그어 흰색 라인을 만든 후 그 사이에 물결무늬를 하나씩 그려갔다. 역시나 선생님만큼 일정한 무늬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렸다. 어차피 조각이 시작되면 연필선대로 완벽히 팔 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 중에서 어떤 걸로 조각하면 되나요?"

저번주만 해도 굽칼의 존재를 몰랐던 입문자로서 마땅한 조각도를 선택하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얇게 파야하니까 얇고 뾰족하게 생긴 굽칼로 파면돼요."

 선생님은 끝이 뾰족한 굽 칼을 건네주셨다. 딱딱하게 굳은 백토는 생각보다 잘 파지지 않았다. 손이 부들부들떨렸다  다른 선생님들은 옆에서 어려운 문양도 쑥쑥 잘만 조각하시는 데 나는 짧은 곡선도 잘 그을 수가 없었다. 힘조절도 잘 안 되니 삐뚤삐뚤했고, 집중력이 좀만 흐트러져도 힘을 너무 줘서 삑사리도 났다.


마지막 그릇 조각을 끝내고 뿌듯함에 물레회전


 3번째 조각부터는 마음속에서 도자기 장인이었던 선조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 경외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복잡한 문양들을 전통방법으로 한 땀 한 땀 어떻게 새기신 거지??!!


조각을 하고 나서도 한 번 더 해야 할 과정이 있다. 이번엔 수세미질을 해줘야 한다. 스펀지로 물 닦이 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울퉁불퉁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녹색의 빳빳한 수세미로 문질러 준 다음 물로 한번 씻어내 말려줘야 한다.



 그렇게 그 주 꼬박 4시간을 5개의 원형 그릇에 무늬를 새기느라 다 써버렸다. 쓱쓱 조각도로 긁기만 하는 데도 하나만 끝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직 도구도, 기술도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이틀 동안 허리와 목, 눈까지 혹사시켜 그릇을 어찌어찌 완성했다.


핸드메이드 그릇이 비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었다.





- 내 눈에는 명품 그릇 -



그릇을 완성하고 한 달 후 나의 첫 작품!

원형 그릇이 세상에 나왔다!


그릇의 밑부분엔 나의 시그니쳐 사인인

 恩자 제대로 새겨져 있었고,

흙색의 투박하던 그릇은 옥색의 영롱한 분청사기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늬가 반듯하지 못해 맘에 안 들었던 부분도

가마에 구워져 나오니 푸른색과 흰색이 대비를 이루면서 그럴싸해 보였다.


아직 처음 만든 거라 내 눈에 밟히는 오점들도 많고 선생님이 만드신 것보다 라인도 예쁘진 않지만 나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뿌듯했다.


이게 도자기의 매력인 것 같다. 만들 땐 힘들고 안 예쁜 거 같아도 초벌 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서 완성품을 만나는 순간 황홀한 성취감에 도파민이 마구 상승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 집에 온 그릇은 여러모로 잘 쓰이고 있다. 과일도 담고, 반찬도 담고, 이런저런 용도로 다양하게 쓰고 있다. 클래식한 분청 그릇이라 그런지 식탁에 올려놓으니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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