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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17. 2022

판밀기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각 접시 만들기

 4개월이 넘게 도예를 배우고 있는 현재, 핸드 빌딩 과정 중에 제일 기피하는 과정은 밀대로 흙을 미는 판밀기이다. 내가 판밀기를 질려하게 된 것은 사각 접시를 만들면서 그랬던 것 같다. 원형 접시도 힘들었지만 한 여름 무더위에 사각 접시용 판을 5개 미는 것 또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사각 접시를 5개씩이나 만들 생각이 없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50대 후반 이모도 적당하게 3개 정도를 만들고, 다른 학생들도 기본기만 익힐 정도로 세 개 정도만 만든다니까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힘이 센 것이 맘에 든 선생님은 이번에도 웃으며 5개를 제안하셨다.


 "메간씨는 힘이 좋으니까 2개 더 만들어요. 할 수 있죠?"


 큰 흙덩이를 내 앞에 내려놓으셨다. 결국 이번에도 5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난 좋은 게 좋은 거고 아직 판밀기 하기 전이니 힘이 남아돌았으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사각 접시는 직사각형으로 1cm 두께로 일정하게 밀어야 했다. 분청토로 만들어 가마에 구우면 원래 만든 것보다 8% 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어 좀 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로 넓게 만들어야 한다. 또 높은 굽을 만들어 붙이는 그릇이어서 나중에 굽을 잘라 쓸 만큼 더 넓게 판을 밀어야 한다. 한마디로 원형 접시보다 훨씬 크고 넓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새 7월로 접어든 시점이니 에어컨은 넓은 공방을 완전히 시원하게 만들지 못했고, 밀대로 쉴 새 없이 흙을 밀어버리자 셔츠 등부분은 땀 때문에 등에 달라붙었다.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고 있던 앞치마도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더웠다.


용도별로 쓰려고 크기가 서로 다르게  밀었다, 모서리 부분은 잘라서 굽으로 만들 예정


 판자 위에 천을 깔고 흙을 좌우로 움직여서 밀고, 뒤집어서 또 미는 작업을 반복해서 1cm 두께에 넓은 사각이 되게 만든다. 완전한 사각은 안되고 원에 가까운 사각이 되기 때문에 자를 대로 네모 반듯하게 자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굽은 같은 흙덩이에서 나온 걸로 하는 것이 완성했을 때 제일 안정적이기에 가장자리 자른 부분을 잘 보관했다가 굽으로 쓴다.



 비닐에 잠깐 보관해둔 남은 흙을 칼로 또 잘라서 굽을 만들어 준다. 굽은 높이 0.5cm 정도로 재단했던 것 같다. 그릇 크기에 맞게 자른 굽과 굽이 붙을 접시 표면에 살짝 홈을 내주고 물을 묻혀서 붙인다. 그 사이 홈은 도구를 이용해 틈이 없게 메꿔줘야 한다. 그럼 1차 과정은 끝이 난다.


 저녁도 거른 채 퇴근하자마자 공방에 와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배도 고프고 땀에 절어 멍해지지만 다음 수업을 위해 다시 비닐봉지로 흙을 감싸 놓을 때면 성취감과 다음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메간씨, 접시 만들면서 머그컵도 하나 해요. 코일링 연습할 겸 한 번 쌓아봐요."


 수업시간 20분인가 15분을 남기고 선생님은 새로운 흙덩이를 잘라서 내 앞으로 가지고 오셨다. 넓적하고 둥근 모양의 커피잔 같이 생긴 컵을 견본으로 가져오셔서 컵은 금방 만드니 하나 만들고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컵이요? 20분 안에 할 수 있을까요?"


"하다가 못 끝내면 다음에 이어서 하면 되니까 그냥 한 번 해봐요."



 열심히 말아서 얼추 모양을 잡아 만들었다. 너무 늦어서 형태를 다 만들지 못해서 마르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감싸서 선반에 보관해 두었다.


 일주일 후 공방에 가니, 20분 동안 열정을 쏟은 컵이 사라져 있었다.(ㅋㅋㅋ) 나 외에도 다른 선생님들, 학생, 체험 온 분들 작품이 많아서 가끔 자기 작품을 찾기 힘들 때도 있다. 잃어버린 날 선생님이랑 아무리 찾아봐도 내 컵을 담아 놓은 비닐봉지를 찾을 수 없었다.


 "괜찮아요. 언젠가 나오겠죠."


 이미 사각 접시만으로도 할게 많았으니 쿨한 마음으로 나중에 나오면 이어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였나. 그때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적당히 말라서 더 이상 코일링으로 흙을 쌓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음, 그럼 강아지 물그릇을 만들까요?"




 마침 입양한 강아지의 식기가 필요했어서 컵이었던 흙은 강아지 물그릇이 되었다. 성형과정을 거치고 나서 백토와 철을 가지고 상감기법으로 강아지 이름을 영어로 새겼다. 아직 가마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곧 완성될 옥색의 영롱한 물그릇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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