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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May 13. 2024

가로등의 존재감

위로와 희망의 불빛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농부의 일과는 해가지면 자연스레 끝이 난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 물 대기와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써레질도 멈췄다. 꼬꼬들도 서둘러 횃대에 오른다. 어둠이 오기 전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는 게 현명한 농부의 첫걸음이다.


분주했던 모든 일상이 어둠과 정적 속으로 스며든다. 읍내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는다. 길은 한산하고 인적은 뜸하다. 도로 위 차들도 별똥별처럼 휙 지나간다. 마을 사람들의 집에도 불빛이 사그라들었다. 농촌의 밤은 도시보다 빨리 적막에 휩싸인다. 어둠은 깊어지고 정적은 길어진다.


한낮의 분주하던 생명들도 깊은 어둠 속에 고요하다. 눈을 감으면 들을 수 있는 소리와 어두우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울림은 같다. 가만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더 많은 소리가 아닌 작고 희미한 소리에 마음이 움직인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에 길들여졌는지 처음엔 적막한 농촌의 밤이 어색했다.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이 있는 삶에 자연스레 적응이 됐다. 어둠과 불빛, 고요한 침잠의 시간이 온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홀로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있었다. 시골 마을 구석구석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이다.


가로등은 희생과 봉사의 다른 이름이다. 가로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자리다. 더운 여름 무수한 벌레들의 아우성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한 겨울 살을 에는 추위에도 흔들림이 없다. 가로등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가로등은 위로와 희망이다. 고단한 하루의 마지막 여정을 알리는 신호다. 가로등은 밤새 고개 숙이며 기도한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이를 다소곳이 위로한다. 무섭거나 외롭지 않게 다독인다. 보금자리가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말해준다. 집 근처 가로등 불빛을 보면 안도의 한숨과 소진된 듯 사라졌던 힘이 솟아난다.


가로등도 시련을 겪고 억울할 때가 있다. 놓여 있는 위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가로등 아래 밭주인과 가로등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주인의 항의는 시시때때로 이어진다. 그들은 가로등 불빛의 방향과 세기와 넓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애꿎은 가로등만 이리저리 뒤틀리고 흔들리며 빛을 잃는다. 가로등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사람 대신 욕을 먹는다. 지나가는 견공들도 가로등에 실례를 한다. 호소할 길 없는 가로등의 사연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것은 함께 밤을 새우는 달님과 반짝이는 별들이다. 그들이 있어 어떤 밤도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명암이 있듯 가로등도 운명처럼 모든 것을 받아안고 그 자리에 서있다. 가로등은 어떤 발걸음도 차별하지 않는다. 가로등은 자신에게 기대어 털어놓는 누구의 푸념과 욕설도 거부하지 않는다. 말없이 들어줄 뿐 소문 내지 않는다. 어떤 행위나 자극도 거부하거나 흉보지 않는다.

가로등은 자신으로 인해 잠 못 드는 생명이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온전한 야간근무 전담반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가로등은 언제나 밝고 환하게 웃고 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묵묵히 자신의 맡은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깨어있는 모든 분들은 우리의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이다.

달이 기울고 별빛도 희미해져 갈 때 모든 가로등은 곤한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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