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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있었다

[농부가 만난 사람들-18]

by 최담

지나간 시간은 회상과 반추의 여분을 남겨 놓지 않았다. 돌아보려 해도 아득해지는 기억들이 증거다. 일도 여유도 취미 활동도 흐르는 시간 속에 묻혀 함께 희미해져 갔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던함 일 수 있지만 지난 것들의 가장 뚜렷한 화인은 사람이었다. 시간의 흔적들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사람들은 어느 시간 어느 곳에든 남아 있었다.

낯선 곳, 험난한 곳, 처음 마주하는 곳에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하고 있었다. 묻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개척해 가는 시간 사이에도 사람의 존재는 뚜렷하게 다가왔다.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세상의 기준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당당하게 길을 가는 사람들, 누구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갈고닦으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비교는 사치라며 통념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 작고 가벼운 일상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내 안의 가득함으로 채울 줄 아는 사람들, 더불어 사는 이들을 보듬어 품을 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농부로 살아가면서 만났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 연재를 시작했다.

만남의 시간과 깊이는 달랐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한 지점으로 통했다.

한 분 한 분의 서사를 위한 인터뷰는 필수였다. 흔쾌히 응해 주신 분, 부끄럽다며 꺼리시는 분, 드러나는 게 싫다며 손사래 치신 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자격이 안된다며 거절하신 분. 너무 평범해 할 말이 없다고 그러면서도 개인사를 가감 없이 드러내신 분, 시간이 안돼 몇 번씩 미뤄지다 마주 앉게 되신 분.

함께한 시간 속에서 모두가 진솔하고 담백하게, 때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깊은 내면의 사연들까지 세세하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운 난관은 나에게 있었다. 만나고 지켜보며 기록했던 내용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욕이 넘쳐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연재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 일주일의 시간은 점점 나를 옥죄는 사슬이 되었다. 농부로서의 일이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날들이 이어졌다. 세상사에 무던하지 못한 천성은 또 다른 관심사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결국 세 번의 연재 날짜를 어겼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혹여 기다려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더 알차고 의미 있는 내용과 불편을 드리지 않는 글쓰기를 통해 염치없는 용서를 구하리라 다짐한다.


연재는 짧았다. 더 깊은 인연으로 만나고 있는 분들, 꼭 소개하고 싶은 분들, 아낌없이 도움을 주신 소중한 분들의 사연과 여정을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분들에 대한 기록은 다시 차근차근 풀어낼 계획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이다.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며...... 누군가의 곁에는 누군가를 위한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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