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빌린 돈을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빌리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난 생각한다.
오늘에서 난 빌린 돈을 전부 받았다. 수금에 성공한 날이기에 자랑스럽게 일기를 쓴다.
사실 내가 뭘 한 건 별로 없다. 한 사람은 빨리 갚았고 한 사람은 늦게 갚았다. 그렇기에 후자만 조금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사실 많은 돈도 아니었다. 10만원.
사람마다 상황이 있을 거로 믿기에 수금은 항상 애매해진다. 그렇지만 날짜가 지났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카톡을 하나씩 보냈고 약 1달 반이 지나서 돈을 받았다.
사실 아직 대학원 과제를 해결하지 못 했다. 700페이지 정도 더 읽어야 되는 책이 있는데 귀찮다. 단순히 귀찮다는 표현으로 무마할 생각은 없다. 내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약 70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매 페이지마다 '이게 뭔 말이야'하면서 읽는 중이다.
물론 내가 시간을 함부러 허비한 탓이다. 나는 피시방에 가서 롤을 했고 진격의 거인 영화를 보러 가서 눈물을 흘렸다. 유튜브 영상 제작 채널과 미팅을 했고 제작비 얘기에 고민을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하루에 8000걸음을 걸어서 손목닥터9988에 200포인트를 받기 위해 매일 8000걸음을 의무적으로 채우기도 했다.
오늘은 룸메였던 친구가 예비군을 갔다 온 날이다. 그렇게 저녁을 함께 먹었다. 월 400이상은 저축한다는 그 친구 얘기를 듣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남의 얘기 같았는데 그 친구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월 400도 못 버는 사람들이 있는데 400을 저축한다니. 돈을 안 쓴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실감나질 않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등촌샤브칼국수를 야무지게 조진 뒤 헤어졌다.
나도 내일 예비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학원은 가야한다. 그런데 나 학생 예비군으로 안 빠지나..? 왜 동사무소에서 민방위를 부를까. 대학원생은 따로인가.
룸메였던 친구는 빵을 사 왔다. 아빠가 퇴근 후에 치킨을 사 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오다가 맛있어 보여서 샀다고 했다. 역사에 빵집이 있는 건 역시 수요가 있어서구나. 친구는 모카번 2개와 이름 모를 큰 빵 하나를 사 왔다.
나는 한 달에 약 60을 번다. 학원에서 알바를 시작하며 생긴 수당이다. 그 전까진 사실 고정 급여도 없었고 뭐 일용직만 계속 메달렸다. 그 마저도 겨울이라는 날씨 탓인지 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스티커 붙여 달라는 알바도 했지만 겨울엔 역시 할 짓이 못 됐다. 추위에 약한 내가 야외에서 활동하는 알바라니.
사실 그래서 다시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대학원도 물론 바쁘고 힘들겠지만 고정 수입은 필요하다. 60이면 사실 내 개인 여비로는 쓸 돈이 20정도만 남는 상황이긴 하다. 월세 내고 이자금 내고 공과금, 차비, 밥값하면 사실 60이 부족할 수도 있긴 하다.
단편영화를 찍은지는 이제 곧 2달이 된다. 후반작업은 현재 한 달째 멈춰 있다. 생각보다 후반 작업이 더 힘들다는 것을 몰랐다. 시간과의 싸움이자 돈과의 줄달리기였다. 어딜 가든 돈이 안 드는 곳이 없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도 촬영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어렵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현종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난 잘 모르겠다. 사람 사이에 섬이 있으면 그냥 섬이 있게 두고 싶다. 그게 섬이든 선이든 벽이든 상관 없다.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