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00년도에 서울 동아마라톤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풀코스는 아니고 하프코스를 친구와 함께 달렸습니다. 당시하프코스는 광화문에서 출발해 올림픽 공원까지의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목표를 1시간 30분대로 잡았습니다. 아직 완연한 봄이 아닌 3월의 서울은 꽤 쌀쌀했습니다. 땀이 날 것을 생각해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출발선에 서 있으니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아무튼 그런 추위 속에도 출발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저와 친구의 페이스도 좋았습니다. 이대로의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목표로 했던 시간에 충분히 들어오는 것은 문제없었습니다. 달릴수록 고통스러워지는 심장과 발바닥과는 달리 서울 도심을 달리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창 기분이 업되어 올림픽 공원까지 5킬로미터 정도 남긴 잠실대교에서 그만 친구가 힘들다면 멈추어 서 버렸습니다. 저는 빨리 힘을 내라며 격려했지만 친구는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친구가 주저앉아버린 지점이 물과 간식을 나눠주는 곳이라 저는 친구에게 물과 간식인 초코파이를 가져다줬습니다. 친구는 초코파이 한 개를 허겁지겁 먹더니 한 개를 더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록 때문에 얼른 한 개를 더 가져다주고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자기는 안 될 것 같으니 나 혼자 가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지금 그를 두고 가면 충분히 목표로 했던 기록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한다? 마음의 갈등은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제 결단이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오늘 이 대회가 아니면 더 이상 이런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제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기록과 친구와의 우정에서 저는 무한한 괴로움으로 몇 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으로 기록을 포기하고 친구를 부축해 끌고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기록은 2 기간 11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군 생활을 같이하면서 산악무장구보 측정 시 장거리에 약한 나의 군장을 들어주고 달렸던 친구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결승선을 지나 대자로 뻗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보며 한 참을 웃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그 녀석을 놔두고 그냥 뛰었어야 하는 데하며 술자리에서 가끔 농담을 하지만 그때의 판단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그냥 인생의 긴 선에서 겨우 한 점일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