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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Oct 14. 2022

보이지 않는 세금, 인플레이션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2.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인플레이션 1부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2.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인플레이션 1부

(연관성이 있는 2권 이상의 책을 엮어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1923년은 독일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정부에서 독일의 통화인 마르크를 붕괴시킨 해였기 때문이다.
평생 저축한 돈 10만 마르크로 전차 티켓 한 장도 살 수 없었다.
독일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져 히틀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하노 벡 '인플레이션' 중

인플레이션은 자국 통화의 구매력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구매력을 잃는 이유는 내 지갑 속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지갑 속에 몰래 숨어 들어와 당신의 자산과 소득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

한 나라에서 모든 물가가 계속 오르게 되면 통화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전 국민을 덮친다.

우리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나치게 많은 양의 화폐가 유통될 때면 어김없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먼저, 물가와 돈이 가지는 몇 가지 속성을 살펴보면 인플레이션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째, 물건만큼이나 돈도 값어치가 있다. 그런데 물건의 가치와 돈의 가치는 반비례한다. '물건 값 올랐네'와 '돈 가치 떨어졌네'는 사실 같은 말의 반복인 것이다.

둘째, 소비자 물건 값과 투자자 물건 값은 같이 움직인다. 우리가 먹는 식료품 값이 계속 오르는데 집값은 떨어지거나, 기름값이 솟구치는데 내가 산 주식은 나락으로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반대로 움직이는 일이 발생하여 우리를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셋째, 돈이 몰리는 곳의 값이 더 올라간다. 누구나 사고 싶어 하는 물건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강남 아파트, BTS 콘서트 티켓, 포켓몬빵...

쉽게 말해, 그네의 한쪽에 돈, 다른 쪽에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쪽이 올라갈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돈이 쏟아지면, 물건 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불수단으로 이용하는 종이화폐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예전에는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물건을 담보로 맡겼었다. 물건은 작은 것도 있지만 크고 무거운 것도 있다. 당연히 휴대나 이동, 보관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말은 손쉬운 거래가 불가능했다는 의미이다.

그럼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지불수단의 요건을 살펴보자. 휴대하기 편리하고, 부패하지 않고, 작은 단위로 나뉠 수 있으며, 희소성이 있고 가치 있는 물건들이라면 지불수단 즉, 화폐로 사용되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금과 은이었고, 수 천년 동안 전 세계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0세기경 중국에서는 물건의 가치를 명시한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 종이가 발전하여 고유한 화폐가 되었다. 이 화폐는 물건의 실질가치를 완전히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와는 달랐다.

수 세기 후, 유럽에서 금의 가치를 명시하여 발행한 종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화폐를 상품화폐와 금태환 화폐라고 하는데, 종이에 적힌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화폐의 진짜 가치'와 '종이에 나타난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되었다.


국가에서 관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폐 역할을 했던 동전이나 상품화폐와 달리 지폐는 권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 지폐에 명시된 금액을 내줄 것이라는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만 가치가 있다. 이런 돈을 명목화폐라고 하는데, 이러한 화폐는 누군가가 이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지폐를 받은 사람이 지폐의 가치를 신뢰해야 비로소 돈이 된다. 즉, 신뢰를 잃는 순간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노 벡 '인플레이션' 중

돈 한 푼 없이 돈 버는 법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존 로이다.

존 로는 대출과 통화량을 늘리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국가에서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 시스템이란 마법의 탄생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은행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와 은으로 교환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않는다면 그만큼의 금액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은행권을 찍어낼 수 있다. 고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이 가치가 있다고 믿어주기만 하면 리스크는 없다"

바꿔 말하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은보다 더 많은 '은교환권'을 만들어 뿌리겠다는 것이다. 단, 사람들의 의심을 사서 동시에 은행으로 몰려들어 "은 내놔라" 하지 않을 만큼만.

지급준비금, 신용,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자본주의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실질가치만큼을 그 속에 담고 있지 않다. 현금 100만 원만 있으면 90만 원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법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금화 시절에는 테두리를 깎아내거나 구리를 섞어서, 금, 상품 등을 담보로 한 종이화폐 시절에는 실제 가진 것보다 많이 양의 종이(은행권)를 발행하는 것으로 방법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지폐의 가장 큰 장점은 별도로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마음껏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폐의 위력을 알아챈 국가가 은행권 발행을 독점한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그저 발행자인 국가가 정직한 행동을 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재든 민주주의든 간에 국가는 항상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그로 인해 중앙은행은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화폐를 찍어낸다.


화폐 발행권을 갖고 있던 국가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 건, 세금 징수보다는 화폐 발행이 사람들의 미움을 덜 사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갑에서 '돈을 뺏어 가는 행위'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국민들은 화폐의 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고 돈이 정치적 일탈 행위에 악용되기 쉽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러나 국가운영자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그러한 행위는 서서히 일어나거나 대의명분(전쟁준비, 팬데믹 극복 등)이 있을 때 일어난다. 대다수 국민들은 눈치채지 못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폐는 사람들의 신뢰를 먹고사는데 지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화폐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국가 지도자들이 지폐를 이용해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을 이용하면 조용하고 은밀하게 국민이 누려야 할 복지의 일부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의 주장이 옳다. 한 사회를 전복시키는 데 화폐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것만큼 주도면밀한 방법은 없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인간은 돈 문제가 얽혔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 판 돈을 걸어야 게임에 집중을 하고, 매수 후 주식 공부를 시작한다. 스킨 인 더 게임! 그래서 공식 인플레이션율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암시장의 비공식적인 환율이다. 자국 통화에 문제가 있을 때 1차 신호로, 비공식 환율이 급등한다. (월드컵 우승팀 예측도 축구 해설자보다 도박사들의 판단이 정확하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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