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딜레마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27

by 포텐조

벽돌시리즈 백이십 칠 번째

스트레스받는 하루, 기분 좋은 하루 이렇게 서로 반복되는 파도를 타고 있는 연말이다. 밤이 되면 눈이 소복이 쌓여 바라보노라면 달빛에 비추어서 어둠이 마냥 칠흑 같지는 않다. 예전에 한창 우울할 때를 기억해 보면 많은 것을 극복 중이고 성장하는 중이지만 목에 가시 걸리듯 해결되지 않았던 극단적인 문제가 과연 옳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에 대한 궁금점이 항상 머릿속을 혼잡케 했다.


자살 문제다.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자살 충동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이겨내니 자살 그 자체의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최대한 자살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확증편향을 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려 하고 그렇게 생각해 보려 노력했다. 자살에 좋은 가치를 매겨버린다면 간신히 봉합한 "왜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상충되기에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먼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주제이므로, 뭐 항상 그렇지만 나만의 생각임을 감안해 주시고 봐주시길 바란다. 상충되는 의견들과 자살의 가치를 논하면 사실 무한 루프를 타는 꼴이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도중 하나의 진리 아닌 진리를 나름대로 체득했는데 "이 불안정한 세상엔 완벽하고 무결점적인 해결방법 내지는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시각이 다 다르기에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오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자살 문제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본인이 내린 결정은 정오답이 없고 본인의 가치 혹은 생각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자살을 택하는 생각은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그 상황, 그 시간, 현재의 상태에서 또 염세적이거나 우울한 감정이 가득하기에 식견이 굉장히 좁아져 선택의 폭도 굉장히 좁아지게 된다.


자살에 대해 반대하는 나의 생각은 바로 불확실성과 책임에 있다. 무신교인이든 종교인이든 사후세계를 믿지 않든 믿든 죽게 되면 그 이후의 상황을 본인은 알지 못한다. 무신교인 입장에선 "알 바냐?" 하는 경우, 종교인 입장에선 "힘들어서 신께 왔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종교 대부분의 입장은 자살에 반대하거나 권하지 않는 입장이다. 사람들은 믿거나 믿지 않거나 여하튼 본인의 자유로 택해 삶을 마감하려 하는데 문제는 자살의 이유가 현재의 삶에 대한 절망이 중심이라 이 괴로운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불확실함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즉 고통 때문에 죽는다고는 하지만 죽고 나서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었는지 결과는 만약 신이 있다면 알게 될 것이지만 자신이 내린 현재의 자살선택이 고통을 잊으려 한다는 이유에 답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는 죽었으니 내 선택과 판단이 옳았다 옳지 못했다는 그런 결과는 전혀 알 수가 없고 오히려 살아있었을 때 고통 문제에 대해 극복방법 혹은 다른 방법으로 나아가서 증거를 발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는 것인데 자살은 이런 개선방안은 생각도 않은 채 통제권을 아예 놓아버리겠단 뜻이다.


현재의 상태가 절망적이어서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압도적인 우울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나 또한 경험해 봐서 알지만 어떻게 보면 객관적으로 통제권상실로 절망감에 자살한다는 면에서, 통제권상실이라 착각한 순간의 판단이라 죽은 후의 진짜 통제권 상실, 불가지론적으로 현세의 불확실함을 넘어 아예 본인 판단의 여부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영원히. 오히려 현재 통제권상실이라 불리는 혼란하고 암울한 현 상황에서도 타인의 도움이든 스스로 헤쳐 나가든 결국 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고 무작정 이불에 누워버리는 것 또한 이미 본인 삶에 통제권은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다시 말하지만 한순간에 통제권 상실로 착각하는 이 순간에 불확실과 영원한 상실로 가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답이고 자시고 뭐라고 해줄 방법이 없다. 다만 악착같이 살아간다면 오히려 이는 성장과 더 강해지는 경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예전에 아찔했던 그 순간이 천만다행일 거라 생각한다. 가끔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고자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 살아가달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게 너무 강조가 되면 내가 물건짝 취급받는 느낌도 들거나 아니면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아서 오히려 우울이 가중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변에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는 것 쪽으로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주관에 의한 판단이므로 각자 스스로가 정답이지만 굳이 2개의 선택지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그 이후의 상황도 겪어보지 않은 채 하나의 선택만을 가진채 영원히 만날수 없는 장소를 떠나버리게 된다. 죽고나서 만약 사후 혹은 또다른 세계에서 현세의 삶을 자살로 판정지은 자신의 선택이 오답이라는 것으로 알게된다면 수습할 가능성이 절대 없다.


현재가 암울하다고 자살을 해버리면 그건 결국 냉정히 말하면 자기 삶에 책임을 지지 못했다라 볼 수 있다. 잔인한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채찍질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독려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책임자는 본인이므로 자기가 맘대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도 당연히 존재한다. 때론 불확실함이 엄청난 힘이 된다. 그 이유는 자기 선택으로 자기 파괴를 한다면 윤리적이고 가치적인 이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현세에 존재하는 나 자신이 앞으로 어떤 기회와 성장과 극복 혹은 놀라운 천운이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들을 모르고 죽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 이런 운명이 닥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너무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앞이 깜깜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불확실함은 하나로 정해진 답이 아니다. 수많은 변수가 있기에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묵혀왔던 생각 중 하나를 꺼내보았다. 지금 다루는 자살 문제는 정말 내가 선택을 못하는 지경까지 오게 된 안락사 문제나 생물학적 신체적 문제에는 포함되지 않은 일반적인 우울증 혹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는 나와 여러분의 문제다. 내 나름대로 정의해 보았고 뇌피셜이지만 생각을 정리하니 도리어 삶은 때론 최악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가능성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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