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우니까 몸이 으슬으슬하다. 몸이 으슬으슬하니까 마음도 추워진다. 마음이 추워지니까 세상이 각박하게 보인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처량해보이고 피곤에 찌들어 있는 것 같았다. 정작 그들은 너무 행복하다가 잠시 얼굴을 찌뿌린 순간에 그것을 내가 포착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튼 환경이 뒤숭숭하니 위축되고, 추위도 더 크게 느껴진다.
나만의 시야에서 현상과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일 경우 그 사람의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에헤이 그건 모르겠고 내가 보기엔"이란 멘트가 내 맘속에 자동으로 일어난다. 나의 시야에서 그 사람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그것을 확증하는 증거로 그 사람의 인상을 판정짓는다. 이런 자의식의 오류를 하루에도 수십개씩 스스로도 모르게 해내고 있다.
이런 오류성이 때론 도움이 된다. 구체적인 내막을 넘어서 어떤 단순한 결론으로 사람을 포용하거나 받아들이는 관점을 견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화해나 혹은 생각의 차이로 비롯된 인간관계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점으로 다시 모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결정이 미뤄지고 오히려 행동력이 크게 떨어지듯이 패가 많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내 패가 무엇인지는 직면하여 알아내는 노력도 필요로한다. 패가 많아 고민하기에 앞서 그것을 분별하기 위해 패 하나하나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 아무렇게나 규칙도 모르고 카드를 내서 게임에 패배하는 것과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때론 사유의 고통이 필요하고 그런 고통이 사람을 더욱 성숙케 하고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례로 나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에 영향을 준 책들을 뽑자니 한 손가락 안에서만 읽고있어 스스로 사상적 나태함을 느꼈다. 겉핡기가 때에 따라 필요도 하고 편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이상의 디테일함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실존주의 서적을 방금 구입하고 서론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읽는 대로 그 책을 리뷰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