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스토리 : 괴벨스 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28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이십 팔번째



Der_Angriff_head.jpg "공격(앙그리프)" 나치 주간지

괴벨스는 베를린 관구장으로써 나치당의 베를린 분점을 맡게되었다. 이때 당시 베를린은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서로 정치깡패들을 동원하며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삼국지 독일판을 찍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나치의 돌격대(SA)라던가 정치적 폭력집단의 활개가 나치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도 일반적으로 하고 있었던터라 나치만의 문제가 아니였다(독일국민은 온전히 나치에 선동당한 피해자의 입장만은 아니였단 증거이기도 하다). 입점을 막 시작한 나치는 그들에게 큰 위협거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Bundesarchiv_Bild_183-1990-1002-500,_Besuch_von_Hitler_und_Goebbels_bei_der_UFA_retouched.jpg

빈틈을 호시탐탐 노리던 괴벨스는 베를린 관구에 있는 물적, 인적자원 끌어다가 자기들을 홍보하고 연설하고 각 정당을 갉아먹으며 성장세를 키운다. 이때 SA의 갈색 제복이나 훗날 검은 제복등 통일된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면서 행진 행사를 벌이면서 자기네들의 존재감을 돋보이려고 했으며 다른 정당의 공격을 역이용해서 피해자 위치의 선전을 벌이는 행위를 한다.


괴벨스는 "공격"이라는 신문을 출간하며 나치즘에 대한 연설을 말로써 끝나는게 아닌 글로써도 발행하며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사람들이 재미있게끔 만화도 실어가며 연재를 했다. 베셀이라는 젊은 당원이 죽은 것을 이용하여 오히려 순교자로 만들어 그를 추모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그는 프레임을 설계할 줄 알았다. 베셀은 집주인과 집세문제로 트러블이 있어 사망했지만 괴벨스에겐 죽은 베셀의 사연은 중요하지 않았다.



Bundesarchiv_Bild_183-J31305,_Auszeichnung_des_Hitlerjungen_Willi_Hübner.jpg

죽은 베셀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앞뒤 다자르고 공산당원에게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 이미지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였다. 조금 건너뛰어 나치가 유일정당이 되고 총통이 된 히틀러 그리고 국가계몽선전부 장관에 임명된 괴벨스는 자신의 선전선동술을 적극 발휘하였다. 텔레비전을 이용하고 라디오를 이용하여 정치광고를 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영화까지 만들어 히틀러를 독일 민중의 구원자로 포장했다.


아주 단순한 판단절차로 명쾌히 작금의 상황을 풀어주었다. 바로 독일 민중의 모든 문제와 아픔은 유대인에게 있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전가시키며 홀로코스트 대학살로 그들의 감정을 아주 악랄하게 해소시켜주었다. 독소전쟁에서 소련의 역침공에도 끝까지 전선에서 승리하고 있음을 기만했고, 전장에 가용가능한 인원이 사라지자 결국 남녀노소 할거 없이 차출하여 국민돌격대를 만들어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들어 사지로 몰아넣었다.


괴벨스는 오늘날까지 입에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대표적인 "악인"이다. 그의 선전선동의 기술은 현재까지 광고라던지, 정치,사회심리학적으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다 주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keyword
이전 10화악인 스토리 : 괴벨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