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야만인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32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삼십 이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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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청소년기에 마음속으로 피를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야만성은 "순수한","맑은"으로 결코 표현할 수 없다. 청소년기의 야만성은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남긴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것을 한때 멋 모르던 잠깐의 일탈로만 생각한다. 최근의 뉴스도 그렇고 왕따 혹은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노라면 나의 힘든 시기가 생생히 떠오르고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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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얼마나 힘들까? 혹은 힘들었을까?. 개인적인 감정을 덧붙여 청소년에 대한 법적판단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럼에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와 둘러싼 보호자의 인면수심과 마타도어, 금권앞에서 무너지는 피해자들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중범죄 같은 경우 미국과 영국은 성인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성인 수준의 처벌을 받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태움 문제라던지, 폐쇄된 조직사회에서의 약자를 괴롭히거나 따돌림시키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왕따의 메커니즘, 마음이 약해 인정해주거나 만만하게 보이는 순간, 혹은 어리숙하다고 판단되면 슬슬 건드려보면서 시작한다. 피해자쪽에서 반응이 무력하다고 판단되면 하이에나처럼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동물의 세계냐고? 아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의 스마트폰 들고 다니는 우리 인간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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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사회에서는 학교처럼 대규모 개떼 마냥 무리를 지어서 특정 인물을 물리적으로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경직적인 위계질서라든가, 한국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똥군기라던가(내가 제일 역겨워하는 것이다), 높아진 자리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가볍게 보는 뒤틀린 사고방식등이 곳곳에서 존재한다. 지금은 그래도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대학가라든가 회사내에서의 똥군기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는 근본없는 야만인들의 난잡한 악습이다.


곳곳에서 특히 조직사회에 속한 개개인이 눈치가 없거나 이기적인 것 같다 하여도 그런 대우는 합리적인 사유가 될 수 없다. 마음이 여리거나 혹은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상처받기 더 쉬워지고 더 위축되어진다. 그러면 아까의 하이에나 본성이 빛을 발한다. 이를 약한 모습, 만만하다 생각해 더더욱 괴롭히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며 소위 말하는 똥군기의 하나인 갑질을 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소문의 주인공이 되거나, 기피 대상으로 찍힌 그 사람은 작은 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남아가겠는가?


왠만해서는 조심해서 글을 쓰려하지만 21세기의 야만인들은 영원한 투쟁의 대상이며 단죄해야 할 악마들이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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