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50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50화 / 5장 전투 수도원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50화 / 5장 전투 수도원


연재일이 아님에도 50화라 기념으로 추가 연재합니다 감사합니다 :)


시테온이 만신전을 다녀오고 식사시간에 마주친 로이딘과 루네는 마치 처음보는 친구들처럼 어색 해 했지만 원래대로의 관계로 회복하는 데 그리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로이딘은 시테온의 방에 찾아갔을 무렵에 들었던 꺼지란 말에 상처를 입었고 시테온은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마음 속으로 묻으려 애쓰는 소심한 로이딘은 그래도 시테온에게 미소를 지어 보냈다. 다시 일정을 자연스레 소화하게된 시테온과 로이딘 그리고 루네는 훈련에 매진했다. 정확히 말하면 매진해야 했다. 베일런이 닦달했기 때문에.


어느새 한 달을 보내고 나서 머리 아프도록 외친 주문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잃어버리다 못해 무감각의 지경까지 왔으며 시테온이 테오메자를 찾을 그땐 혐오만이 가득했지만 이후 살짝 체념한 채 연습했다. 도서관 내 연구실에서 책을 펼쳐 자신이 배우게 될 새로운 주문을 받아들고 기뻐했던 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던 것이다. 베일런의 말처럼 신물이 날 정도로 주문을 외치다보니 이제는 훈련 시간 전후로는 머릿 속에 주문밖에 떠오르질 않았고 거기에 집중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다. 로이딘은 자세가 다소 부족했지만 주문을 외우려는 노력이 보였고, 루네는 반대였다. 시테온은 주문의 발음과 억양이 완벽에 가까웠지만 로이딘과 비슷하게 자세가 부족했다. 하루는 일정을 모두 마치고 로이딘이 자신의 방에 앉아 주문을 외워보았다. 쉴새 없이 외웠기에 분명 누군가가 봤으면 정신나간 사람이라 하며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1인실을 준 것일까? 베일런이 연습을 시키면서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는 데, 거의 의식도 하지 않을 만큼 주문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투 혹은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자기 방어의 형태로 주문을 자동적으로 외쳐야만 순간의 운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말했다. 그는 피데라시스의 경전인 "선지자의 증언"의 내용을 읽어주며 성 아나트라가 세상 밖으로 나와 역사를 쓰기 전 동굴에서 정신 나간 여자 취급 받을 정도로 같은 구절을 외워야만 했다라는 이야기를 로이딘에게 들려주었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로이딘은 고요한 자신의 방 안에서 입으로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너무나 뻔한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서 외칠 때에 다른 생각도 저절로 하게 된다. 외우면서 존다거나, 긴장이 되지 않은 채 여러가지 생각들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베일런은 그것을 "동굴의 틈" 현상이라고 말해주었다.


"동굴의 틈이란 현상을 겪고 있는 거야. 그게 뭐냐면 저번에 말해준 아나트라가 마침내 동굴 안의 빛으로 온 몸이 감싸졌다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동굴 안으로 빛이 쏟아지려면 틈새가 있어야겠지. 그런데 틈새가 없으면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어두운 상태가 아니겠니? 지금 너의 마음도 여러 생각들로 어두운 상태인거야. 그때 주문에 대한 생각들을 한다면 틈새를 더 강하게 벌릴 수 있을 거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도 로이딘은 여러 잡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고 주문에 대한 심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주문을 발휘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 지, 주문을 중심으로 한 여러 생각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려보았다.

당연히 별 의미없는 생각들이라 여겼지만 반대로 다른 잡 생각들도 의미가 별로 없었으나 그런 생각들이 로이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주문 훈련의 목적인 "마치 이 주문이 자신의 일부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때 쯤 효과를 발휘한다"를 위해서 끊임없이 외치고 또 외쳐야 만 했다. 훈련장에서 자세를 잡고 땀을 삐질 흘리며 몇 시간이고 서 있는 채로. 그러다 로이딘은 한 편 호기심에 베일런을 붙잡고 물었다.

"평소에 이러고 다니면 진짜 광신도 아니면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베일런은 언제 챙겼는지 겨울 수수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말했다.

"그 뭐냐, 쉽게 말해 그냥 하는 일상 생각들 있잖아. 저 친구는 멍청하고, 이 꽃은 빨간색 등등 그건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자리가 잡혀 있어. 별 노력이 필요치 않지.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여러 번은 우스울 만큼 엄청나게 부딪히고 무의식적으로든 떠올렸기 때문이야, 반면 주문은 일상과 거리가 먼 현상들을 우리가 직접 발생시키는 거니까 당연히 그냥 있는다고 해서 자리 잡히지가 않아. 이 과정을 노력이라 하는 거야. 주문을 외치는 건, 피데라의 권능을 빌어 마법을 사용하는 거잖아. 그러면 이 마법이 이루어지는 걸 당연히 여겨야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해"

베일런의 말에 의심으로 떠오르던 주문 연습이 조금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 의심마저도 훈련의 일부라고 베일런은 말해주었다. 주문이 언제 이루어지는 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혹시 시테온이 먼저 하든 루네가 먼저 하든 너무 위축대지마, 사람마다 발현되는 환경과 내적 요소들은 다 달라. 여튼 그런 것을 말할 수 있을 정도 까지 가려면 일단 반복하는 수 밖에 없어 아나트라의 말씀처럼."


로이딘은 앉아서 그날 밤. 마음 속으로 외쳐보거나 주문을 옮겨써준 양피지를 그대로 책상 앞 벽에 붙여 놓아놓았기 때문에 바라본 채 읆으거나 그것을 허수아비처럼 여기며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치우며 자세를 잡고 외쳐보기도 했다. 문득 깨달은 점은 이렇게 외치면서 기존의 잡 생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외칠 때엔 "하, 얼마나 해야 되는 거야"라고 궁시렁거리며 시작하지만 외치는 과정중에선 그런 생각조차 사라지고 다시 주문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로이딘은 이 과정이 하나의 발전인지 묻자 베일런은 그날도 겨울수수를 씹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맞아. 주문이 당연시 되게끔. 집중이 뭐겠어,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는 것이지"

다른 친구들도 이런 고된 과정을 겪고있는 지 물어보았는 데 놀랍게도 시테온은 주변의 티끌들이 사르르 감싸는 듯한 현상이 보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고 했고 베일런도 그것을 목격하며 얼마남지 않았다고 조언해주었다 한다. 루네도 시테온이 신기해하며 자신은 멀었다면서 자세는 흠잡을 게 없지만 주문 연습에 힘을 쏟으라고 조언했다 한다. 로이딘은 시테온에게 방법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시테온은 평소 기도하듯이 했다는 것에 무언가 두 친구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너희들은 떠들고 있을 때 나는 언제 어디서든 테오메자께 기도를 드리지, 거른 적이 있던 가?"

이마의 흉터도 있는 시테온을 새삼스럽게 다시보게 되었다.


수도원에 온 지 두 달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문제인지 로이딘은 계속 외치며 노력하고 있단 것을 스스로 상기시켰는데 얼마 안 가서 시테온이 먼저 주문을 이루어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충격적인 건 루네도 얼마 안 되어서 몇 일 후 주문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기숙사 내에서도 알지 못하고 어색하게 인사만 하던 동료 수도사들도 시테온과 루네에게 각각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심지어 식사시간에도 찾아오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연습장에서 베일런의 앞에 선 시테온은 "레피오, 피데라여 당신의 피조물을 온기로 살피소서"를 외치더니 두 손 안에서 빛이 새어나옴을 보게 되었다. 시테온은 그간 티끌만 날리다가 두 손 안이 환하게 비추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땐 깜짝 놀라 마구 휘저었다. 화상을 입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손이 치료 주문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에 베일런은 마침내 호탕하게 박수치며 웃으며 신나했다.


마찬가지로 루네도 베일런의 앞에서 "아엘리아, 피데라여 당신의 피조물이 폭풍처럼 몰아치게 하소서"를 외치더니 회오리 바람들이 바닥에서 일렁거리게 만들었다. 살짝 불완전하지만 거의 완성이라 볼 수 있었고 루네를 크게 칭찬하며 베일런은 마무리만 잘해보자고 격려했다. 로이딘은 루네에게도 어떻게 가능했는 지 묻자, 이마를 만지며 외우는 시테온처럼 자기는 그냥 걸음 걸음마다 무작정 외치고 또 외쳤다는 것이다. 이는 로이딘과 크게 다르지 않는 노력이었지만 왜 자기는 안되는 지 답답해 했다. 베일런은 앞서 두 친구에게 과시의 목적으로 주문을 보여줘선 아니되며 피데라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며 크게 경고했다 한다. 그래서 묻는 이들에게 그리고 로이딘에게조차 말로만 설명해주었다. 얀자도 저번처럼 2층 테라스에서 시테온과 루네의 발현되는 주문을 인상깊게 바라보았다. 로이딘은 질투가 났고 부러웠다. 두 친구가 무언가 얄밉기도 했는데 같은 말을 해도 자랑하듯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도 연습은 계속되었고 주문을 발현시켰다 해서 시테온과 루네도 피해갈 순 없었다. 로이딘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주문을 힘 없이 외쳐보았다. 어느 날,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깊은 밤에 그는 양피지를 째려보다시피하며 주문을 외웠다. 계속 외치고 외쳤다. 계속 말하고 말했다. 계속 되뇌이고 되뇌였다. 졸음이 몰려왔고 두 눈이 살며시 감기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버렸다.


로이딘은 잠결에도 입술을 움직이며 주문을 뭐라 뭐라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꿈 속. 그는 어느 동굴에 위치 해 있었는 데 너무 어두워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나마 자신의 손을 간신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두 발을 뻗고 앉아 있다가 동굴이 무언가 산사태라도 난 듯 크게 움직이기 시작함을 느꼈다. 로이딘은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거대한 어금니를 자랑하는 괴물이 앞에 등장했다. 천장이 조그맣게 뚫리며 돌이 떨어지더니 달빛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괴물 같은 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온 몸에 소름이 쫙 퍼지며 괴물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도망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자 동굴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울로메히, 나의 자녀 아나트라가 물리친 멧돼지이지. 홀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깨부수어버리는 괴물이다. 자, 로이딘? 너의 차례다"

로이딘은 어둠 속에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거의 울기 일보 직전으로 사방을 살폈다.

"뭐라구요? 어떡해야합니까 살려주세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가르쳐 준 주문과 함께 있지 않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물 한 채 만한 크기의 괴물이 그 건물의 문만 한 작은 생명체인 로이딘을 짓밟으려 오고 있었다. 로이딘은 공황상태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계속 읆조렸다. 그리고 거침없이 달려오는 울로메히를 두고 두 눈을 찡그려 감아버렸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

달려오다가 바로 앞에서 멈추어버린, 거대한 발굽과 함께 고개를 사선으로 내리고 위로 쳐 올리며 로이딘을 날려버리려 했던 울로메히가 갑자기 울부짖었다. 로이딘은 자기가 살아있음에 살짝 눈을 떠보았다. 동시에 로이딘의 주문은 그가 상상해왔던 마법의 모습과는 달랐다. 빛이 어둠을 뚫긴 했으나 보통 생각하는 내려 꽂히는 빛 혹은 하늘에서 지상의 동굴까지 통과하는 빛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하늘의 빛을 거꾸로 놓은 것 처럼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빛줄기들이 울로메히의 배와 턱을 직격으로 관통하여 동굴의 뚫린 천장 부분일 경우 그대로 지나갔고 아닌 경우엔 동굴에 부딪혀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울로메히가 아가리를 벌리며 발악을 하려 했으나 이미 땅에서 솟구친 빛 줄기로 턱이 관통 당하여 머리를 지나친 지 오래였다. 울로메히의 육신이 점차 먼지처럼 흩날리며 서서히 사라져갔다. 솟구친 빛들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이 빛의 기둥 중 하나는 로이딘을 발 아래에서 그의 몸 전체를 훤히 빛내고 있었다. 로이딘은 괴물이 사라짐과 동시에 빛 줄기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광경의 몽환적인 동굴을 미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며 얼이 빠졌다.

"주..주문이 일어난 건가?"

그는 혼잣말로 이야기했으나 답변하는 이가 있었다.

"수고했다. 로이딘.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

울로메히가 사라진 빛나는 동굴이 갑자기 순식간에 어둠으로 빨려들어가며 책상에 엎드렸던 로이딘의 두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앞에 박힌 양피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읆조렸다.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5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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