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54화 / 5장 전투 수도원
장편소설 빛의 여정 54화 / 5장 전투 수도원
로이딘은 한 손으로 든 도끼를 쥐고 베일런이 무엇을 시킬 지 긴장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별 게 없었다. 어차피 연습용인 무딘 날의 도끼로 무엇을 보여달란 것은 무리가 있었으니 자세를 보겠다는 취지였다.
"보통 나무를 베듯이 때려봐, 옆으로 날을 눕혀 때리듯이 말이야"
베일런의 말대로 연습용 허수아비를 나무 삼아 도끼로 때려보았다. 다들 반응이 없었다. 그냥 나무 베는 행동인 동시에 허수아비는 꿈쩍도 안했기 때문이다. 베일런이 지켜보다 말했다.
"안 그래도 양손 장대 도끼를 쥐면 한손 도끼로 바꾸어 줄까 했는 데 잘됐네. 가만히 거기 서 있어 로이딘."
무슨 소리인가 어안이 벙벙했던 로이딘을 두고 베일런은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몸을 기울이더니 로이딘과 친구들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몸을 일으키며 두 손으로 원형방패를 들고서는 다시 로이딘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저번에 말했지? 전투 수도사의 제 1의 목적은 무엇이다? 생존이라 했지?"
그러고선 로이딘의 남은 한 손에 방패를 끼웠다. 처음 잡아보는 방패의 무게가 익숙하지 않아 꽉 붙잡고 있었다. 베일런이 말했다.
"로이딘이 먼저 방패를 착용했지만 시테온도 마찬가지고 루네도 보조용이겠지만 더 작은 방패를 항상 차고 다니게 될거야"
로이딘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자신들이 방패를 항상 들고 다니고 매고 다니는 것이 다소 귀찮다고 생각한 시테온이 말했다.
"그냥 하면 안돼요? 주문으로 막으면 되잖아요?"
베일런이 시테온의 말에 그리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전장에서 방패가 없으면 전투 수도사의 기본 자질이 되지 않은 거다. 시테온"
시테온도 차례가 되서 자신의 무기로 검을 집으려 했으나 베일런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검은 구하기도 쉽지 않고 숙련되는 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일런은 거의 반 강제로 작은 쇠뭉치가 달린 철퇴와 지팡이 사이에 있는 듯한 무기를 시테온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 저 검 쓸래요!"
다 큰 사내가 앙탈을 부려도 소용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철퇴와 방패를 손에 쥔 채 시테온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다들 백병전 그리고 궁술 연습은 역동적인지라 상대적으로 가만히 하나의 자세를 유지한 채 똑같은 주문을 외워야 했던 인내와 고통의 주문연습보다는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처음 첫 주동안 연습장을 나온 나날들은 모두 똑같이 앓아 누워야했고 근육 통증으로 뻐근하게 다음 날을 맞이해야 만 했다. 방패를 손에 쥔 채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굉장히 피로가 컸던 지라 베일런은 방패를 먼저 다루는 법부터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방패만을 들고 몸의 균형을 유지 한 채 허수아비를 상대로 막거나 때리는 연습을 계속 진행했다. 루네도 활을 쏘았지만 팔뚝 길이의 방패를 다른 친구들처럼 열심히 다루어야 했다. 어느 날은 베일런이 움직이는 허수아비로 맞상대가 되어주며 진행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주변의 허수아비를 상대로 1대 다수의 상황 또한 소화를 해야만 했다.
육체 훈련을 다지고 있던 어느 날, 로이딘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슨 책들이 있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간 도서관을 들러보지 않은 것은 아니였지만 그 날은 유난히 아무 이유없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발걸음을 향했다. 도서관 안쪽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필사를 담당하는 수도사들이 글을 옮겨 적거나 독서대에 앉아 크게 뭐라뭐라 암송하며 책을 암기하고 있었다. 책은 비쌌고 수요는 많았으나 공급은 드물었다. 그리고 수도원이 자랑할 만한 비싼 보물이기도 해서 함부로 반출하지 않았고 오직 도서관 내에서만 읽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귀한 자녀로 쓰임받고 있다는 뜻이요, 이들의 입에서 피데라의 찬가를 글을 읽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 들려줄 것이다. 가장 깊숙한 안 쪽 작업실에선 예술품이자 사치품으로 부를만 한 경전을 여럿이서 귀한 양피지에 신중하게 아름다운 서체로 옮겨 적으며 완성하고 있었다. 염료를 가지고 색을 더한 그림을 그리고, 옆에서는 책의 경첩을 만들면서 주문자의 요청에 따른 보석 몇 개를 박아 넣고 있었다. 그곳은 수도사들 조차 출입금지 구역으로 무장한 수도사가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로이딘이 넓은 도서관에서 1층과 2층의 책장을 훑어보았다. 1층은 피데라시스의 경전인 "선지자의 증언"과 교리 해설집이라 볼 수 있는 책 여러 권과 함께 일반 정경사문을 다룬 책들까지 다양하게 꽂혀있었다. 가지고 나가지만 않으면 무엇을 봐도 상관이 없었던 지라 말로만 듣던 정글지대의 귀한 식물들이 담긴 자료집을 펼쳐보기도 했다. 로이딘은 신기한 초록 잎들을 훑어보면서 우연히 시테온이 크리네스에서 가지고 있었던 약초 중 하나를 보게 되었다.
"청록부채꽃... 이 꽃은.. 심신을 안정케 한다?"
몇 가지를 살펴보다 다시 책을 덮고 넣은 뒤 위 층으로 향했다. 2층은 심화된 피데라시스의 교리집들과 역사 그리고 주문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로이딘은 그 중에 "절대기준의 전쟁사 : 교리 주석과 대륙 이교에 맞서는 피데라의 절대기준"을 들고서 독서대에 옮겨 펼쳤다.
절대기준의 전쟁사라는 책은 지난 수백년간 성 아나트라 승천 후, 빛의 심판의 만신전 만행사건 등을 설명함으로 절대기준의 교리가 세워진 이유와 예배의 형식, 주문, 신자의 삶에 관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교단의 교리 변천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대표적인 교리 합의를 위한 수도원 회의는 다음과 같다.
제 1차 헤르논 공의회 : 빛의 심판을 파문과 단죄, 영광의 아버지 피데라의 모습이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 혹은 부분의 성질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절대기준" 성립
제 3차 수도원 총집공의회 : 각지에 자립한 수도원의 권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헤르논의 수도원장 "훈토"가 총 수도원장으로 옹립. "선지자의 증언"을 정경으로 통일 후 배포.
제 5차 전국 수도원 공의회 : 두번째 선지자의 존재와 정의 논의, 독립한 수도사들의 규율 점검 및 파면 그리고 전투 수도사들의 기강 확립. "모티아"를 총 수도원장으로 옹립.
1차 공의회를 제외한 나머지 공의회는 대륙에 곳곳에 세워진 수도원의 원장들이 헤르논으로 다같이 모여 몇일 간 교리 논쟁과 합의 등을 거치면서 교리를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낸 수도원장에게 피데라시스의 리더, 총 수도원장의 자리로 추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로이딘은 5차 공의회 때는 두번째 선지자의 정의를 확립하였다는 것에 눈길이 갔다. 그들이 말하는 두번째 선지자는 새벽과 같이 어두운 때에 여명의 빛을 가져오는 자라 설명하고 있어 조금 추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는 옆에 꽂혀있던 해설집까지 펴보게 되었고 그 부분을 읽어보니 피데라의 빛을 수호하는 자. 부정한 것들을 막아 종말로부터 빛을 살리는 자라는 설명을 읽고는 과연 자신이 이러한 행동들을 곧 하게 될 것인 지 의심이 갔다. 지금 상황으론 방패도 간신히 들고 도끼도 간신히 휘두르며 침대에 뻗어 자기만을 반복하고 있으니 체감이 안되었던 것이다. 수도원에 들어온 지 몇달이 되어서야 교단의 역사를 깊이 공부해본 로이딘은 머리가 과부하가 되어 이만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주문 연습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었다. 베일런은 최근에 "만약 지금의 훈련 때문에 주문을 연습하지 못한다면 당장 내게 말해라 차라리 다 집어치우고 주문훈련을 하는 게 나으니까 정말이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괜히 주문 훈련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상념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빛은 정말이지 투명한 계곡물과 같이 깨끗하고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빛은 그의 작은 방을 가득 메웠고 초창기엔 순간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든지 손으로 가려야했으나 점차 적응이 되어 이제는 꿋꿋이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로이딘은 다만 오늘 도서관으로 가면서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라는 문구의 해설은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선지자의 증언에서도 간간히만 등장하고, 피데라가 동굴에서 외쳐준 게 전부인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주문은 거의 매일 같이 외웠다. "피데인티"라는 단어가 헤르논의 다른 이름인 "피데인티 코차"의 피데인티라서 연상되어 생각하기도 쉬웠다. 피데인티는 여명이란 뜻이고 코차는 도시라는 옛날 이름임을 말이다. 조각을 언제 찾으러 가는 것일까? 피데라는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잠깐 궁금해하며 주문을 외우니 어느새 빛이 불순물이 끼어있듯 흐릿한 빛 속에서 먼지 같은 것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집중해서 주문을 외워야 했고 그제서야 먼지가 사라진 투명한 빛이 로이딘의 온 몸을 감쌌다.
55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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