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55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55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55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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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데라께서 말씀하시었다. 말로트 그 자는 살아있는 절망이요, 세계의 절망이니 천계의 자리를 내게서 빼앗었으니 온 세계를 늪으로 빠뜨릴 것이다. 보라, 이제 그의 권능은 하늘이요 나의 권능은 땅 속이니 하늘에서 부정한 것들이 쏟아져 내려 올 것이다." - 피데라시스 경전 "선지자의 증언"중 발췌


"첫번째 문이 열렸으니 자녀들아 준비하라. 이제 우리의 때가 왔고 억압자들은 세찬 파도에 허무히 부수어지는 돛단 배와 같으니라. 우리의 대적자들은 낫에 베어지는 수수와 같으니 그 누가 우리와 대적하리오. 어서 안개를 걷어내고 우리 주인 오실 길을 정리하라" -아보의 형제들 경전 중 발췌


아보테에 위치한 아보의 형제들 교단 대신전에서 대주교의 칙령이 떨어졌다. 그가 읆은 경전의 구절은 "첫번째 문"이었다. 이는 아보의 심판과 함께 두번째 아보의 사자인 그의 대리인이 이제 강림할 것이란 예언을 뜻했다. 대주교는 살아있는 경전이나 다름없었고 그의 말에 죽은 자가 살아났고 살아난 자는 쉽게 죽었다. 대주교의 이름은 알려진 바 없으니 모두가 "대주교님"이라 칭했다. 국왕 아넬피스에게 덩쿨왕관을 수여한 자도 대주교니 그의 권위는 대륙에 으뜸이었다. 아넬피스의 궁전엔 항상 대주교가 머물렀고 나라의 대소사를 논할 때 아넬피스 곁에 대주교가 있었다. 그는 황금 덩쿨이 그려진 검보라색 로브를 입었으며 관에 감겨져 올라간 덩굴 장식이 있는 타원형 주교관을 머리에 쓰며 얼굴엔 가면을 쓰고 있어 신비함이 배가 되었다. 궁정과 교단 사람들 모두 가면 속 진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로이딘 일행이 저 멀리 헤르논 수도원에서 훈련을 거듭할 무렵, 대주교가 교단의 본 신전에서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읽으니 군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운 적막감에 휩싸였다. 이윽고 그의 혀와 손짓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풀이해주니 다시 군중의 분위기가 뜨거운 열광으로 바뀌었다. 아보의 메시지가 마침내 그들을 일깨웠고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디고에 남아있던 테오메자의 신도들을 갑자기 붙잡아 순식간에 생매장을 하거나 참형을 하는 등 도무지 말로 표현 못할 일들이 수도 디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군중의 열광은 곧 이교도와 이단에 대한 분노로 뒤바뀌었고 그들의 분노는 아보의 재림을 준비하는 헌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디고에서 오랫동안 아나티리캄과 아보테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텝 오부자중 한 명이었던 자는 땅에 묻혀 목만 남은 채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분노한 자들의 던진 흙에 묻혀 최후를 맞이했다.

"함께 웃던 이웃들이여, 왜 오늘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는 가?"

이전만 같았으면 아나타리캄에 선전포고나 한 것이나 다름 없었을 테지만 아나티리캄은 이미 이단 추적대의 본부가 있는 아보테의 보호령으로 전락했으므로 아무런 힘이 없이 당해야 만 했다.


수도 디고가 살육의 광풍에 휩싸이자 그간 이그네움을 위해 파견 나왔던 대륙 곳곳의 사람들은 몸을 사리거나 숨기에 바빴고 디고의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인들은 백주대낮에도 살아남았다. 군중은 자기의 밥줄과 연관되어 있는 자들은 죽이지 않았던 것이고 그와 상관없는 약한 씨앗들만이 솎아 날려버리는 비열한 짓을 하고 있었다. 대의명분은 든든한 배와 두툼한 주머니를 뛰어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단은 혹시 몰라 교단쪽에 연락을 취한 채 뒷돈을 찔러주기 바빴고 사제들은 특정 구역을 따로 지정해서 상인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아보의 자비를 보이라며 사람들을 타일렀다.


반면 극소수의 피데라의 신자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 지 그들도 곳곳에서 사로잡히고 있었다. 바로 이웃처럼 그간 알고 지내다가 교단에 밀고를 했기 때문이다. 밀고를 당한 피데라의 신자들은 디고의 피바람에 휩싸여 테오메자 신도들과 같이 죽임을 당했다. 피데라 신자의 피가 대지를 적실수록 신의 숨결은 더욱 거세게 불어오는 듯 했다. 북풍은 쏟아졌고 거센 추위로 인해 이그네움은 더욱 더 많이 불태워져만 갔다. 자녀들의 영혼이 거두어 질수록 피데라의 분노는 잔잔한 바다에 거센 파도로 울려 퍼졌다. 그가 땅에 있으니 땅에 사는 자녀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힘 없는 신의 애통을 알아주는 자가 없으니 어찌하리오.

자신의 육체 조각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태우는 데에 쓰이고 있어 아버지 된 자로써 심정은 무너지고 있었다.


영원한 추위가 계속 몰아닥치고 디고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찌할 바 모르는 수많은 대륙민들은 땔감을 아끼고 아끼다가 다음날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겨울 수수조차 혹한을 간신히 견디는 듯 했고 수확량이 이전만 못해 많은 이들이 전전긍긍해야 했다. 겨울 수수조차 사라지면 땅에서 두 발과 네 발 달린 것 빼고는 정녕 먹을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 두 발로 선 인간을 살아남기 위해 잡아 먹는 자들이 있었다. 정녕 대주교의 예언이 아보의 재림을 뜻하는 것인지 파멸로 가는 문을 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도 디고에서의 광풍은 곧 아보테 전역으로 확산했다. 대륙의 서쪽 절반 가까이를 집어 삼킨 이 드넓은 왕국은 아보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그간 묵혀왔던 타민족, 이교도들에 대한 분노를 쏟으며 한층 긴장의 불씨를 당기고 있었다. 본래는 이단 추적대들이 해야 할 행동들을 이제 남녀노소 너나 할 것없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하며 살육으로 만든 피웅덩이의 길로 신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나티리캄 현지에서도 공격을 받았고 비교적 소수의 아보의 형제들 신자들과 이단 추적대들이 텝 오부자에 대한 이단 심문을 가하고 있었다. 정통적인 텝 오부자는 자신의 테오메자를 끝까지 지키려 했으나 몸이 묶여 화형을 당해야만 했다.


아보의 형제들은 경전의 구절대로 그들의 억압자들과 대적자를 상대하고 있단 생각으로 왕국내 다수의 평민들을 헌신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생사의 저울에서 맘대로 추를 옮기고 있었다. 곧 닥칠 부정의 소산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채 말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하늘에서 부정한 것들이 떨어질 징조들로 변하고 있었고 피데라가 두 발로 선 이 땅은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5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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