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56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장편소설 빛의 여정 56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홀연히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절망의 추종자는 피로 얼룩진 동굴에서 계속 머물며 핏빛 늑대가 물어다준 제물의 향내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거친 괴물의 곱디 고운 속 털을 문질러 댔다. 이 정신나간 인간에겐 피는 그의 향수요, 죽은 자의 살점은 금화였으니 죽은 자가 많을 수록 그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황홀경은 절망이 어떻게 자신의 추종자들을 일으켜 세울 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역사할 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을 추종자들은 하나의 황홀경에 갇혀 연대의식을 느꼈다. 절망이 시키면 그리했고 절망이 하지 말라하면 하지 않았고 절망이 죽으라 하면 스스로 죽었다.
아보 신앙이 마침내 기지개를 펴 세계를 흔드니 절망은 너무나도 만족히 웃었고 황홀경에 빠져있던 추종자들도 덩달아 주인과 같이 웃어댔다. 홀로 동굴에서 크게 울릴 정도로. 어둠 속에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게 숨어 지내던 이들을 누군가가 마주한다면 그 사람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핏빛 늑대에게 물려죽거나 아니면 정신나간 추종자들의 광란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체는 제단에 바쳐져 남김없이 절망의 먹이와 절망의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기나긴 세월동안 야수와 같은 삶을, 지독한 악취와 함께 동굴에 지내던 그들은 우연히 찾아온 상단이나 도적들을 잡아 먹기도 했다. 무엇이 늑대고 무엇이 사람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의 야만성을 가진 이들은 오로지 황홀경만이 그들을 온순케 만들 뿐이었다.
문이 열리면 누군가가 나오든지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보의 대주교가 외친 "첫번째 문"은 아보의 교단이 예상하거나 기대한 것과 달리 부정한 것들이 그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첫째론 절망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작품으로 빚어낸 시체들이 그러했다. 절망의 축복 아래에 등이 굽은 채 날개가 뻗어나와 날아다니는 송장들이 동굴 밖을 나와 숲을 배회하며 온기를 가진 모든 것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간 핏빛 늑대가 물고 온 시체들은 바로 이 날개달린 산 송장인 "박쥐 시체"를 만들기 위함이니 절망의 추종자들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이자 마법사였다. 그러나 그 기세는 미세하므로 숲속 깊숙이 들어와 길을 잃지 않는 이상 공격 받는 자는 드물었다. 아직까지는.
황홀경에서 펼쳐지는 웅대한 절망의 역사는 이제 시작할 참이었다. 그들의 비전은 절망이 세계를 우그러뜨리고 곤죽으로 만들어 과일처럼 피로 즙을 짤 종말의 그림이였다. 추종자들은 제 주인이 곧 이길 것이란 환상에 기뻐서 동굴에서 춤을 추며 핏빛 늑대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추종자는 대부분 동굴에 혼자 있었으나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수로만 집단 생활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들은 철저히 절망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고 계획을 위해 간간히 인간세상으로 빠져들어가노라면 전혀 몰라 볼 정도로 깔끔한 용모와 함께 화려한 옷을 갖춰 입은 채 상류층으로 녹아 들어가 사회를 농락했다.
한편 아보의 형제들은 통제 불가능한 군중의 분노를 적극 이용하고 있었다. 분노의 파도에 휩싸여 희생된 자들의 유산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바빴다. 전국 각지에서 압수한 희생자의 물건들과 보물들은 교단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 하루 아침에 창고가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다. 폭압을 견디지 못해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런 그들에게는 "질서"의 진리로 경고하거나 질서를 재확인 시켜주어야 했다. 의심많은 자들이여! 마찬가지로 고문실도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니 땅 위는 금은 보화요 땅 아래는 사람들의 곡소리로 넘쳐나니 실로 부정하고도 부정했다.
이단 추적대 본부가 있는 보호령 아나티리캄은 사람들이 질리다 못해 가만히 있으면 생매장, 항의하면 화형이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고 쥐꼬리만큼 받아낸 이그네움이 녹아 없어지기 일보 직전에 겨울수수 낱알을 턴 풀더미에 꽂힌 쇠스랑을 사람들은 조용히 뽑아 들기 시작했다. 아보의 형제들이 지역에 명망있는 텝 오부자를 상대로 이단 심문을 걸어버리면 역풍이 거세게 불게 뻔하기 때문에 차마 건들이지 않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뜻이 있는 텝 오부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항거의 계획을 짜고 있었다. 동부 아나티리캄의 텝 오부자인 "부로다치"가 그러했다.
부로다치는 텝 오부자의 전통적인 의식을 행하며 신에게 자비와 혜안을 빌었다. 넓은 마을 광장에서 그를 도우는 예비 텝 오부자들은 바삐 움직여 원형의 진에서 간격을 두며 작은 화톳불을 만들고 약초를 뿌려 향을 피워댔다. 그리고 잡아온 사슴 한 마리를 부로다치 앞에 눕혀 놓았다. 아나티리캄의 내로라 하는 장로들과 다른 텝 오부자들을 비롯해서 평민들까지 구름떼처럼 모여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부로다치는 이마를 만지며 침을 뱉었고 사슴의 눈을 가리고 뭐라 읆조리며 단검으로 그 생명을 신께 올려 보내드렸다. 그리고 배를 갈라서 사슴의 내장을 만지며 점을 쳤다. 사람들은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향이 피어오르고 부로다치는 배에서 손을 꺼내 화로에 내장을 던지며 신께 바쳤다. 그후 그는 이마를 만지며 피를 묻혔다. 그리고 침묵을 잠시 지키다가 크게 외쳤다.
"테오메자께서 분노하셨다. 테오메자께서 몸부림을 치셨다. 테오메자께서 징벌을 명하셨다!"
부로다치의 말에 사람들은 신의 음성에 같이 분노하며 복수의 맹세를 다짐했다. 이제 그들의 쇠스랑은 아보의 형제들에게 꽂히기 전 까지 결코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터였다. 이것은 과연 신들의 전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절망의 거대한 계획 하에 펼쳐지는 하나의 비극이 될 것인가?
5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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