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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cafe Dec 30. 2023

초1adhd일기_지금 여기 시골 사는 이유

제목: 미쳤어요이야기 & 인제 학교 안다닐거다 & 엄마를 바꿔주세요

<초1adhd일기 2022년 6월 20일_미쳤어요이야기>

0000000는 나한테 "미쳤어요" 라고 한다
개는 왜 그런거냐면 나쁜말 나오는 유트부를 많이 봐가주고 그렇다
0000000이는 공부도 못하고 수학도 못한다
저번에 그것에 대해서 몇개 배웠다 미친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쁜말 나오는 유트부는 보지말고
좋은말 나오는 유트부는 보고
나는 네모아저씨 어려운 팽이접기를 봐야되겠다
<초1adhd일기 2022년 6월 21일_인제 학교 안다닐거다>

내가 1학년에들 다 없엘거다 그리고 인제 다른 학년이랑만 놀 것이다
내가 1학년 얘들 그리고 또 그런다며는 죽일거다
죽이는거는안된다 경찰잡아간다
오늘 놀이채육 시간에 내가 목이 말라가주고 컵 물을 한입 먹었는데 다 마셨다 000가 막았다 xxx이는 물이 없어졌다 그레서 먼저가 내 등을 때렸다 인제 학교 안다닐거다
놀이채육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했는데 000가 7대 등을 게속 때렸다
처음에는 2대 때렸고 두번째는 5대때렸고 그래서 석대다
나도 000이 6대 등을 때리면서 울었다
000는 엣날에도 자주 나를 때린다 그럼 앞으로 나도 때릴거다
내가 목말라서 000이 물 먹을라고 잘못한 게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나는 인제 학교 계속 안다닐거다 절대 안다닐 거다
<초1adhd일기 2022년 6월 22일_엄마를 바꿔주세요>

소엄마로 바꿔주세요
선생님이 오늘 사과하라고 해서 개네들이랑 나랑 사과했다
아직 1학년이니까 그런거야 2학년 올라가며는 나아지겠지
내일 학교 안오면 돌봄선생님이 운다고 했다
나를 못 봐가주고 그런다 하루밤 지나고 이틀밤 지나고 학교 갈거다
학교가기 싫으며는 1주일에 한번씩만 갈거다
인제 3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3456학년들은 아무 말도 안건다
1.2학년이 문제다 2학년들만 아직 어려가주고 그런다
얘들은 요즘 나한테 필기도구라고 이름을 부른다
이제는 그렇게 안부르고 원숭아라고 불른다고 했다
000000은 나한테 완전 미쳤어라고 말하고 내가 했다고 거짓말 한다.
엄마는 0000이가 한 거 한다.
그러캐도 안부르고 원숭이라고도 안부른다고 했다
ㅎㅎㅎ네 형이 앞으로 그러면 때린다고 그런다
왜 그런거냐면 안좋은 일이니까
나도 이제 그렇게 안부를거다
내가 누나들 무시하면 때린다고 햇다
000000는 왜 때리는 거냐면 내가 먼저 시비걸었다
개도 화가 나가주고 딴 사람은 딴사람 생각이 있는 거다

아침밥은 주먹밥 비빔밥 김밥같은 걸로 뚝딱 해치운다. 식후에는 언제나처럼 모닝독서를 한다. 독서록을 쓴다기보다 대충 괴발개발 그려놓는다. 신발을 신자마자 문 앞에 서서 "엄마, 오늘은 3시 30분까지 오면 돼요. 그러니까 3시 25분에 나와요." 명령조인지 부탁조인지 애매한 당부를 투척하 후다닥 학교로 달려간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제야 이불에서 눈은 떴지만 아직 몸을 일으키기 전 몇 분을 즐기며 뒹굴고 있는 둘째에게 시선이 간다. 얼마 전 생일선물로 사준 애니멀 큐브 앓이는 식을 줄을 모른다. 애니멀 큐브 조립하는 동영상까지 찍어달래서 식전부터 10분짜리 영상을 찍어 주었다. 집앞이 병설유치원이라서 한창 늦장을 부려도 좋다.


둘째랑 등원하는데, 어젯밤에 오갔던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 갑상선 빨리 낳게 해 주세요"라는 또랑또랑기도 저에 깔려 있던 여러 마음 중 하나는 엄마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엄마가 낫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 그리고 엄마가 나아야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까지 깔려 있다. 둘째 아이는 시골 살이가 싫은가 보다. 다시 아파트로 가고 싶다고 (예전에 살던 34평 아파트의 이미지를 그리며) 투덜대곤 한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시골에 이사온 거야. 근데 넌 다시 아파트에 살고 싶어?" 물으나 마나한 소리다.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 갈 때쯤 다시 도심으로 이사 가려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형 때문에 시골 살고 있다고 말하면 은연중에라도 형 탓이라고 생각할까 봐 엄마가 아파서라고 하얀 거짓말을 해두었다. 엄마 탓으로 해두자. 남편도 시골로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내심 못마땅하고 동생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족 모두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환경이란 없나 싶네요.


요즘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신문지면을 오가는 세간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러면 나는 왜 시골로 이사를 와야만 했는가?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 곪아 터진 것뿐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아픈 공교육의 역사인가! 시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날의 일기장에 도시에서의 삶인가 시골에서의 삶인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흔적이 있다. 소규모 학교에서 2년을 지나면서 아이의 마음이 훨씬 편해지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산의 아래 수면 저 깊숙히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이 재하는가! 아들이 초등시절을 잘 견뎌주기를 바란다. 그 이후에는....?


또 소규모 중학교를 찾아보리라 생각한다. 근데 왜 자꾸자꾸 시골로 가야만 하는가? 도심의 학교에서 버티면 안 될까?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끼인 학생들이 많이 있다. 학교에서 아슬아슬 버티는 학생 개인에게도, 키우는 부모에게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도 버겁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래 추모글에서 어느 선생님이 "교실에서의 삶이 때로는 얼음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꽁꽁 얼어붙은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빙점을 찾아야 할까? 김현수 교수님이 말씀하시듯,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활동 보조교사, 협력교사, 행동중재 지원 전문가, 학교상담사, 학교사회복지사, 전문 상담교사 등이 모두가 돌봄의 체계를 이루어 접근하는 시스템.


학생 개개인은 물론이거니와 특히나 경계를 걷는 학생들,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체계적인 지원이 하다. 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모두의 노력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교육지지기반이 구축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그것을 위해 일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적인 중지(志)를 모아야 한다.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 49재 추모글>

선생님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정신건강의 한 전문가로서,
교육의 전문가이신 선생님들의 열망과 헌신을 강력히 지지하고 고인된 교사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바라는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입니다.

많은 다른 전문가들도 지금 학교가 얼마나 위기에 처했는지, 교사들이 아픔에 시달리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사를 위해 많은 변화와 개혁, 지원이 필요하며, 교사들의 움직임에 더 강력한 지지를 앞으로도 보낼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절대 여러분들만 외롭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이 자리에 선 것은 현실의 아픔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빌어 선생님들과 함께 분노하고 애도하고 그리고 우리 시대 교사들의 아픔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교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성 민원, 과다업무, 학교 폭력 관련업무, 정서위기학생 업무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런 행위를 담임교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아가야 하는 전근대적 조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선생님이 저에게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수업은 잠시 하고 업무가 대부분인 삶이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교육의 근본적인 요구에 언제 교사가 다가서게 할 것입니까? 정말 교육다운 교육을 언제 선생님들이 할 수 있게 할 것입니까?

사회적 변화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나 다양한 위기학생, 감정조절이 안되는 학생은 늘고 있으며, 그래서 이에 대한 지원을 교사들이 호소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인력 투여, 학급 학생수 조절, 교사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이미 수많은 정책을 적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특별한 지원도 없이 어렵게 교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30명에 육박하는 교실 정원 속에서, 힘든 여러 학생들 수 명이 교실에 있고, 또 행동이 조절되지 않는 아이가 끊임없이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 사이 민원전화도 응대해야 하고, 행정업무 결재도 빨리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수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활동 보조교사, 협력교사, 행동중재 지원 전문가, 학교상담사, 학교사회복지사, 전문 상담교사 등이 모두가 돌봄의 체계를 이루어 접근하는 시스템으로도 외국 전문가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어려운 상황에 현장의 교사, 담임 혼자 모두를 감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특수교육 및 학교상담 등 몇몇 분야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지원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가 상담했던 신규샘은 마치 정글에 던져진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뜯기고, 학부모님들에게 뜯기고, 언론에게 뜯기고 때로는 정치에 뜯겨왔다고 하면서 그래서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전문가로서 이런 상처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홧병, 우울증, 외상후 울분장애와 같은 진단을 해야 하는 것이 괴롭고 그런 진단을 교사들이 더 이상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들, 더 이상 교사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는 온갖 업무를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 교육부가, 교육청이, 또 학교에 시스템을 세워야 하는 분들이 나서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훌륭한 교사, 책임감이 높은 교사들은 또 자신을 아픔, 슬픔,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제발 교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교사를 희생양 만드는 체제를 중단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 더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세요.

제발 "예"라고 말하면서 지치고, "아니오"라고 하면서 힘들어하는 마음은 이제 그만 하기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라고 말하면서 주장하고, "아니오"라고 하면서 마땅한 요구를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제가 상담했던 선생님의 소원을 허락하에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교실에서의 삶이 때로는 얼음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아님 전쟁터 속에 수많은 부상병들 틈의 위생병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나의 소원은 하루라도 아무도 안 싸우기/하루라도 아무 민원 없기/하루라도 아무 공문 없기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현실적 정서 위에서 좋은 교육을 하고,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고, 저녁시간에, 새벽에 연수를 들으십니다. 이렇게 학교를 버티고 있고, 소진을 감수하고서라도 헌신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국민들도, 전문가들도, 정치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은 이제 전문가뿐아니라 많은 학부모님들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반성도 합니다. 좋은 여건에서 신나게, 행복하게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저 또한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국가는 50만 교사 중에 30만 교사가 모여서 외치는 것을 수용하기를 바랍니다. 30만 교사가 외치는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의 주장을 담겠다는 것입니까?

오늘 서이초 49재가 마지막이기를 바랬지만 죽음으로밖에 답을 찾을 수 없었던 호원초, 신목초, 군산, 용인의 선생님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교사가 학생 곁에 있으려면 교사를 지지하고 지원해야 가능합니다. 교사들은 병들어 가는데, 계속 그 옆에 있으라고 하면 그냥 아픈 채로 있으라는 것은 외면이면서 동시에 희생하라는 요구일 따름입니다. 좋은 의사를 양성하지 않고 국민에게 좋은 치료는 불가능하듯이, 교사를 존중하지 않고 불행하게 하면서 훌륭한 교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49재를 맞이하여 하늘에 계신 서이초 선생님의 영혼이 평화롭기를 다시 기원하고, 또 그 가족과 친지분들의 애도에 함께 하며 그 선생님과 죽음을 맞이했던 모든 선생님을 기억하기로 약속하며 49재에 함께하는 저의 추모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지금도 힘든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들!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마시고,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홀로 있지 마시고, 혼자 두지 않겠습니다.

함께해서 꼭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싶었던 교실, 국민들이 배우고 싶었던 교실에 다가서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것을 밝히며, 행복한 교사야말로 우리 사회의 희망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년 9월 4일
정신과 의사 김현수

출처:
https://steinerinstitute.tistory.com/entry/9%EC%9B%94-4%EC%9D%BC-%EC%84%9C%EC%9D%B4%EC%B4%88-%EC%84%A0%EC%83%9D%EB%8B%98-49%EC%9E%AC-%EC%B6%94%EB%AA%A8%EA%B8%80-%EC%A0%95%EC%8B%A0%EA%B3%BC-%EC%A0%84%EB%AC%B8%EC%9D%98-%EA%B9%80%ED%98%84%EC%88%98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어느 매서운 바람이 불던 겨울날 시골로 이사했다. 내 마음 속으로 조용한 다짐을 하였다. 이것이 공교육에 기대는 마지노선이리라. 만약 여기서도 아이랑 행복할 수 없다면 공교육을 등질 생각이었다. 홈스쿨링이 아니라 언스쿨링으로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 구조와 학교 구조는 경계를 걷는 아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이 사회에 살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우기를 바래서다. 쓰라린 좌절을 통해서라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아이가 행복할 수 없다면 득과 실을 따졌을 때, 득 보다 치명적인 실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공교육을 떠나 내 아이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 어긋난 모성의 발로라고 치부될지라도.


어쨌든 당장은 교육현실이 바뀌지 않으니까, 내 아이를 계속 소규모 학교에 보내려 생각한다. 아무도 우리를 시골로 내몰지 않았으나, 내몰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아이가 비뚤어진 모습으로 비칠 느린 성장과 더불어 개념 없어 보이는 태도를 지녔음을 잘 알고 있다. 그를 지도하는 선생님에게도 반친구들에게도 미안스러울 때도 많다. 가정에서 부단히 노력함에도, 아이 스스로도 애쓰며 노력함에도 여전히 뇌와 기질의 문제로 극복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로 인해 관계가 망가지고 일그러진 자아상을 가지고 평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직 추수의 때가 멀었다. 곡식이 여물기까지는 해와 비 같은 외적인 도움과, 뿌리와 줄기 같은 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직 어린 새싹 같은 아이가 생애 초기에 큰 장애에 넘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안정망을 제공하고 즐겁게 성장하여 자기만의 인생을 잘 항해해 나가도록 도울 생각이다. 그것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가게라고는 편의점 하나밖에 없는 시골마을의 불편한 평온함에 잇대어 살고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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