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라볶이)
“얘들아, 새로운 떡볶이를 발견했어.”
“밀떡과 매운맛의 지존인 신존에서 먹는 떡볶이보다 강자가 있단 말이야?”
“응! 너희 엽기적인 로제 떡볶이 먹어봤어?”
초등학교 육 학년을 시작으로 이십육 년 동안 포근한 우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 세 여자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우리의 최애 음식 떡볶이가 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나와 친구 L 양, 새 학기 첫날 둘은 짝꿍이 되었다. 첫 만남의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던 어느 날, L양은 교과서 구석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과일 맛 음료수에 그려진 캐릭터 쿠우와 매우 비슷하고 귀여웠다.
그날 이후 친구의 그림에 관심이 생겼고 서서히 우리의 사회적 거리는 좁아지고 있었다.
일 년 후 친구 L양과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우린 다른 반이 되었고 우리들의 새로운 짝꿍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나, L 양, S 양, K양) 두터운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 과목을 너무나도 싫어했던 내가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서 크게 혼이 났었다. 그 모습을 본 K양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00야, 너 분식 좋아해? 학교 끝나고 콜? 친언니가 알려준 맛집이 있어.”
하원 후 우리는 K양을 따라 학교 후문 쪽으로 갔다.
다섯 평 남짓에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세 개가 있는 작은 분식점 식당. 우리는 조심스레 문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모든 것이 낯선 우리들과는 달리 친구 K양은 이곳의 분위기가 익숙한 듯 오른손을 반쯤 들어 가벼운 목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여기 라볶이 사 인분 주세요.”
‘라볶이? 라볶이가 뭐지?’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요리를 고집하는 엄마로 인해 그동안 라볶이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순간의 모든 것이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놀라웠다.
그릇에 빨간색 진한 국물과 함께 담겨 나온 라볶이, 단무지, 어묵 국물이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젓가락으로 라볶이를 한 가닥 집어 입 안에 넣는 순간 나의 두 동공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는 꼬들꼬들함을 한껏 뽐내고 있는 면과 양념의 달콤함, 매콤함의 하모니가 이루어져 폭탄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우와!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면이 이렇게 꼬들꼬들할 수가 있어?”
이때부터 우리의 라볶이 사랑은 시작되었고 라볶이를 이어 떡볶이 사랑도 우리의 마음속에 진하게 채워졌다.
떡볶이에 대한 사랑이 하루하루 싹트고 있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텁텁한 공기가 우리의 숨을 짓누르고 있던 하원 시간,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는 책가방을 우산 대신 들고 비를 맞고 가기로 했다.
온몸을 시원한 비로 적시면서 비를 맞으며 집에 가야 한다는 불편한 감정들이 씻겨 내려갔고 어느새 추적추적비 내리는 거리에는 우리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비를 맞는 순간이 시원한 물놀이를 한 듯이 재미있었던 우리는 분식점으로 향했다.
분식점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함께 떡볶이(라볶이)를 먹으며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하교 후 00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학교생활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었다.
떡볶이의 덕후였던 소녀들이 이제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육아와 일로 하루하루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일주일에 세 번 분식점에서 가졌던 정기 모임이 한두 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모임 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이 있다.
“오늘 뭐 먹을래?”
“오늘 로제 떡볶이 어때? 우리 남편은 매워서 싫데. 그래서 너희랑 만날 때만 먹을 수 있어.”
“당연히 콜!이지!”
떡볶이를 먹으며 연예인, 친구,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하루의 텁텁함을 달랬던 학창 시절의 우리. 지금은 아이, 남편, 시댁, 친정, 지난날의 추억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떡볶이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앞으로 십 년 후 이 십 년 후에도 우리의 우정이 고추장처럼 농도 짙게 깊은 맛을 우려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