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추억의 맛 03화

구수한 맛, 셋:한 입의 사랑, 가족의 따뜻함을 담다.

(된장찌개)

by 뽀롱마미

이 천사 년 삼월 수험생 된 나. 새로운 반, 새로운 담임 선생님, 새로운 반 친구들. 새로움이라는 신선함을 만끽하기도 전에 수험생이라는 우리의 위치가 교실 전체를 무거운 공기로 가득 채웠다.

일분일초가 긴장감의 연속이었던 그때 그 시절 나의 삶에 두 가지 큰 시련이 닥쳤다.

첫 번째, 어느 날 하교 후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게 되면서 사춘기가 찾아왔다.

두 번째, 어려워진 경제 탓에 생계를 꾸려야 하는 부모님의 무거운 책임감에 두 분의 몸과 마음이 날카로워졌고, 결국 잦은 다툼이 일어났다.

사춘기와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나를 위한 세계가 무너졌다고 느꼈던 나는 학교와 가족이라는 궤도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차갑고 어두운 나의 분위기를 느끼셨는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저녁 시간만 되면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했던 탕수육, 돈가스, 김치찌개, 된장찌개, 김치볶음밥 등 엄마표 음식들을 하나씩 해주셨다. 하지만 고3이라는 어린 왕은 모든 것이 못마땅했고 엄마의 음식들을 억지로 삼켰다.


자영업을 하셨던 부모님은 쉬는 날 없이 매일 가게를 운영하셨다. 어느 날 엄마는 심한 몸살감기가 걸리셨다. 그날 엄마는 내색 하나 없이 배고픈 딸을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된장찌개를 끓여주셨다.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던 나는 그날 식탁 위의 된장찌개를 보고는 날카로운 말들만 내뱉었다.

“이게 뭐야? 맛있는 것 좀 하지!”

“나 점심에도 학교에서 된장찌개 먹었는데.”

“된장찌개에 고기 좀 많이 넣지. 맛없어! 안 먹어!”

몇 분 후 아빠에게 걸려 온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초 후 아빠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치킨 시켰어. 1층 가게로 내려와서 먹어.”

아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툭!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이후 한동안 식탁 위에선 된장찌개를 보기 힘들었다.


십삼 년 후, 서른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이 년 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쌍둥이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다.

임신 이 개월 차 어느 날, 제대로 잠을 자기도 힘들고 먹지고 못하고 씻지도 못할 정도의 심한 입덧이 시작되었다.

친정엄마는 입덧이 심한 내가 걱정되어 며칠 동안만이라도 친정에 와서 쉬길 권하셨고 나는 바로 간단한 짐을 싸서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의 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꿀렁거리는 입덧, 두통들이 잠시 잠잠해졌다. 신기했다. 신혼집에서는 일분일초도 있기 힘들었는데…

“먹고 싶은 거 없어?”

친정엄마는 입덧으로 많이 수척해진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어보셨다. 이미 많이 지쳐있던 나는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정에 온 첫째 날. 친정 부모님, 나, 신랑 그리고 뱃속의 쌍둥이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만에 저녁 식탁에 함께 둘러앉았다. 이 순간이 낯설고 어리둥절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평온함을 되찾았다.

오늘의 첫 저녁 식사는 엄마표 탕수육. 바삭한 튀김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찍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나의 두 눈은 야구공만큼 커졌다. 입안과 마음이 엄마표 탕수육에 흠뻑 빠져있었다.

탕수육을 3개쯤 먹고 있는 순간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면서 다시 입덧이 시작되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친정에 있는 한 달 동안 나의 입덧은 절정에 이르러 모든 음식을 다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름 식도락이었던 내가 음식을 못 먹는 이 상황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하루하루를 입덧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


어느 날 저녁. 심한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나의 머릿속에 엄마표 된장찌개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바로 엄마에게 가서 “엄마, 나 된장찌개 먹고 싶어.”라고 말을 한 후 엄마표 된장찌개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대략 삼십 분 후 엄마표 된장찌개 완성. 손바닥만 한 뚝배기 안에 투박하게 잘려 있는 감자 다섯 조각, 두툼한 소고기 네 조각, 대파 다섯 조각, 진하게 우러난 된장이 모두 구수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를 보자마자 나는 수저를 들고 국물을 호로록 떠먹기 시작했다. 국물 한 모금 한 모금이 입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구수함, 고소함, 따스함, 편안함을 모두 만끽했다. 이날 저녁 입덧을 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했다.

이렇게 나는 엄마표 된장찌개로 매 끼니 식사하며 입덧을 잠재웠고 친정에 온 지 두 달 반 만에 나는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의 머릿속에는 몇 년 만에 먹은 엄마표 된장찌개의 냄새, 맛 등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리워 내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 봤지만, 마음처럼 엄마표 된장찌개 맛이 나지 않았고 어느새 나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3 시절의 그날 저녁 식탁 위의 된장찌개가 생각났고 투정 부리는 나의 모습에 아무 말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슬픈 두 눈이 떠올랐다.

엄마표 투박한 된장찌개로 입덧이 멈추었고 다시 가족 안의 궤도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가족의 사랑이 변함없이 나를 소중하게 감싸 안아 주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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