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그림 Aug 26. 2024

전 부쳐먹다 응급실에 실려간 엄마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조금 웃긴 제목이지만,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다. 아빠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것만큼 엄마와의 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지난화, 이번화에 걸쳐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주 수요일, 엄마가 말 그대로 전을 부쳐 드시다가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갑작스레 전화를 받은 나는 응급실로 달려가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맞벌이하는 누나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시는 엄마는 저녁 식사 반찬으로 전을 부치신 모양이다. 배고프다고 아우성하는 조카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밥을 차려주시려고 전을 부치시면서 익었는지 확인할 겸, 본인도 허기진 배를 채울 겸 몇 점을 급하게 드신 것 같다. 그러다 사레가 들려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하셨다. 사레에 들려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기침이 아니라 크고 고통스럽게 기침이 이어졌다.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엄마는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두통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셨다. 과거 건강검진에서 부정맥 소견을 들은 적 있어 평소 심장이 약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걱정이 커졌다. 그래서 조카를 시켜 회사에서 퇴근 중인 누나에게 연락하고, 119 신고를 요청했다.


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엄마는 구급차 안 침대에 누워 계셨고, 기력이 없어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구급차에서 진행한 심전도 검사 결과는 다행히 정상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크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구급차 안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으라는 구급대원의 말에 엄마와 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며칠 전까지 엄마와의 냉전으로 1달가량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있었기에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엄마'편 참고) 엄마를 대하기가 서먹했다. 차 안은 구급차 엔진 돌아가는 소리 외엔 고요했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오래잖아 구급대원이 문을 열고, 엄마를 응급실 안으로 모셨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의료진은 엄마를 응급실에서도 가장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모셔갔다. 그곳에서 피검사와 심전도 등의 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심전도 결과에서는 큰 이상이 없었기에, 정신을 조금 차린 엄마도 나도 급체를 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얼마 뒤 담당 의사가 찾아와 예상 밖의 결과를 설명했다.

"피검사 결과가 좀 우려스럽습니다. 심장에 이상이 생길 때 트로포닌I라는 효소가 나오는데 그 수치가 계속 증가하면 심근경색 같은 문제들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집에 귀가하실 상황은 전혀 아니고, 일단 입원해서 내일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심장 이상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검색해 보니 자칫하면 심근경색으로 이어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진의 말에 따라 입원 수속을 마치고, 엄마를 입원시켜 드렸다.


"나 때문인가..."

의사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금전 문제, 아빠와의 다툼에서 번진 나와의 갈등으로 인해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연락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이 커졌다.  


이 반응이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내 머릿속 논리회로의 결론이었다. 엄마 아빠가 다투거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문제인가. 나 때문에 우리 집안은 이렇게 바람 잘날 없나."


이런 생각이 시작된 이유는 많은 경우 엄마 아빠의 갈등이 나와 관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훈육하다가 두 분 사이의 다툼으로 번지거나, 뭔가 나와 얽힌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응급실행의 원인이 '나'로 이어졌다.


이튿날 일찍 병원을 찾았다. 엄마는 심장혈관조영술이라는 검사를 받고 계셨다. 심장 혈관을 조사해 정말 심근경색과 같은 위험소지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검사였다. 초조하게 검사실 앞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이따금씩 "엄마의 심장에 이상이 있다면 그건 나 때문일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고 의사가 나왔다. 다행히 심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역류성식도염 등 심장 외의 문제인 것 같다고, 몇 가지 검사만 더 해보고 퇴원하자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감사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사정이 있어 먼저 병원을 나서며 '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엄마의 심장에 이상이 있으셨다 해도, 그리고 가슴 통증의 신체적인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역류성식도염이나 위장 문제, 혹은 급체였다고 해도 '그 기저에 있는 원인은 내가 아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아픈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지난화에서 정리한 것처럼, 불편한 냉전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엄마의 잘못까지도 내 잘못으로 덮거나 사과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서 마치 나로 인해 우리 가정의 모든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비합리적인 죄의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엄마 아빠는 앞으로도 계속 갈등할 것이고, 나날이 쇠약해질 것이고, 병원에 입원하거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내 탓일 수 없고,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나는 아빠뿐 아니라 엄마로부터도 감정적으로 독립해야 함과,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너 때문이야. 네가 문제야'라는 죄의식과도 거리를 둬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님과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고, 두 분을 더 잘 돕기 위해, 그리고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훈련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나의 아이들도, 부모님의 갈등과 여러 가정 문제의 원인이 여러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여러분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전 14화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