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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게 된 순간

슬픔보다 큰 기쁨

by 보보

2021년 가을,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의 해고를 당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동료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사람들이 보는 곳에 올라간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뿌듯했다. 이번 건 별로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은 의지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영악화라는 이유로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의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늘 사람 좋은 미소로 직원들을 대했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멋진 비전을 그렸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사실상 해고통보에 가까운 말을 듣고 일주일도 안 되어 회사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덕분에 잠을 설쳐 늦은 새벽에야 겨우 잠드는 나날을 보냈더랬다.


비정상적인 퇴사 이후 나는 스스로를 위로할 것들을 찾아 지식의 보고 도서관을 찾았다. 당장의 공허함과 불안을 떨쳐내 줄 동아줄을 원했다. 그때 만난 책들 중 하나가 <어쩌다 백화점>이다. 에세이를 많이 읽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이의 담담한 일상에서 어쩐지 내가 위로를 받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작가가 될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거니와 책을 낼 계획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든 것이다.


‘내 병에 대해 쓰고 싶어.’


망설임 없이 흰 여백의 파도에 조약돌 같은 검은 글자를 빽빽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결심까지 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었다. 그도 그럴게 첫 진단 이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뇌전증이라는 나의 병에 대해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대략 a4 열 장 분량의 글을 썼던 것 같다. 마침 퇴사해서 시간도 많겠다, 자나 깨나 온전히 글을 쓰는 일에만 집중했다. 노트북에 띄어놓은 글을 퇴고하며 든 생각은 ‘그동안 혼자 심각하게 숨겨온 비밀이 사실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닐지도?’였다. 묵혀놓으니 쉬어버린 걸까. 아파서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때 실은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글로 쓰고서야 깨달았다.


당시 우연히 알게 된 카카오 브런치에 이 이야기를 들고 가 작가신청을 했고, 그해 가을 해고라는 슬픔에 빠져있던 난 그 사실을 날려버릴 만큼 큰 기쁨을 선물 받았다.


시작은 뇌전증에 대한 고백이었으나 지금은 소소하게 일상 속 일화와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주로 쓰고 있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나 나름의 원칙이 있다. 글 앞에서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진심을 다할 것!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처음과 같은 열정은 아닐지라도 엉금엉금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브런치를 한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60편이 넘는 글이 쌓였다. 여느 때처럼 내가 올린 글을 읽던 나의 1호 독자 어머니가 말했다.


“글이 감동적이고 좋은데 좋아요가 적네….”


라이킷 수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자꾸만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그날 올린 글은 어머니에 관한 글이었는데, 늘 내가 무언가를 해드릴 때마다 “딸 덕분에 호강하네.” 말씀해 주시던 것에 감사하며 쓴 글이었다. 어떤 말로 위로해드려야 할까 생각하던 중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나중에 책 만들 때 넣을게 걱정하지 마.”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어머니의 말에 웃어버렸다.


“책 내면 돈 많이 버나?”


책으로 돈을 많이 벌 수는 없겠지만, 내 글을 누구보다 귀이 여겨주는 부모님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별건 줄 알았는데 별게 아니었다고,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별거였다고 말하며 말이다. 옆에 앉아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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