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네 번 퇴사한 이유

<스물일곱 살 인물 도감 1편>

by 양유

각양각색의 스물일곱 살과 대화한 기록, <스물일곱 살 인물 도감>.

연 나이부터 만 나이까지, 27살 언저리인 00~98년생과 이야기한 내용을 담는다.

모든 대화는 익명, 반말로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편만은 셀프 인터뷰로 준비했다.





CHAPTER 1.

99년생인데 퇴사만 네 번


Q. 첫 번째 스물일곱 살 안녕!

첫 인터뷰는 셀프 인터뷰라서 뭔가 어색하네.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해줘.

안녕. 나는 작년 말 네 번째 퇴사를 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어. 99년생인데 퇴사만 네 번이라니, 순탄하진 않지?ㅋㅋ 지금은 내 또래인 스물일곱 살(98-00년생)들을 만나 대화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Q. 어떻게 퇴사를 네 번이나 한 거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지(아님). 나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첫 취업을 했어.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회사였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축하해 줬지만 나만은 짐작했던 것 같아. 이 회사에 오래 다니지 못할 거라는 걸.


Q.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내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직장이라기보다는, 지원서를 난사하다 얻어걸린 직장에 가까웠거든.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나는 대학교 4학년(23살) 때 내가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 동갑 친구들은 대기업 인턴하고 로스쿨 준비하는데, 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거든. 너무 불안하고 초조했어. 그래서 내가 가고 싶은 회사를 고민하는 대신, 나를 받아줄 회사에 지원했어.


Q. 그때 섣불리 입사한 걸 후회해?

반반이야. 대학 시절이 하고 싶은 걸 고민하고 실험할 수 있는 최적기였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동시에 그땐 그렇게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확신도 있거든. 뭐든 겪어봐야 아는 게 분명히 있잖아. 출근하고 일하며 몸으로 부딪쳐 봐서 내가 무엇이 잘 맞고 안 맞는지 빨리 파악해 나갔다고 생각해.



CHAPTER 2.

어떤 직장은 나와 맞지 않다



Q. 첫 직장을 퇴사한 이유가 뭐야?

구구절절 설명할 수야 있지. 행정 직무를 하면서 효능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어려웠다, 이것저것 도전하며 성장해보고 싶었다 등등… 하지만 보다 확신을 준 건 이런 것들이었어. 일요일 밤의 미칠듯한 우울감, 출근하면서 차라리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회사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감각.

사실 그 회사 정말 좋은 곳이었어.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워라밸도 보장되는 편이었고 월급도 나쁘지 않았어. 누군가에겐 정말 최고의 직장이었을 거야. 그래서 더 힘들었어. 그런 ‘좋은’ 직장이 나랑 맞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Q. 퇴사하고 나서는 뭘 했어?

퇴사가 처음이라 퇴사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소속이 없어진 것도 처음이었어. 이제는 학교에도, 회사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이 된 거니까.

그때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꾸준히 일기를 쓴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도 못 했을 거야. 도서관에 가서 퇴사나 부업에 관한 책도 빌려보고, 관련 영상들도 많이 봤어. 지역 청년센터에서 무료 상담도 받았고.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 내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관찰했어. 책, 영화, 전시 같은 문화 콘텐츠를 보고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는 일을 반복하더라고.


Q. 이후에 잡지사에 취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야?

맞아. 문화 콘텐츠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보고 싶었어. 기획 회의도 참여하고 기사도 썼지. 급여도, 네임드도 모두 첫 직장보다 못했지만 더 행복했어.

이렇게 끝나는 이야기면 행복하겠지만ㅋㅋ 회사 재정이 너무 어려워져서 금세 또 회사를 떠나야 했어. 어떻게 보면 딱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콘텐츠를 만들며 살고 싶다’라는 방향성이 정해진 중요한 경험이었어. 이후에는 정규직부터 인턴까지 가리지 않고 일해봤어.


Q. 그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어?

너무너무 많았지. 취직을 사격에 비유하면, 총알 한 발 쏘는 것에도 탈진할 정도로 노력해야 하잖아.

총알 한 발 한 발에 걸린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잘못 쏜 것 같아도 다시 쏴볼 자신이 없었어.

퇴사할 때마다 스스로는 떳떳한데, 다른 사람 시선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했어. ‘가족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지?’ ‘미친 조직 부적응자처럼 보일 것이 뻔한데, 회사들이 나를 뽑기는 할까?’ 싶었어.

이직이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힘들고 안 맞더라도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틴’ 경험을 미덕으로 여기고 퇴사한 이유를 ‘변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야.


Q. 그렇게 불안했는데도 사회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선택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야?

근본적으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선택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난 이후부터인 것 같아. 10년 전만 해도 AI가 이렇게 발달하고 직업 전역에 침투할 줄 짐작하지 못했잖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실험하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인 삶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CHAPTER 3.

한국 사회에서 스물일곱 살이란?



Q. 스물일곱 살들을 만나 대화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잖아.

이 셀프 인터뷰도 그 일환이고.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뭐야?

그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프롤로그를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가 느끼는 불안이 온전히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스물일곱 살 다른 또래 친구들의 일상과 불안을 듣고 기록하는 일이 재밌고 의미 있으리라고 믿었어.


Q. 평소에 나이를 의식하는 편이야?

나는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회가 의식하게 만드는 것 같아. 스물일곱 살은 애매한 나이로 느껴지기 쉬워.

대학에서는 ‘화석’, ‘왕언니’로 불리다가 직장에서는 '막내', '주니어'로 불리기도 하지. 동갑인 지인들 중에 결혼하거나 출산한 사람도 있고 학생인 사람도 있어. 아직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 같다가도 '뭐라도 했어야 할' 경계선의 나이 같아.


Q. 한국 사회에서 스물일곱 살인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 것 같아?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비슷한 문화와 굴곡을 겪어온 만큼 그 나이대의 특징이 분명히 있다고 느끼기도 해. 특히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선 더 그런 것 같아.

스물일곱 살, 그러니까 올해(2026년) 기준 00~98년생은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진 세대라고 생각해. 일단 아날로그와 디지털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유년기를 보낸 마지막 나이대이자, 뇌가 아직 말랑말랑한 청소년기에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한 나이대잖아.

그리고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강박과 직장 밖에서 나다움을 찾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는 세대인 것 같아. IMF를 겪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극심한 취업난을 겪었기에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형적인 삶의 경로를 벗어나 성공한 사람들도 접하니까. 이런 이중적인 정체성 때문에 급변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나를 정의하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껴.


Q.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해보고 싶은 것들을 부지런히 찾고 해나가고 싶어. 회사에 다시 소속될 수도 있을 테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볼 수도 있겠지. 지금은 내 또래 스물일곱 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 여기에 집중하고 싶어. 불확실함과 불안을 뚫어내며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 친구들을 많이 만나보면 좋겠어.






<스물일곱 살 인물 도감>은 제각각 다른 스물일곱 살들의 삶을 지지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스물일곱 살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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