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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Feb 26. 2023

무엇을 믿으시나요

부처님 오신 날 느낀 단상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불교라고 답한다. 독실한 불교신자라기보다는 그냥 불교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다. 가톨릭,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기타 등등 적절하게 믿고 따르면 종교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너무 맹신하면 안 된다. 아랍권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종교는 아편이 맞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에 나가곤 했다. 맛난 빵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기독교 교리가 궁금해서 조금 공부를 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믿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인들의 지나친 친절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설교하는 방식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절에는 친정엄마를 따라서 가게 되었다. 엄마가 불교신자이셔서 어릴 때부터 가끔 절에 갔다. 산속에 공기 좋은 곳에 있는 절은 고요해서 좋았다. 스님들도 말수가 적어서 좋았다. 인자한 얼굴의 부처님도 낯설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을 적시듯 그렇게 불교는 내게 스며들었다. 옆지기와 연애할 때 시할머님이 스님이셨다. 팔당 검단산에 있는 통일정사 주지셨다. 초파일이 되면 팔당에 가서 연등 접수를 도왔다. 절에서 일하는 보살들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기도 한다. 그건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장로 힘이 세지면 목사를 내쫓기도 한다.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디든 돈이 많아지면 순수한 믿음이 변질되는가 보다


직장에 다니면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땐 내 마음이 참 힘들 때라서 위안을 얻고 싶어서였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녀서 수료할 때 조그마한 장식품인 코끼리 한 쌍을 선물로 받았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접근성은 좋았다. 거기서 법명도 받았다. ‘선정화’ 선정의 꽃이 되라는 뜻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방해를 일삼는다. 배려가 없는 종교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도 무지한 기독교인이 법요식 훼방을 놓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면에 천주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회정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신부님이 많다. 그래서 난 천주교가 좋다. 성당에 가면 교회에서 느낄 수 없는 엄숙함이 있다. 기독교가 좀 가볍다면 천주교는 안정적인 무게감이 있다. 그건 타 종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대인배의 넉넉함일 거다.


스님도 직업이 되었다. 저마다 절의 주지가 되어 노후를 보장받으려 한다. 수행이 부족한 중이 머리만 깎았다고 모두 다 스님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스님에게 삼배는 가당치도 않다. 스님을 보고 절에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러 가는 거다.


불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좋아지는 종교이다. 젊어서는 여럿이 어울려 놀기 좋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했다. 나이 먹으면서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서 이제는 혼자 시간을 잘 보낸다. 때로는 혼자가 편하기도 하다.


인생은 "고(苦)"이다. 모든 세상일은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모두가 유한하고 상대적이다(一切皆苦). 꽃은 곧 시든다. 사람은 곧 늙는다. 그리고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인생의 진리이다(諸行無常). 삼라만상은 인연법에 따라 이 세상에 나타난다. 거기에는 하등 영속해야 하는 실체성은 없다(諸法無我). 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체득하고 확인할 때 우리는 괴로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진다. 꽃이 지어도 피어도 좋고, 사람이 젊어도 늙어도 좋고, 노력하여 양심에 따라 사는 결과 부귀를 얻는 것도 인연이고, 밑바닥에서 끝나는 것도 인연이다.


이 이치를 터득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집이다. 아집을 버리면 거기에는 번뇌가 사라지고, 조용한 경지가 저절로 얻어진다(涅架寂靜).


이상의 네 가지 가르침, 즉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 가 적정은 불교의 기본적인 특색이고 고대로부터 四法印(법인)이라고 일컬어지며 각 종파를 초월하여 불교의 근본교의로서 존중되어 왔다.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 욕망 덩어리인 중생이 아집을 버리고 번뇌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길(八正道)에 동참하길 바란다. 나 또한 그러하길... 정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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