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탕 안에 들어가지 마세요. 다른 분들이 싫어하시네요.”
친정엄마를 모시고 언니와 함께 목욕을 하러 갔는데 온몸에 긁힌 자국이 심하게 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주인에게 불만을 제기한 모양이다. 엄마를 모시고 탕 밖으로 나오자 잠시 후 탕의 물을 빼기 시작했다. 마치 엄마가 무슨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난 너무도 황당하고 기분이 나빠서 따졌다.
“엄마가 피부병에 걸리신 거라면 제가 모시고 대중탕에 왔겠어요. 치매를 앓고 계셔서 당신 손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요”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의 항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요. 어머님은 탕에 들어가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를 모시고 자주 가는 대중목욕탕이 있는데 그날은 내부수리를 하는 바람에 다른 곳에 갔다. 좀 더 크고 시설이 좋은 대중사우나였다. 시설은 최신식이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초등 수준이었다. 그저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속상해하며 엄마 옷을 갈아입히고 있는데 한 분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사람들도 너무 하죠. 어머님 자세히 살펴보면 손이 닿는 곳에만 긁힌 자국이 있고 등 쪽에는 깨끗한데 말이죠. 저희 엄마도 치매 셔서 이해합니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이해를 받았다는 것이 정말 이런 느낌이구나. 위로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난생처음 타인의 시선이 무섭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날 이후 남의눈을 더 의식하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의 상처투성이 몸을 밖으로 드러내야 할 때 더더욱 그랬다.
남의 눈에 띄는 게 싫다. 그래서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다. 군중 속에 묻혀있을 때가 편하다. 학창 시절 난 조용한 아이였다. 선생님께 이쁨 받고 싶지만 튀는 게 싫어서 질문도 발표도 잘 안 했다. 그냥 묵묵히 내 할 일을 소리 없이 해나가는 아이였다.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으면 1학년 때 아파서 결석을 했는데 선생님은 알아채지 못하고 출석처리를 하는 바람에 6년 개근상을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것은 교복을 입는 거였다. 교복이 좋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좀 더 멋진 교복을 입을 수 있겠지 기대했는데 교복자율화가 시행되었다. 실망스러웠다.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게 좋지 않았다.
단지 남의 이목을 받고 싶지 않아서 군중 속에 묻혀있는 것과 외모나 행동이 남과 달라서 타인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은 다르다.
우리는 남의 시선에 유독 민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