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입양할 때
옆지기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했을 때 처음엔 반대했다. 아들 대학 보내고 이제 좀 자유롭게 내 맘대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다시 뭔가에 메이는 것이 싫었다. 한 생명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비록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여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옆지기의 갱년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결국 키우기로 마음먹었을 땐 '한 마리쯤은 손이 많이 가지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처럼 루이, 메이, 루나 세 식구를 키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옆지기는 아마도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루이를 입양하고, 루이가 혼자면 외롭다며 메이를 데려오고, 새끼를 낳고 막둥이 루나를 키우게 될 거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려견을 키우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첫째,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나? 놀아줄 마음의 여유가 있나?
반려견은 매일 규칙적으로 산책을 시키고, 일정한 시간에 사료를 챙겨줘야 한다. 아프진 않은지 관심을 갖고 살피고, 배변 훈련도 인내심 있게 시켜야 한다. 게다가 치아와 털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 집에서는 옆지기가 주로 강아지들 건강 및 털 관리를 한다. 나는 매일 밥 주고 산책을 시킨다. 처음엔 강아지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밥을 달라고 낑낑댔다. 난 졸음을 참으며 사료를 주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 후로 점차 시간을 조절해서 보통 아침 7시와 저녁 6시에 밥을 준다.
반려견은 아침과 저녁밥만 먹는다. 다행이다. 점심까지 챙기려면 외출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강아지들 저녁밥 때문에 멀리 외출을 하기가 꺼려진다.
한 번은 모임에서 1박 2일 부산 여행 일정을 잡았다. 가고 싶었는데 마침 그날 옆지기도 출장을 가게 되어서 사료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고심 끝에 근처에 사는 시누이에게 부탁을 했다. 다음날 짧은 여행을 하고 집에 부리나케 돌아와 보니 강아지들이 거실 벽지를 뜯어 놓고 똥도 아무 데나 싸질러 놓았다. 화가 나서 강아지들에게 호통을 쳤는데 가만히 상황을 다시 살펴보니 시누이가 밥을 챙겨주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아침은 챙겨주고 저녁에 또 오기 귀찮았던 것 같다. 그러면 귀띔이라도 해주지 불쌍한 강아지들만 야단을 맞은 셈이다.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다. 그래도 구미가 당기는 일정에 참여를 못 하게 되면 화살이 반려견에게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나만 이렇게 동동 거려야 하나?' 싶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가 터지기 일 년 전에 옆지기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북경 여행을 가자고 했다.
"청도에 갈 일이 있는데 일정 끝나는 날에 당신이 청도로 오면 북경 여행 갈까 해"
"강아지들 밥은 어떻게 하고?"
"조카에게 아르바이트 비용 주고 부탁하면 될 거야"
"그래? 그럼 좋아. 가자!"
옆지기와 모처럼 신혼(新婚)은 아니지만 달달한 구혼(久婚) 여행을 다녀왔다. 반려견들이 반갑게 맞아주는데 루이 다리가 좀 이상했다. 걷기가 자연스럽지 않고 절뚝거리는 듯했다. 걱정되어 좀 지켜보다가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다.
“슬개골 탈구 2기래. 약 먹고 당분간 좀 조심하면 된대.”
“휴~ 일주일 남의 손에 맡겼다고 탈이 나니... 내가 어딜 못 간다 정말!"
견주가 여행을 갈 때는 강아지 호텔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반려견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관리도 소홀해서 심지어는 사망하는 경우도 보았다. 믿을 만한 사람이 돌봐줄 수 없다면 되도록 장거리 여행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둘째, 반려견이 생명을 다 할 때까지 책임감 있게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나? 경제적 여유도 있나?
강아지를 키우려면 예방주사도 맞히고 아프면 약도 사 먹이고 수술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 보험이 아직 정비되지 않아서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
어느 날 루나 배를 쓰다듬다가 앞발 왼쪽에 뭔가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다음날 병원에 갔다.
"물혹인데요. 약을 먹고 점차 작아져서 없어지면 좋지만 만약에 커지면 전신마취로 수술까지 해야 해요."
다행히 루나는 약을 먹고 나았다. 메이는 뒷다리를 접질려서, 루이는 눈에 다래끼가 나서 병원 신세를 졌다.
이렇게 반려견을 키우면 크든 작든 병원 출입은 피할 수 없다. 비용도 천차만별이라 잘 비교해야 한다.
셋째, 내가 사는 주거 환경, 내 성향은 어떠한가? 나와 잘 맞는 견종을 알아보고 나이, 성격,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 요즘 반려견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견종도 모르고 아기 때 예쁘다고 덥석 입양했다가 대형견이거나 맹견이라서 곤란을 겪는 견주들을 보게 된다. 반려견을 위해 아예 전원생활을 선택하는 대인배도 있지만 대부분 내 생활이 우선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소인배이다. 그래서 첫 단추를 신중하게 잘 채워야 한다.
옆지기는 일 년 정도 부지런히 반려견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알아보고 고민을 했다. 그러고 나서 포메라니안을 선택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예쁘장한 얼굴과 풍성한 이중 털이 매력적이다. 대부분 성격이 앙칼지다. 그나마 우리 루이, 메이, 루나는 착하고 무던한 편이다.
견주들의 무책임한 파양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강아지, 학대를 받는 강아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은 그들을 다시 사랑으로 보듬으려면 정말 인내가 필요할 거다. 그래서 유기견을 입양하는 분들은 존경스럽다.
‘진심은 통한다’고 견주의 정성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강아지가 많으면 좋겠다. 아니, ‘유기견이 없는 세상’이 된다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