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견생,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
“우리 복실이가 오늘 아침 무지개다리를 건넜어! 복실이 쓰던 강아지용품이 많은데 줄까?”
작년 초에 큰언니가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십 년 넘게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고...
복실이는 하얀색 몰티즈 수컷이다. 고명딸인 조카가 결혼을 하면서 빈 둥지 증후군이 걱정된다고 분양받아 놓았다. 큰언니 내외는 처음에는 엄청 반대를 했다고 한다. 떠맡기듯 어린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조카가 대소변 교육 등을 미리 잘 시켜 놓아서 그런대로 수월했다. '복실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언니가 이사를 해서 집들이 겸 놀러 갔을 때 복실이 첫인상은 참 조용하다 였다. ‘강아지도 복실이처럼 얌전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강아지 털과 냄새가 정말 싫었다. 집에 오자마자 입었던 옷을 모두 벗어서 세탁 바구니에 던져버렸다. 그랬던 내가 털이 수북한 포메라니안 세 마리를 키우게 되다니.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일주일 후 아버지 기일이니까 그때 받을게. 복실이 쓰던 거 다 가져다줘. 내가 쓸 것 버릴 것 알아서 할게”
코로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기일에도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전화한 다음날 큰언니가 형부를 앞세우고 마스크를 쓰고 우리 집 엘리베이터 앞까지 두어 박스를 배달해주었다. 강아지 계단, 사료, 간식, 개껌, 애견패드, 리드 줄 등 한 마리가 사용하던 거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용품이 많았다. 조카가 복실이를 살뜰히 챙긴 탓이다. 개껌은 유통기한이 조금 넘었지만 먹기에 괜찮을 것 같아서 우리 강아지들에게 주었다. 세 마리라서 매일 주니까 금방 다 먹었다. 사료도 한 달 넘게 넉넉히 먹을 양이었다. 애견패드는 두어도 상하지 않으니 그냥 쓰기로 했다. 문제는 간식이었다. 유통기한도 있고 또 양이 많았다. 문득 며칠 전에 화재로 유기견 보호소가 불타서 애를 먹는다는 이용녀 님이 생갔났다. 지인에게 주소를 물었다. 분리수거하지 않고 창고에 두었던 종이 상자에 간식을 잘 포장해서 택배로 부쳤다. 받는 이 연락처를 나로 하면 택배 배송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해서 그렇게 했다. 다음날 바로 배송되었다.
“언니, 간식이 너무 많아서 유기견 보호소에 기증했어. 언니 덕분에 좋은 일 했네. 고마워!”
“그래 잘 생각했어!”
강아지 계단은 두 개를 받았는데 루이가 자꾸 오줌을 싸서 헝겊 덮개가 있는 것은 창고 넣어 두었다. 나머지 한 개는 쓱 닦기 편한 재질이라 집에 있던 나무계단 옆에 두었다. 비스듬하게 생겨서 소파에 오르내리기 편하게 생겼다. 리드 줄은 마침 루이가 사용하던 것이 고장 나서 필요하던 차에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줄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신형이라 사용하기 편했다. 배변판도 널찍하고 좋아서 일단 복실이 오줌 냄새를 없앤 후 집에 있던 것과 번갈아 사용한다. 애견패드도 두툼한 거라 하루 한 장 사용하면 되었다. 창고에 쟁여두고 사용 중이다. 복실이 덕분에 강아지 사료 값과 용품 구입비를 절약했다.
"나중에 루이가 무지개다리 건널 때가 되면 아마도 당신 품에서 갈 거 같아"
옆지기가 말했다. 반려견은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주인 품에서 간다고 한다. 반려견을 오래 키웠던 친구도 자기가 퇴근하기 기다렸다가 갔다고 했다. 반려견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나중에 주인이 올 때 반겨준단다.
반려견이 죽으면 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할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이 표현은 1980년대에 미국 혹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시에서 가져온 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는데 '무지개다리' 라는 뜻이 원래 '이상향으로 가는 천상의 다리'라는 개념으로서 고대부터 널리 쓰였던 관용구임을 감안하면 이해된다.
이 시에서는 천국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지개 다리가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던 동물은 죽으면 항상 먹을 것이 있고, 따뜻하며, 다시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초원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이 동물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뛰놀지만 항상 자신을 아껴주던 주인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이 죽으면 만나서 함께 무지개 다리를 건너와 천국으로 가면서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복실이는 일주일 정도 끙끙 앓다가 갔다 한다. 언니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식탁 아래 앉아서 시어머님이 흘리던 음식을 주어먹었단다. 그래서 요즘 강아지들보다 일찍 갔나 보다. 맵고 짠 음식을 그냥 강아지 밥으로 주었던 예전처럼 말이다. 요즘에는 사료가 잘 나와서 장수하는 강아지들이 많다. 강아지들 나이는 사람과 다르다. 철없는 새끼 강아지 때는 에너지도 넘쳐서 사고를 많이 치지만 서너 살이 되자 좀 얌전해졌다. 루이와 메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는 사람 나이 서른 후반과 맞먹는다고 하니...
복실이 덕분에 우리 집 강아지들이 간식 호강을 했다. 간식으로 생일 케이크도 만들어주었다. 복실이 빈자리가 한동안 크게 느껴질 큰언니가 생각났다. 형부도 집에 오면 복실이부터 찾았다고 하던데... 복실이가 다시 환생해서 좋은 주인 만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