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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의 조앤 Oct 30. 2022

신라면에 진심인
나의 포르투갈 할머니

런던 하숙생 일기 1

농심 신라면 컵 65g. 이것을 매일 아침으로 먹는 유럽 할머니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충분히 아침 다큐멘터리 인터뷰이로 모셔볼 만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20대 후반에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일흔이 넘도록 런던을 떠난 적 없는 찐 런더너다. 나는 영국 사랑 04UK*이라는 영국의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리아의 집을 알게 됐고 열한 달을 그 집에 살았다. 할머니에 따르면, 내가 그 집에 가장 짧게 머무른 ‘코리안 베이비'다. 런던에서의 네 번째 집, 정확히는 방을 찾기 위해 스페어 룸 Spare Room, 주플라 Zoopla, 라이트무브 Right Move* 등 각종 방 찾기 앱을 포함해 영국 사랑까지 한 달 가까이 틈나는 대로 돌아보던 중 한 포스팅을 영국 사랑에서 발견했다. 


빌 포함 700파운드, 집주인 할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사시게 돼요. 한국인 여성분만 연락 주세요.


우선 가격이 아름다웠고 달랑 한 장 올라온 사진이 담고 있는 뷰는 더 아름다웠다. 넓은 창 너머로 런던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설마 저건 런던아이? 그렇다. 내 방에서 런던아이를 조망할 수 있는, 20층에 있는 집이었다. 직업에 내 자리가 있다는 말은 집에도 적용된다. 인연이 있다. 뷰잉을 왔던 한국인 여성 네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내가 간택된 것이다. 나중에 왜 나에게 그 방을 세놓기로 했느냐고 물었는데, 마리아는 ‘그냥 네가 유독 마음에 남았어'라고 하셨으니 인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할머니의 한국인 여성에 대한 찐 사랑을 처음 감지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보이나요, 런던 아이?



“난 보증금도 필요 없어. 최소 계약기간도 없고. 단 하나의 조건은 네가 이사 나갈 때 한국인 여자애를 구해놓고 나가는 거야" 


그 집에서의 첫 날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세제 향이 폴폴 올라오는 베딩 위에는 여분의 베딩 세트, 수건(한국에서는 수건이라 부르는 사이즈가 하나로 규격화되어 있는 반면  유럽은 핸드 타월, 페이스 타월, 배스 타올로 구분해 사용한다. 페이스 타월이 한국의 수건 사이즈.) 8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국인은 페이스 타올로 몸도 다 닦더라. 배스 타월 잘 안 쓰더라고" 


나는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어안이 벙벙해졌다. 진심? 이 정도로 세심하게 한국인을 안다고? 그러면서 이 집은 이제부터 네 집이니 모든 물건을 써도 좋고, 특히 한국인 여자애들 너무 말라서 볼 때마다 속상하니 다이어트 ‘같은 거' 할 생각 말고 냉장고나 주방에 있음 음식 뭐든 다 먹으렴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셔도 집주인은 집주인이지 알아서 예의 차리자' 했던 내 생각은 쓸데없이 스스로를 옭아멘 긴장감이었음이 향후 열한 달 동안 증명됐다. 며칠 뒤 식사시간.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왜 한국인 여성만 받으시나요?

한국인은 상대방 존중할 줄 알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성향마저 깔끔해서 렌트비 문제가 없어. 최고의 세입자야.


아시안들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보이지만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태국인 모두 다르고 (세입자로) 받아도 봤지만 나에겐 한국인이 최고!


한국인 중에서도 여자만 받는 이유는요?

난 남자랑 인연이 없어. 게다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애들이나 멀쩡해 보이지. 현실에선 유럽이고 아시아고 한국이고 할 것 없이 남자 잘 가려 만나야 해. 그에 비하면 한국인 여자애들은 아이고, 어디 내놔도 안 아깝지. 내 베이비들.


나는 할머니의 일곱 번째 코리안 베이비였다. 아, 할머니는 나를 앞에 두고 베이비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이전 모든 세입자를 지칭할 때, 할머니 친구와 통화할 때 “조앤은 방에 있지. 누구냐고? 아, 내 코리안 베이비”라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진심으로 모든 코리안 베이비들을 아끼고 잘 되길 기도하고 외박하는 날 문자가 없으면 걱정을 했다. 

한국인 여성 세입자들과 친구처럼 때론 가족처럼 지내온 것은 할머니 스스로의 큰 자랑이었다. 네 번째 베이비는 할머니 회사 직원 파티를 함께 다니다가 일주일간 스페인 여행까지 다녀왔고(비용은 각각 냈다고 해서 더 놀랐다. 이건 효도여행이 아니라 우정여행이잖아), 영국 소도시로 결혼해 떠난 다섯 번째 베이비는 2주에 한 번은 꼭 할머니에게 전화해 두 시간씩 근황을 전했다. 호랑이띠에 전갈자리, 20대에 어린 아들만 데리고 영국으로 이민을 와 홀몸으로 키우며 영국 사회경험 40년을 자랑하는 쿨한 할머니가 여섯 번째 베이비가 자기에게는 연락 안 하면서 아랫집 친구에게는 문자를 보냈더라는 말을 할 때의 그 세상 실망한 표정이란. 

온 집안은 코리안 베이비들에게 받은 선물, 혹은 놓고 간 물건으로 빈틈이 없었다. 먼지가 앉은 인삼주와 복분자주, 한국 부채, 한국 식재료, 양념, 옷가지 등. 유통기한이 3년도 더 지난 진라면은 내가 조용히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복도 창고를 정리하다 도톰한 미키 마우스 슬리퍼와 잠옷이 나왔을 때는 심증은 있으나 확증이 없어서 누구 것이냐고 슬며시 묻고 말았다. 


“응, 네 번째 베이비 꺼야. 다음에 와서 가져간다고 버리지 말라고 했거든." 


나도 할머니가 두 분 계셨기 때문에 호더의 삶을 아주 잘 이해하지만, 새삼 충격적이었다. 주방은 할머니가 내 공간으로 어렵게 내어준 찬장 세 칸 빼고는 모두 할머니의 물건이었다. 같은 주방도구가 세네 개씩 있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고 주방의 작은 창고는 락앤락 같은 플라스틱 용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엄마가 런던에 왔을 때 그 주방을 보더니 실소하며 말했다. 


“여기서 필요한 것만 빼고 나누면 신혼집 세 가구 주방쯤은 쉽게 채우겠다.”







*런던에서 방/집을 찾을 땐; 스페어 룸 Spare Room, 주플라 Zoopla, 라이트무브 Right Move 주로 이 세 가지 앱과 한국인 커뮤니티 웹사이트 영국 사랑 04uk.com을 통해 알아본다.   

스페어 룸은 말 그대로 ‘방'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4명이 사는 플랫에 한 명을 구할 때, 집주인 혹은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올린다. 그만큼 공용 공간, 주변 환경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고 자세하며 현재 플랫 메이트들의 성향이나 직업을 공유하기도 한다.

주플라는 방/집이 섞여서 올라온다. 주로 집주인이나 에이전시(부동산)에서 올리는데, 보통의 부동산 매물처럼 객관적 정보만 간략하게 올리는 편.

라이트무브는 렌트 줄 세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스페어 룸이나 주플라와는 달리 집을 매입하고 싶은 고객까지 대상으로 한다. 한 예로 런던 외곽 지역인 서레이에서 집을 구할 때 부동산을 방문하면 이 동네 물건은 라이트무브에 다 올라오니 그 앱만 확인해도 된다고 했을 정도로 타운에서는 이 앱을 지역 부동산 플랫폼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영국 사랑은 영국에 사는 한국인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다. 다만 렌트는 주로 런던, 혹은 런던 외곽지역에 한 해 올라오는 편. 중고 거래, 구인구직 게시판도 꽤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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