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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의 조앤 Oct 30. 2022

그리스 산골마을식 집밥


그리스 아라호바Arahova라는 곳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익히 유명한 산토리니, 미코노스 같은 섬은 아테네를 기준으로 남쪽 바다에 있고, 아라호바는 북쪽에 있는 산골짜기 마을이다. K가 평소 친동생처럼 여기는 A의 집이 여기에 있다. 영국에서 갈 수 있는 나라가 제한적이었던 2020년 7월, 2주 뒤 그리스 국경이 열릴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바로 티켓을 예약했다.

공항에는 A의 아빠 알렉스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런던에서 K와 한 방을 썼던 사이라 둘은 유난히 각별했다. 그의 SUV를 타고 아테네 공항에서 아라호바까지 두 시간을 달렸다. 온도계도 본분을 잊은 날씨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리 달려서 나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불평 대신 잠에 드는 쪽을 택했다.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아라호바는 겨울에 스키 리조트와 그 부대시설에서 나오는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마을이다. 산등성이에는 유럽의 어느 부자들이 겨울에만 잠시 머무른다는 별장이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알렉스는 이 별장 주인들을 고객으로 두고 인테리어 및 시설을 매만지는 일을 한다. 듣자 하니 마을의 홍반장이다. 집 앞에 도착하자 A와 A의 엄마인 마르타, 여동생 이리니가 우리를 반겼다. 멀미가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이 노곤해지는 따뜻한 환영의 인사. 우리는 아주 제한적인 영어 몇 단어만 사용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밤을 보냈다. 


알렉스의 전화를 받고 아침을 먹으러 그 집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마주한 마르타의 식탁은 나의 엄마의 것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사용감이 분명 있지만 관리가 잘 된 그릇이나 식기, 예정 인원 수의 두 배는 족히 더 먹일 만큼의 양, 기교 없이 단순하지만 신선도가 뛰어난 음식, 어제 일하느라 바빠서 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모습마저도. 그 뒤로 들리는 TV 소리, 이리니가 분주하게 주방과 거실을 오가는 모습, 소파에 누워 코를 고는 알렉스가 내 눈과 귀를 장악하면서 나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그 집에 스며들었다. ‘진짜' 집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해주는 일 년 만의 집밥. 


간결하기 그지없는 이 아침 식사를 나는 2년이 넘도록 잊지 못한다



그리스에서 새롭게 눈 뜬 식재료는 꿀과 요거트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잼 대신 꿀을 발라 먹는 식. 특히 노란색 식사빵과의 조화가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병풍처럼 해안을 감싸고 있는 웅장한 산맥 아래 눈부신 아드리아 해가 펼쳐져 있었다. 그 바다를 동동 떠다니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런 낮에는 허기를 느낄 새도 없이 음료수로만 위를 채우게 된다. 냉커피, 맥주, 얼음물의 반복. 



그리스의 흔한 동네 바다


아드리아 해의 진짜 강렬함을 맛본 것은 그날 밤이었다. 낮동안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는 내가 곧이 잠에 빠져들게 놔두지 않았다. 마르타가 1kg짜리 그릭 요거트를 가져왔다. 아, 이 나라는 잼 대신 꿀이요, 알로에 대신 요거트구나. 뜻밖의 요거트 전신 팩을 하고 나자 겨우 그리스 시골의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런던에 돌아와서 가족, 집밥, 뜨거운 해가 그리운 날마다 자주 그 여행을 떠올린다. 그리고 요거트를 볼 때마다도. 나는 이제 알로에가 없다면 요거트를 바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먹을 때마다 감격했던 노란색 빵은 아라호바에서는 그저 ‘매일 먹는 빵'이었고, 영화 속 유토피아의 클리셰 같았던 바다는 그저 ‘동네 바다’였다. 그 빵이 단백질 함량이 높은 듀럼 밀의 일종인 세몰리나로 만들어 노란빛이 난다는 것도, 그 바다의 이름이 ‘아지오스 이시도로스 해변Agios Isidoros Beach’라는 것도 직접 검색해서 알아냈다. 한껏 의기양양해져 그들에게 세몰리나니, 아지오스니 말해도 그들은 그저 웃을 뿐, 내일이면 그런 설명은 잊은 채 빵에 꿀을 얹어 먹고 시간을 보내러 바다로 갈 테지. 그런 담담한 일상 앞에 내가 떠들던 브랜딩이나 마케팅 같은 세속의 어휘는 속절없이 빛을 잃는다. 








주방에 붙어 있던 A와 A의 여동생 어린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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