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지난주 수요일,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낮 공연을 보러 충무아트센터로 향했다. 평일 낮의 여유로운 마티네를 기대하며 극장 로비에 들어선 순간 바글와글한 들뜸이 불쑥 느껴졌다. 한 중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하러 온 것이었다. 중블 1열부터 마지막열까지를 가득 메운 것으로 보아 아마 한 학년 전체가 온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동안의 관극과는 다른 관객층과 함께 하는 것이 흥미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뮤지컬은 같은 공연, 같은 캐스트라 할지라도 그날그날의 배우 컨디션, 오케스트라 등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따라서도 달라질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하니까.
기대만큼 중학생 친구들과 함께한 관극은 새롭고 즐거웠다. 사실 마음속에서는 관크*를 당하지는 않을까 아주 조금 걱정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이 공연 중에는 관람 예절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오히려 작품을 향한 날 것의 반응들을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 비속어가 나오거나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대사들이 나오면 갑자기 웅성거리는 것도, 1막 마지막에 에반과 조이의 키스신이 나오고 나서 인터미션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걸 왜 여기서 끊어!'와 같은 느낌으로 탄성을 내지르는 것도 귀여웠다. 아, 1막 마지막 넘버 전에 고등학생 에반이 정말로 '학생 및 교직원 여러분'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되어 괜히 작품이 더 리얼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인터미션 때에는 마치 학교 쉬는 시간처럼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에반이 잘생겼네, 코너가 잘생겼네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나이대에 또래들과 와글와글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참 반짝거렸다.
*관객 크리티컬의 합성어/줄임말로 타인의 영화·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관객을 의미
극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가는 친구들 사이로 음악감독님께 다가가는 한 학생을 봤다. 수줍지만 달뜬 모습으로 2층 전면 벽에 달린 음악감독님 화면을 가리키며 조잘거리는 모습에 음악감독님도 환한 표정으로 응해주고 있었다. 아마 이 학생에게 오늘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그런 강렬한 날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날 중 하나였을 거다. 10년 정도 뒤에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그해 5월에 학교에서 다 같이 뮤지컬 보러 갔었잖아.' 누군가 툭 던지면, '그랬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날. 아마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을 거다. 학교에서 단체로 뮤지컬이든 음악회든 보러 갔던 날이. 매일 반복되는 집-학교-집-학교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렘이 당시에는 컸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학창 시절의 지나가는 한 순간이었을 뿐인 그런 날이.
누군가에게 인생 첫 뮤지컬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처음 받고는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앞서 학창 시절 속 함께 흘려보내버린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뮤지컬을 떠올리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실패. 이제는 흘려보낸 것들의 흔적을 찾기보다는 나에게 처음으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뮤지컬 <영웅>을 내 인생 첫 뮤지컬이라고 답한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나는 여전히 사족으로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단체로 보러 간 뮤지컬 작품들이 분명 있겠지만...'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뮤지컬 <영웅>을 처음 봤던 것 또한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이어서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감각들이 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듯 칼바람이 쌩쌩 불었던 그날의 날씨,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길에 '영상으로만 보던 것을 이제 실제로 보게 되겠네!' 하는 기대감에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하도 울어서 빨갛다 못해 부어오른 눈을 연신 비비며 기대감보다 큰 고양감을 얻고 붕붕 뜬 것만 같은 느낌으로 내딛던 발걸음이 그것들이다. 2011년 1월, 해오름극장에서 뮤지컬 <영웅>을 마주했던 그때의 감각들.
뮤지컬 <영웅>을 알게 된 것은 기숙사에서 방을 함께 쓰던 친구 덕분이었다. PD를 꿈꾸던 그 친구는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여러 트렌드에 능통한 친구였다. 역사 과목 성적을 곧잘 받기도 해온 데다가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피 끓는 청춘에 마주한 근현대사 덕분에 사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던 내게 친구가 영상 하나를 추천해 줬다. 그 영상이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공연된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였다. 충격이었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동식 소품을 통해 재판정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도, 가사에 안중근 의사 재판 당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15개에 걸쳐 고발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도, 화려한 앙상블의 군무와 합창 사이에서 단단하고 올곧은 목소리로 비장하게 노래를 부르는 정성화 배우의 모습까지도 모든 것이 충격적으로 감동적이었다.
'언젠가는 저 무대를 꼭 직접 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을 생각보다 빨리 실현할 수 있었다. 정시 합격 발표가 났던 학교 구경도 할 겸, 당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재연되고 있던 뮤지컬 <영웅>을 엄마와 함께 보러 가게 된 것이 바로 나의 첫 뮤지컬 경험. 계속해서 돌려보던 영상 속 하나의 넘버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볼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 실연에 맞춰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를 귀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들을 수 있었고, 광활하게만 느껴지는 무대에 장면에 맞게 바뀌는 무대 장치에 여러 번 놀랐으며, 화려한 의상과 찬란한 앙상블의 군무에 황홀감을 느꼈다.
꼭 한 번은 직접 보고 싶던 공연을 보고 나서 공연장을 나서던 스무 살의 나는 다짐했다. '서울로 대학 오는 만큼 꼭 문화생활을 열심히 해야지! 뮤지컬은 비싸서 원하는 만큼 자주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꼭 1년에 한 번은 봐야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이렇게까지(?) 뮤지컬을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쩌면 그때의 내가 다짐한 것이 천천히 이뤄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첫 뮤지컬 <영웅>이 5월 말에 15주년 기념, 십연(10연)으로 돌아온다. 처음의 순간을 이렇게 쓰고 보니 괜스레 <영웅>과의 재회가 조금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곧 만나, 나의 첫 뮤지컬.
그리고 정성화
나에게 안중근은 정성화 배우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뮤지컬 <영웅>이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면서, 그리고 마침내 영화 <영웅>이 스크린에 걸리면서 대중들의 인식에 정성화 배우는 안중근 전문 배우로 각인된 것만 같다. 나 역시 처음 뮤지컬 <영웅>을 봤던 재연 때뿐만 아니라, 그 후로 <영웅>이 올라올 때마다 대부분 정성화 배우 캐스트로 봤다. 사실 친구가 영상을 보여주기 전 정성화 배우가 안중근 의사 역할을 한다고 말을 했을 때, 사진을 찾아보고는 갸웃했다. 안중근 의사랑 인상이 너무 다른 것 같은데...
그런데 무대 위에서 정성화 배우가 연기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점점 안중근 의사와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대의를 위해 의거를 준비하고 행하고자 하는 굳은 심지를 비장하게 보여줄 때, 함께하는 동지들을 살뜰히 챙길 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지어 보낸 수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두려움을 내비칠 때 정성화 배우는 안중근 의사와 혼연일체 되었다. 워낙 예전에 읽은 인터뷰나 기사들이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개그맨 출신이고 외양적으로도 안중근 의사와 다르기 때문에 정성화 배우가 인물 해석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들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사실 정성화 배우에게 가장 크게 놀란 것은 2019년에 10주년 공연을 봤을 때였다. 워낙 그때 재연 이후 올라왔던 <영웅>을 몇 번 본 상태라 10주년이라는 말에 반가움만을 가지고 공연을 보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뮤지컬 <영웅>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정성화 배우 때문이었다. 2019년의 정성화 배우가 연기한 안중근은 이전의 안중근만큼 대의를 향한 열의가 컸지만, 그 열의가 이전에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다면 2019년에는 온 대지를 따스하게 덥히는 태양과 같았다. 여전히 심지가 곧고 단단했지만, 소중한 가족들을 두고 삶을 등져야 하는 인간적인 고뇌의 복잡함이 더욱 섬세하게 전달되었다. 뮤지컬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본 작품을 왜 또 봐?'라고 묻는다면 정성화 배우가 연기하는 <영웅>을 보라고 할 것이다. 한 작품에서 한 배역을 오래 한다고 해서 늘 똑같이 연기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녹이고 다시금 그 역할을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배우 덕분에 작품은 매번 성장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