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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Oct 31. 2024

띠옹섬 연대기 01화

영상 속 남자는 아이보리 카디건을 입어 깔끔해 보였다. 흘러내린 금테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에서 똑똑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화이트 앤 우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레더룩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의 오른쪽에는 대형 몬스테라 화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는 그에게 따뜻함까지 더했다.      


- ‘프로젝트 미래’는 뭔가요?     


그는 대답 대신에 원형 테이블에서 돌을 집어 들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돌을 쪼갰다. 조각 난 돌은 뗀석기 모양이었다. 그의 손 안에서 비파형동검으로, 대장장이가 단련시킨 검으로 순식간에 모습이 달라졌다. 그는 양손을 맞부딪쳤다가 뗐다. 검은 총이 되어 있었다. 총은 대포로 탱크로 미사일로 변했다. 그는 다시 양손을 부딪쳤고 이번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로켓이 보였다. 로켓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날아갔다.      


- 이것이 우리의 현재였다면,     


남자가 앉은 소파를 제외하고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별이 쏟아지는 우주로 배경이 바뀌었다. 남자는 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옆으로 토성, 목성, 화성, 지구, 금성, 수성 순으로 행성들이 스쳐 지나갔다. 태양이 다가오더니 스스로 터졌다. 어두웠던 우주는 보랏빛으로 채워졌다.      


- 앞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어느새 남자의 손에는 시계가 들려 있었다.     


-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공간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누가 시간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시대를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남자의 배경은 아무 것도 없는 공백으로 변해 있었다. 공백 내에서 차례대로 세 개의 단어가 떠올랐다.     

TIME(시간)

CULTURE(문화)

CONNECTION(연결)     


- 우리는 앞서 나갈 인재를 기다립니다.



     

영상의 댓글은 난리였다. 사기꾼, 개척자, 괴짜. 사람들이 저마다 보고 싶은 대로 그를 본다고 생각했다. 주식회사 아일론의 브레인, 제임스. 이 자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는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줄 구원자였다. 엄마가 오지 않는 밤을 홀로 지새우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새로운 시대를 선물 해줄 세기의 천재. 그와 함께라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졸리지 않아서 본 영상이었는데, 잠이 달아나버렸다. 역시, 그가 나오는 영상을 볼 때마다 심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우선은 당장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땀부터 식혀야지. 나는 에어컨 리모컨을 눌러 전원을 켰다.   

에어컨은 굉음을 내다가 조용해졌다. 공기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시 전원을 눌렀다. 아까보다 더 거칠어진 소리가 길게 이어지다 말았다. 이윽고 기침을 하는 것처럼 쿨럭, 쿨럭 내뱉었다. 아무리 세게 버튼을 눌러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텅 빈 벽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더워도 문단속 철저히!]     


엄마의 메시지가 어두컴컴했던 방 안을 잠시 밝혀주었다. 다시 어두워졌다. 제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 둔 끈으로 산발이 된 머리를 묶었다. 서랍장에서 양말을 꺼내 신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지각할지도 몰라.’      


제 시간에 도현의 집에 아침을 먹으러 간다고 해도 수업 시간에 내내 졸고 있을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대학교 진학을 앞 둔 지금, 수업의 질과 상관없이 무슨 내용이라도 담아야 했다.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처지에 학교 선생님의 풀이라도 듣고 무료 인터넷 강의라도 열심히 봐야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있을 것이다.      


‘짧게라도 자야 해.’     


새벽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무더위 쉼터였다. 이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었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가만히 날밤을 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현관문에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주황 가로등 불빛을 따라 큰 골목길로 나왔다. 노란 조끼를 입고 안전모를 쓴 아저씨 한 명이 길바닥에 하얀 페인트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앞에 있는 꽃동네 슈퍼 할머니는 출입구에 팻말을 하나 걸어두고 있었다. 할머니가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빠르게 지나치려고 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내가 지나갈 때마다 늘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딱히 할 말이 없다보니 잔소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     


하지만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띠옹섬 여행기'를 '띠옹섬 연대기'로 퇴고하여 

브런치북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행기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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