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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May 06. 2024

광주사태로 나는 너를 걱정했는데

걍, 너 죽일 테야. 빨리 와라!

보고 싶은 浩兄아!


浩兄이는 먼저 내리고 나는 집에 왔단다. 물방이(오빠가 군부대 방위 출신이었는데, 1980년 당시 가족들은 ‘물방이’라고 불렀음) 토요일에 왔나 봐. 이틀간이나 집에 없다가 이제 나타나니 미안하더구나. 간신히 욕먹지 않고 살았다 싶어. “경호는 살았다냐?”라고 묻길래, 5월 21일에 23시간 걸어서 장흥까지 갔다고 얘기해 드렸어.


           

浩兄아!     


광주사태(5‧18 광주민주화운동)로 나는 매우 너를 걱정했는데, 만나서 큰 불은 끈 셈이다. 그리고 이틀 동안 같이 있어서 실컷 봤으니까 약간은 안심이다. 네 가정이 빨리 방향을 설정해 나갔으면 좋겠구나. 물론 직접적으로 내가 상관되는 게 아니지만 몇 년만 지나게 되면 내 일이 될 것인데, 그때 가서 현재의 이 상태로 내가 사느니 보다 변화된 가정이라면 더욱 난 행복할 것 같아서 말이야. 외부의 어떤 것 때문에 우린 결코 행복할 수 없고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행복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서 겉치레에 좌우되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浩兄아!     


나는 너와 같이 산다면 아무 걱정‧근심이 없겠구나. 너는 나 살릴라, 부모 형제 걱정할라, 왕창 늙겠지만 말이야. 네가 걱정‧근심하면 옆에서 위로해 주는 내가 될 수 있어야겠지. 내가 직장 다니면 浩兄이 용돈 100,000원씩이나 줄 건데, 너는 지금 10,000원밖에 안 주니까 내가 손해 보는 셈이야. 알았지?      


몇 년 만에 편지 쓰는데, 양면지도 아니고 글씨도 갈겨쓰고 야단이구나. 글씨는 지금 떨리는 심정 때문에 점점 약해진다.


         

浩兄아!      


무슨 일이든지 걱정‧근심하지 말고 고독 씹지 말아라. 내가 네 곁에 있으니 말이야. 나는 전능한 존재라서 너의 모든 것을 들어줄 것이니까. 아참, 요즈음 浩兄이 신앙생활이 좋지 않아, 주일(主日)에 노래지도 좀 하고 피아노도 쳐주지 않고서. 우리가 생명의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일이니,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자. 살아계셔서 지켜보는 하나님인데, ‘안 보겠지’하는 순간 많은 죄를 짓지만,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자. 알겠지? 막연히 안갯속에서 아물거리는 믿음을 버리고 말이야.

     

말주변이 없어서 할 말이 없구나. 빨리 졸업해서 후딱 해치우고 싶지만, 세월이 이다지도 늦으니 한심하다.           


안녕!

사랑하는 내 애인아!


쌀 사서 많이 먹어라. 나중에 맛있는 잡채랑 자주 해줄 테니, 슬퍼 말고 식물성 식품이라도 많이 먹어서 살 좀 쪄라.


걍, 너 죽일 테야. 빨리 와라!



1980.05. 하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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