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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May 02. 2024

와! 합격했어요

보고 싶다

와! 합격했어요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는데 불과 몇 시간 동안이었네요. 그간의 많은 잡념은 솜사탕 같은 사랑으로 다 녹아 버렸어요.

     

浩兄 씨가 아침 일찍 고향에 갈 생각 하니, ‘몹시 춥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구들장처럼 방안에 누워있기가 민망스러워 생각을 살짝 해준 것뿐이지, 뭘 그래요. 어때요. 반갑지만 확 트인 마음으로 대할 수 없었는지요? 아님, 반갑게 얼싸안고 동생들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는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할래요. 시끌시끌 또는 오순도순 즐기는 가정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끼면(개밥에 도토리, 그런 것은 아닐 거고 분위기를 살리는 약초감) ! 아님, 시누이, 시아재 등살에 숨통 터질지 누가 알아?



이러다가 내 말은 언제 쓸꼬. 이제 도초는 끝장이고 내 말을 쓸게요.      


7시 10분경 기상, 세수를 하고 교회에 갔다 예배보고 9시경 집에 와서 교대(敎大) 향했어요. 게시판에 대문짝만 하게 1150번을 써놓았을 거라 상상하면서 시리…. 후배가 벌써 방송국에 전화해서 전해줄 겸 같이 가자고 하네요. 예비고사 224점으로 목에 걸려 내신성적으로 합격한 꼬마의 기쁨에 난 기뻐하지 않고 웃어 버리고. '그래도 내 눈으로 봐야지' 아마 게시판이 보글보글 끓을 광경. 울면서 내 삼수 친구가 스쳐 가네요. 230점 갖고 떨어졌으니, 눈물도 나오지 그래. 어떻든 공부는 잘하고 볼 일이더군요.

      

대학교까지 고교성적을 끌어들이는 그 망칙스러운 법은 뭐람! 그야, 나 같은 위인은 어느 것도 OK이지만, 옆 사람 미끄럼 타는 것 보니 짠해서 … 원 쯧쯧.  1149, 1150, 1154 … 나머지 … 와! 합격했어요. 기분은 별로지만. 21일 9시부터 X-ray 검진, 또 오래. 날마다 자기 학교 등교하라는 거지. 별로 캠퍼스도 좋지도 않은데 뭘 그리 소란한고.

    

국민학교 선생은 월급도 적다고 4년제 보라던 아빠도 우습지만, 내 힘으로 학교 졸업하라는 오빠 또한 걸작이지요. ‘어느 것이나 다 좋아요.’ (납부금 공짜인데 뭘, 괜찮겠죠?) 이렇게 대답하고 보니 멍에를 지는 浩兄이 생각이 나서 미칠 지경이지 뭐예요.

      

“허! 합격했으니 기분이다. 여기 책값은 줄 테니.”하고서.
3만 원 정도는 줄줄 알았는데, 2만 오천 원에 짜장면 곱빼기로 때우다니….  
하지만 2년 동안 끙끙대면서 학교 마칠 일이 꿈같군요.
용돈에 피 말렸던 시절을 되새김하게 되니까요.  


         

굳세어라 금순아가 아니라, 浩兄!


강한 네 팔을 붙들고 살 것이니 밥 좀 더 먹어요. 미안하지만 별수 없죠. 浩兄이를 의지할 수밖에. 25,000원 받았다고 엄마한테 혼났는데, 어쩌죠? 다음에 부담스럽게는 지내지 말라고요.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받아서 쓱쓱 쓰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돈을 버릴 심사는 아니고…. 내 마음이 그것 때문에 고민된다면, 혹은 부담을 준다면 받지 않겠는데, 뻔뻔하게도 '괜찮은데 뭘, 받기로 하지'하고 그냥 넣어두었죠.


내일은 둘째 오빠 생일 겸 합격 축하 파티를 가질 겁니다. 5,000원짜리 케이크, 2,000원 통닭, 갖은 나물, 내가 산 배랑. 맛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소포로 보내면 가는 도중 선장이 살짝 까먹으면 그만. 그러한 사태를 대비해서 그냥 내가 더 많은 몫을 먹기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오.

          

浩兄이는 어쩌려고 돈을 휙 주는지. 사기치고 도망가면 잡지도 못하려고. 내 기분이 너무 좋아도 안 돼요. 여자는 그저 3일에 한 번씩 때리기도 해야죠. (아니 날 때리려고 시킨 결과를 빚어내면 큰일이지만) 욕심꾸러기 만나서 큰일이죠. 그저 자기만 좋아해 주라고 보채니 말이에요.


           

浩兄!


浩兄이 가족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만약 큰마음이고 어른이라면 위안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마음은 그렇지만 전달이 힘들군요. 철부지인 내가 높으신 어른들의 눈에 들어오게 행동이나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너무나 지배적이어서 꽁무니 찾아 슬슬. 浩兄이 가족 중 전남대학교 졸업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요. 줄줄이 교육대학교 후배를 만들 심산은 하지 말라고. 혹 浩兄이는 대학교를 28~29세 때 졸업할지도 몰라요. 내 상상이 현실이 되면….      


   

浩兄!


나를 봐서 2월 8일에 올라오면 되겠지. 파도치는 작은 섬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밥 먹는 모습. 닭다리 뜯고 삐약삐약 하는 아무개 모습. 올라올 때는 닭 한 마리 잡아 오도록, 집에서 해 먹게. 이것은 강요는 안 하지만 벌써 날 생각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浩兄이가 먹는다고 해야지요.

     

그럼 浩兄이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해서 우리 온 가정생활이 윤택하고 평화롭도록 날마다 기도합시다. 부모님께 대신 인사드리세요. 안녕.


         

1980.01.20. 밤 10:35

     

ps. 혹시 합격을 축하하는 사람이 있으시거든 사양 말고 선물을 가지고 오도록. 사실 오늘 편지의 key point이니 착각하기 없기. 아, 또 있지. 이건 key point2(제곱)로 보고 싶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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