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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고딕 Jan 11. 2023

악마가 만들었나? 세고비아 수도교

로마가 식민지 사람들을 뛰어난 기술로 기 죽이기했던 건축물

 세고비아 수도교를 보면 2천 년 전에 과연 이 건축물을 정말 인간이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막상 보면 로마의 대단함보다도 그 시대에 인간이 이걸 진짜 만들었을까 싶다. 당시에도 너무 빨리 만들어서 세고비아에 살던 사람이 외부에 나가서 몇 년 후 돌아와 보니  자기가 살던 곳에 이 수도교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이것은 악마가 아니면 이렇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 수도교를 악마가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막상 보면 그 당시 루머가  정말 공감된다.


 당시 건설했다면 아마도 수십 년도 넘게 걸렸을 걸렸을 것 같은데 그 시대에 이 정도 규모의 수도교 바로 만들어냈다니 식민지사람들은 로마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깜짝 놀랐을 것 같다. 그냥 일단 보면 말이 필요 없다. 로마사람들이 식민지에 수도교를 만든 것이 여러 곳 있는 데 아치형태로

모양은 비슷하지만 규모면에서 현재 남아있는 형태로는 이곳이 단연 제일 멋진 것 같다.


 이 수도교에 감탄하는 다른 이유는 근처의 세고비아 대성당 등 건축물들이 일부러 어울림을 감안하고 마을이 형성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로마의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젖을 먹는 동상에서부터 로마 시대의 건축과 이곳 신구도시의 조화가 멋들어지네 잘 이루어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 과학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차원보다도 그냥 보고 있으면 수천 년 전에 저 정도의 우수한 과학기술이면 로마시대가 좀 더 길었으면 우주시대도 금방 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세고비아는 기원전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였으며 기원전 1세기말에 로마의 식민 시가 되었다. 수도교는 다리의 기울기를 측정하면 약 1cm로 그 기울기를 통해 물이 흘러가게 되는 데 기울기 측정치가 0.3%(브리지)에서 5.53% 사이라고 세고비아시에서 제공하는 설명서에 기록되어 있다.


 최대 높이는 28.1m로  120개의 기둥과  167개의 아치고 구성되어 있다. 다리를 만든 화강암의 개수는  20,400개의 블록이며 로마시대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개보수가 이루어져 현재까지 건실한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세고비아는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왕국 시절에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여 도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출처: 세고비아시 관광안내사이트

세고비아 곳곳에는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외에도 고마시대부터 축조된 증축개축된 성채 알카사르와 고마시대 건축물과 어울리는  대성당 등 옛 로마시대의 흔적과 중세의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다. 근처의 알카사르도 로마시대부터 성채가 만들어져 11세기 이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 로마의 흔적이 짙은 건축물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래도 수도교 하나만으로도 이곳을 방문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로마시대 터를 닦고 건축이 시작된 이후 성벽등이 만들어지고 이후 개축된  현재의 알카사르  


파리나 런던 뉴욕등 내로라하는 도시를  가보면 세계적인 대가들의 근 현대 역사에 깊이 새겨질 만한 많은 걸작 건축물들과  박물관과 미술관에  피카소 고흐 등 놀랄만한 예술작품들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런 세계적인 도시보다도 이곳의 수도교 하나가 주는 역사적인 깊은 감흥이 그 어떤 예술작품에 비견해 보아도 작지 않을 것이다.


명작소설과 예술품을 보는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다리를 통해 세고비아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연결

되어있는데 이 다리는 그 기능뿐 아니라 도시의 중심콘셉트를 이룬다. 물을 끌어오기 위한 로마인들의 과학

지금은 물을 끌어오는 기능을 하지 않지만 이 수도교는 세고비아를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도시의 중심축이다.

세고비아의 가치를 확 끌어올린 이 수도교는 190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무런 접착제나 연결 고리 없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로마인들은 이곳의 건조한 기후를 보고 이곳의 발전을 위해 물공급을 위한 수도교를 만들기 위해 ( 자료출처: https://www.turismodesegovia.com/ )  15km 떨어진 현재의  Revenga 저수지 근처의 물을  끌어오게 된다. 끌어온 물은 현재의 알카사르, 즉 당시에는 아직 성벽이 없는 도시를 지키는 원시 군사 주둔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경로를 추정됩니다.


세고비아 수도교를 만든 원리를 설명자료 내용에서 간추리면 물을 끌어오기 위해 세 개의 큰 섹션이 두었다. 첫 번째 섹션은 운하로 아마도 개방되거나 묻힌 상태로 통과했을 것이고  두 번째 섹션은 최대 높이 28.10m에 이르는 공중 작업, 석조 또는 아치로 구성됩니다. 이 두 구역 사이에는 물이 속도를 잃는 작은 퇴적물인 "desander"가 있어 운반하는 흙이나 흙이 바닥에 가라앉도록 합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이미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거리 아래에 다시 묻혔습니다. 레이아웃이 설정되고 아직 정확한 위치가 지정되지 않은 여러 채석장에서 화강암 블록을 추출하여 옮겨 현장에서 다리를 만들고 마무리하고 모르타르(접착제)  없이 건조한 상태로 두었습니다. 그들은 도르래와 밧줄로 들어 올렸고 철제 지렛대로 조정했습니다.

수도교의 스타일이나 세고비아 박물관에 보관된 관련 고고학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AD 2세기 초로 건축연도를 추정할 수 있고 당시 로마의 정치적 상황과 건축이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곳은 끊임없이 사용하고, 수없이 수정하고 수리하여 유지한 덕분에 우리에게 내려온 것이기에 최초 로마기술자가 건축한 이후  수세기에 걸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건축 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 보수되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건재한 것으로 추측된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속주로 만든 점령지를 로마스럽게 단장하고 바꾸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전파하였다. 로마에서 그들의 확인했던 여러기술과 문화를 로마밖에 심어나가면서 로마인들은 그들의 꿈을 이루어갔고 자신들의 노하우와 기술을 더 발전시켜 나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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