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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고딕 Oct 12. 2022

발견의 환희 유레카! 시칠리 시라쿠사

그리스와 로마 유적이 이슬람과 크리스트로 융합된 박물관 모음인 시칠리아

역사가 깊은 곳을 만날 때면 그곳을 거쳐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교차된 흔적들을 볼 수 있는 데, 깨끗하고 깔끔한 신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세월에 빛이 바랜 공간들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고요한 풍경 속에 이곳을 지나간 발자국에 귀 기울여 보는 그 순간은 내가 오래된 도시를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만 보면 남아있는 유적이 크게 별 볼 일 없고 볼 것도 없는 폐허 속에 있을 때에도 그 장소가 가진 과거 역사를 되새겨보면 순간 압도돼서 숨죽이게 되는 엄숙함 때문에 오래된 유적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많은 나라 중에서도 이태리는 남부와 북부 중부 그리고 해안과  내륙 그 색깔과 개성들이 다 달라서 어느 하나 빼놓을 곳이 없다. 음식이나 뭐나 사실 이태리는 다 멋지다. 


시라쿠사는 이태리 북부 밀라노 같은 세련된 느낌은 아니지만 시칠리아 섬의 뭐든 다 맛있는 요리 냄새와 함께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 나는 곳으로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다. 기원전부터의 오랜 역사이야기에서 풍기는 숨 돌리기 힘들게 만드는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서 시라쿠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 같다.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의 천재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장으로 당시 금세공업자들이 금을 속여서 판매하는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가 없어 아르키메데스는 이것을 알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가 부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금과 은 그리고 일반 금속 사이의 부력의 차이를 발견하여 금세공업들이 금을 섞지 않고 속여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후 기뻐서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벗은 채 뛰어다녔다는 일화도 있으니 새로운 사실을 찾은 기쁨은 고대인에게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부력은 시라쿠사의 고대인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원리로 왕이 왕관에 금만 있는지 은도 섞여있는지 아르키메데스에게 질문하자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목욕하다 이 발견을 하였으니 우연한 뜻밖의 발견이라는 의미로 유레카 의미가 전해지고 있다. 은이 섞인 위조된 왕관은 은이 섞여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 부피가 크기 때문에 부력(浮力)도 함께 커진다는 것인데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사람 몸이 목욕탕에 들어갈 때 물이 넘치는 것을 보며 부력을 깨달았다. 


그가 왕이 왕관이 금으로 만든 것인지 다른 것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냐는 질문에 그저 책상에서 고민만 했다면 답을 찾지 못했을 것 같은데 기분전환 겸 목욕을 하러 간 것이 아마도 신의 한 수였을 것이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도 살면서 고민하고 있는 많은 질문들이 있는 데, 여행을 하면 예상하지 않은 뜻밖의 공간에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볼 수 있으려나? 나도 뜻밖의 장소에서 '유레카'라고 소리쳐봤으면 좋겠다. 


아르키메데스가 알아냈던 것은 금과 다른 금속이 똑같은 양으로 같은 무게라도 그 부피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낸 것인데 물질은 제 각기의 다른 밀도(density)를 갖고 있기 때문에 왕이 갖고 있는 그 금관을 물에 담갔을 때 밀어내는 물의 양과, 같은 무게의 순금을 물에 넣어 그 순금이 밀어내는 물의 양을 비교하면 금관이 순금으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은이 들어간 합성품인지를 가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라쿠사는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이 있다고  추정되는 옛날 채석장을 개조한 고고학 공원 등 여러 고대 유적지가 있는 곳인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고대 박물관 같은 곳이다. 이곳은 큰 바위 전체를 깎아서 로마 원형극장을 바위 크기에 맞게 만들었던 고대인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도시다. 


이 도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대 건축물들도 다양한 역사 문화를 담고 있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는 시대별로 다른 종교들이 한 건축물에 흘러들어 가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한 공간에서 여려 종교가 혼합돼 보이기도 하는 데 다양한 신들을 모셨던 흔적을 한곳에서 볼 때는 다른 것도 아니고 저렇게 종교적인 색채가 한 곳에 섞여있어도 되나 하는 우려스러운 생각도 들 정도다.  


예를 들어 시라쿠사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경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폴론 신전이었다가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교회였다가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변경되었으며 이슬람이 이곳에서 물러가면서부터는 이슬람 잔재를 지우는 듯 폐허처럼 되었다. 지금은 발굴 과정을 거쳐서 기둥과 계단같이 일부를 찾아 발굴 후 보존하고 있는 데 전체의 일부만 남아있어 폐허 속의 잔재처럼 남아 있다. 


그 잔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남아 있는 저 유적들은 오랜 세월에 부침 속에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다 깨달았을 듯하다. 부침이 많은 세월 속에 이 유적들은 세상 말로 도가 다 텄을 것 같은데 기원전 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사원은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리스식 석조 사원이었다. 


도리스식은 그리스식 건축양식 중 하나로 기둥이 두껍고 가장 윗부분의 기둥을 받치는 부분이 사발 모양으로 단순화된 양식이다. 오래된 도리스 양식의 그리스 사원은 비잔틴 교회로 변경된 것으로 확인되는 데 그 증거로 현재 보존되어 있는 앞 계단과 문의 흔적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랍이 침범한 후에는 크리스트 교회에서 모스크로 변경되어 사용되다가 16세기에는 이곳 모스크를 허물고 노르만 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렇게 계속된 변경으로 초기 건물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폐허처럼 있다가 이 건물들은 1860년 경에야 기원이 밝혀지면서 1933년에서 1943년 사이에 발굴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의 기록들이 밝혀졌다고 한다. ( 출처: 시라쿠사 관광청 홈페이지) 


원래 초기 구조는 매우 긴 건물(58.10 x 24.50m)로, 사암 블록으로 지어진 거대한 계단식 하부 구조 위에 있었고  짧은 면에 6개의 기둥이 있고 긴 면에 17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꼭대기 계단에는 신전 건축 당시 약 8m 길이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데  이 비문을 통해 그리스의 신전임을 확인할 수 있고 그리스 세계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신전에서 운명이 바뀌어 비잔틴 교회로 사용되면서부터는 혼합의 절정이 이루어진 곳인데  비잔틴 자체도 동서양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는 혼합의 성격인 데다 거기에 더해서 고대 그리스 문명까지 혼합되었으니 이곳은 폐허처럼 일부만 남아있긴 해도 남아있는 이것도 얼마나 시대를 초월한 예외적 성격의 건축물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아폴론 신전의 저녁 야경: 다양한 세월의 흔적이 계단과 기둥에 새겨져 있다. 

시라쿠사 대성당의 경우도 아폴론 사원만큼 아니 그보다 더 했을 풍파를 겪었다. 초기 그리스 사원에서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이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하던 곳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비잔틴 시대에는 성당으로 변경되었고 대지진이 나면서 이곳은 크게 파괴되었다. 대지진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된 후에는 성당의 재건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는 데 재건하면서 남아있는 고대 잔해들을 살리면서 재건하는 방향으로 성당을 재건하였다.  


기존 세력이 만든 터전 위에 다른 세력들이 쳐들어왔을 때 완전히 기존의 잔재를 없애진 못하고 그 향기들이 잔해로 남아 있다 보니 이곳의 분위기가 퍽이나 독특한 감성을 풍길 수밖에 없는 곳이다. 수없이 성당의 주인이 변경되면서 이슬람과 크리스트를 넘나들며 이 성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항상 고민했을 터인데 고대 아테나 여신에게 헌정된 그리스 양식의 기둥들을 살리고 거기다 비잔틴 문화를 얹고 나서 또 이슬람까지 융합된 사례로 역사적으로도 이 성당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교회다. 

1693년의 시칠리아 대지진 이후에 18세기에 성당의 재건 시기에는 도리스 양식 위에 18세기 바로크 양식을 추가하여 개조된 초기 기독교 대성당으로 자리 잡았는 데 긴 세월 속에서 온갖 양식이 혼합된 이 성당 자체가 박물관이자 성당인 곳으로 흥미롭다. 성당을 지배하는 종교는 계속 바뀌면서도 계속 신성한 장소로 존재하며 옛 그리스 시절부터 주욱 이곳이 사람들에게는 기도의 장소였다는 것이 참 독특하다.

그리스 시대를 보여주는 도리아 양식의 기둥은 성당의 벽면을 크게 감싸 안고 있다.


이곳은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 사원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였으며 7세기에는 아테나 여신을 위한 건축이 추가되었고 이후에는 사도 바울이 섬을 복음화하면서 후로는 교회로 탈바꿈했다. 지진 이후 재건축하면서 추가한 기둥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지면서 바로크식의 파사드를 지니고 있다. 비잔틴 시대의 사람들은 사원의 둘레를 형성한 크고 장엄한 Doric 기둥을 버리지 않고 교회의 주변 벽에 통합하여 보존하였고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정면은 로코코 장식까지 가미한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곳인데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면 내부 인테리어는 노르만 양식의 모자이크를 담고 있고서 형형색색 시칠리아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나는 성당 입구 측면에 위치한 Doric 사원의 두 개의 큰 기둥을 품은 채 성당이 건축된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입에서 탄성이 나왔는 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 그리스 여신을 숭배하던 기둥을 품고 있는 성당에서 비잔틴 시대 제작된 십자가를 볼 수 있으니 참 진기한 경험이었다.  

 


기원전부터 온갖 장인들의 손길을 거치며 혼합된 이 성당의 외부와 내부를 확인하고 나서는 해가질 무렵에 다시 시라쿠사 대성당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성당을 마주하고 섰다. 약간 떨어져서 그곳을 바라볼 때는 이곳을 거쳐갔던 신비한 기운들이 성당의 한 곳에서 혼합되는 것처럼 보였는 데 나에게는 성당 자체가 온갖 히스토리를 간직한 융합 박물관으로 보여서 그곳은 마치 마법의 공간처럼 보였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자주 뉴스로 접하고 있는 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이 이제는 이 성당처럼 평화롭게 함께 같이 서 있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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