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이 새로운 길이었다
퇴사 후 낯선 집과 도시에서의 날들, 잊은 줄만 알았던 공허함이 나를 집어삼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몇 해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책으로 몸을 지탱하기로 했다. 구리시에 있는 도서관에 등록하고는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듯 나갔다. 책을 붙잡고 있으면 적어도 하루하루가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나는 곧 목표를 하나 정했다.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토익 시험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마치 예전처럼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듯 이번에는 시험 점수로나마 스스로를 증명해 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토익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렇게 3월 말, 리스닝 만점과 900이 넘는 점수를 받았고 만점은 아니지만 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이 사실에 기뻤다. 무너진 자존감이 조금은 다시 일어서는 듯했다.
회사가 사라질 무렵에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그냥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 계속 맴돌다가 큰 불씨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내가 정말 그걸 잘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는 늘 사람과의 대화가 있었다. 필라테스를 가르칠 때도 컴플레인이나 강사 변경 요청을 하는 회원님들을 도맡아 끝까지 수업을 이어 갔다. 승무원으로 비행할 때도 팀원들, 그리고 승객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게 내 강점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더 전문적으로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피치 강사 과정을 밟기로 결심했다.
교육을 받으며 배운 것은 단순한 말하기 기술이 아니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몸에 밴 태도와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자연스럽게 6월에는 아말 스피치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그 모임은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현재는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멤버들도 생겼고 그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말의 힘을 경험하는 일이 나를 버티게 했다.
승무원이라는 과거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단순히 승무원 출신이니까 면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면접 역시 결국 면접관과의 소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지망생들을 지도할 때도 태도와 대화, 마음을 전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누군가의 꿈이자 내가 걸어왔던 길을 함께 준비하며 나 또한 조금씩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에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모든 게 무너져 내리던 고통을 정말이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짐했다. 그때처럼 아프지 않으리. 적어도 그때만큼은 다시 무너지지 않으리.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길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