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하기
의도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나를 돌아보고 보살피는 일에 전념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의 나는 늘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며 살았다. 누군가의 기대를 맞추거나 사회가 정해놓은 속도에 발맞추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재촉했다. 물론 괴로웠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쩌면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나’가 아니라 ‘그저 나’로서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퇴사 후 난생처음 실업급여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예전 같으면 불안과 자책으로 잠 못 이루었을 순간들인데 이번에는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장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잠시 멈춰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독서와 운동으로 하루를 채우고 고양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작은 위안을 찾았다.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워갔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여행도 떠났다. 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마음 한편은 망설여졌다. 하지만 결국, 4년 만에 비행기를, 한때는 나의 직장이었던 비행기를 탔다. 방콕의 햇살은 나를 응원하듯이 따뜻했다. 나는 도망치는 기분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태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익숙했던, 이제는 낯선 풍경 속에서 가장 본연의, 벌거벗은 나 자신을 마주했다. 한국에 와서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무의미하며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떠나는 것 또한 나를 돌보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나를 지키는 시간을 보냈다. 빠르게 달리는 대신 잠시 멈춰 나를 살피는 시간. 더 높이 올라가기보다, 스스로의 뿌리를 단단히 다지는 시간. 그 과정이 때로는 불안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나를 돌보는 일은 뒤쳐짐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지만 적어도 나를 보살피며 지낸 시간만은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지금 이 글 역시 부산 여행 중에 쓰고 있다.
나를 보살피는 시간을 지나 조금 서투르고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되기로 했다. 이제는 스스로를 지켜낸 마음 위에 조금 더 자유롭고 단단한 나를 피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