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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Mar 16. 2024

서로 같지만 다른 것들

표면과 이면

 지난 주말은 대전 러닝크루에 처음 나가는 날이었다. 대전 시내를 둘러보다 가다 보니 만날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편의점에서 달걀과 보리차를 사서 저녁을 대신했다. 그리고 광장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사람들 모이는 걸 보니 갑자기 곧 달린다는 생각이 들어 좀 떨렸다. 내 체력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는 몰라도 운영진 분이 오셔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셨다.


1. 인증샷을 찍고, 준비 운동을 하고 나면 조를 나누어 달릴 거라는 것

2. 페이스가 조마다 다르니 맞는 곳에서 뛰면 된다는 것

3. 운동을 어느 정도 하는지

4. 끝나면 인증샷을 찍고, 마무리 체조하고 해산한다는 것


 나는 운동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장 쉬운 조에 들어갔고, 다 같이 준비 운동을 한 다음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조도 두 명이 짝을 지어 페이스 메이커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7분 속도로 5.4km 정도 길이였다. 광장 트랙으로 치면 6바퀴 돌면 끝나는 길이다. 단, 쉬지 않고.


 주머니에 보리차를 꼭 쥐고 달리는 속도에 맞춰 뛰었다. 그런데 1바퀴도 안 돼서 힘이 들기 시작했다. 체력은 숨기도 싶어도 숨길 수 없어서 결국 1바퀴까지 돌고 나서 조에서 빠져 맨 끝에서 혼자 달렸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 그냥 내 페이스대로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달리니 즐겁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달리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진 분이 따라오셨다.


 운동을 하던 사람이랑 아닌 사람이랑 다른 거라고 운을 떼시며, 괜찮다고 점점 늘 수 있다고 다독여주셨다. 그러면서 오늘 목표는 3~4바퀴가 적당할 것 같다고 본인 페이스대로 뛰다 가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오히려 체력 차이가 크게 나서 자괴감 들어 그만두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까 봐 걱정이라고 하셨다. 내가 그렇진 않고 꽤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다시 조로 돌아가셨다.


 혼자 뛰려니 달리다가 걷다가 다시 달리다가 걷다가 중구난방으로 달리게 됐다. 그래도 어떻게든 달려보려고 힘을 내보았다. 아까 사둔 보리차가 구원의 물 같았다. 그렇게 40~50여분이 지났고 원점에 도착했다! 해냈다. 내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내가 처음 들어간 조가 보였다.


"저희 마지막 바퀴예요!"


 나를 향해 말하시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들어오길 기다리며 남은 보리차를 다 마셨다. 머지않아 하나 둘 원점에 들어왔다.


"그래도 잘 뛰시던데요?"

"하하."


 괜히 멋쩍어 웃기만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일어나서 다 같이 마지막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단체 인증샷을 찍고 인사하고 깔끔히 헤어졌다.


 학교로 돌아오면서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체력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내 페이스대로 달릴 수 있다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아직은 여기서 꼴찌지만, 체력을 키워서 같이 달리고 싶었다. 어린 친구들과 대학을 다니는 나로서는 내 또래와 함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주 1~2회는 꼭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숙사에 도착했다.




 한편, 수업이 끝나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데, 받아야 될 것 같아서 받았더니 지도교수님이셨다. 한 번쯤 찾아뵐려고는 했는데 먼저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다.


똑똑.


 지도교수님 방에서 한 시간여 열심히 수다를 떨었는데 처음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졸업한 대학 전공이 뭐였는지, 무슨 일을 했었는지, 대학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앞으로 어떤 걸 하려는지 궁금해하셨다. 나의 이런저런 답변에 하나하나 응원해 주셨다. 다른 걸 하다 온 친구들은 매력이 있다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이전에 물리치료학과에 어떤 친구들이 왔었는지, 어떻게 됐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서 응원에 힘을 보태주셨다.


 나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멋진 삶의 선택들을 들으며 괜스레 힘이 났다. 종종 갈팡질팡하게 되는 나의 고민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된 것 같았다. 겉으로는 1학년으로 같아 보여도 다른 부분이 명확히 있다는 걸 교수님은 아시는 것 같았다. 그냥 나만의 길인 거구나.


 나는 개강하고서 1학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친구들이 싫어서라기보다는 학교 외의 시간에 나는 다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 외의 '4년'의 잉여 시간을 잘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명확히 오지 않아 고민으로 남겨두었었다. 3월 초에는 이전에 대학 다닐 때처럼 아르바이트로 채우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르바이트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할 체력도 없다.


 그런데,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그렇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꺼내보는 과정에서 나만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작은 확신이 들면서, 작은 용기도 생기기 시작했다. 남은 잉여 시간들을 잘 쓰기 위해 러닝크루를 잘 참석하면서 체력도 기르고, 당장에 여윳돈은 있으므로 쇼핑몰을 열어보고 싶다. 배우는 건 어렵겠지만 하나씩 미션을 깨나다가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이전에 대학 다니고 휴학하면서 찔끔찔끔 관심 갖고 배웠던 것들이 이커머스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제야 용기 내서 시작해 보려는 거지만. 사실은 최근에 지원한 알바가 다 떨어졌다. 허허. 알바가 안되니까 오히려 쇼핑몰에 대한 용기가 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전화위복 같은 걸까나. 그래서 수업 끝나고 와서 하루종일 이커머스 기초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은 좀 프리하게 보냈다. 오랜만에 '나 혼자 산다' 정주행을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 유튜브도 많이 봤다. 낮잠도 많이 잤고. 할 게 있긴 했는데 당장 급한 건 아니라서 하지 않았다. 푹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자주 느끼는 게 아니므로 그냥 푹 쉬었다.


 대전에 혼자 내려오니까 때때로 모든 것에서 'OFF'가 되는 시간들이 있는데 그 시간이 고요하고 너무 좋다. 낮잠을 자도 되고, 예능을 봐도 되고, 영화를 보고 와도 되고, 노래를 들어도 되는 자유로운 시간이 행복하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재밌고 즐겁지만 혼자 있는 시간들도 요즘은 참 좋다.


 평일 중에 한 번 더 러닝을 하고 왔는데, 이번에는 다른 운영진 분과 같이 뛰게 되어서 중구난방 뛰지 않을 수 있었다. 느린 속도로 일정하게 호흡하며 뛸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잘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감사했다. 총 5바퀴나 달렸다! 물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번 주말은 과 MT를 간다. 이것도 갈지 말지 정말 고민 많이 했었는데 그냥 가기로 했다. 재밌을지 아니면 간 걸 후회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1~4학년까지 모두 온다고 한다. 헤엑. 인원이 내가 가본 MT 중에 역대 최대 인원이다. 다들 참여도가 참 높은 것 같아 신기했다. 바다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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