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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Mar 09. 2024

과연 생각했던 대로 될까요?

20대 초반 친구들의 엄청난 텐션

 개강 전날인 일요일 오후 2시 즈음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은 난생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정말 컸고, 사람도 와글와글 많아서 괜스레 여행 온 기분까지 들었다. 찰칵찰칵. 대전역에 도착했으니 인증샷을 여러 차례 찍어보았다.


 그리고 오후 3시에는 학교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헤매다가 겨우 타고 오후 3시 반에야 버스에서 내렸다.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하얀 가죽 가방 하나를 매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입사 확인을 받고 호실을 배정받았다. 룸메이트가 이미 와있을 줄 알았는데, 짐만 두고 나간 듯 보였다. 나도 짐을 풀고 바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너무 배가 고팠다.


 가볍게 햄버거를 하나 사 먹고, 피자헛 업무방에 나름의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카톡방을 나왔다. 진짜 진짜 안녕. 문득 혼자 대전에 내려와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학교 근처를 둘러보러 돌아다니다가 기숙사에서 필요한 용품들을 잔뜩 구매했다. 3만 원 넘게 쓴 것 같다. 그날 바로 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짐을 한가득 들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 무거워서 내려놓고 싶을 때즈음 도착했다. 삐비빅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룸메이트도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언제쯤 도착하신 거예요?"


 서로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먼저 말을 건네보았다. 짐을 정리하면서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느 과인지 등등 서로 본의 아닌 호구조사를 하게 됐다. 알고 보니 22살이었던 룸메이트는 정말 귀여웠고, 웃으면서 조잘조잘 말하는 게 참 매력적인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워, 잘 부탁해! 짐을 다 정리하고서 잘 시간이 한참 남아 가볍게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둘 다 참 심심해했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꽤 재밌었다. 그렇게 일요일이 맹숭맹숭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 나보다 2시간 앞선 수업이 있던 룸메는 먼저 준비하고 강의실로 향했다.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 긴장반 설렘반으로 준비하고 문을 나섰다. 처음은 어색해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강의실에 도착하니 앞 수업이 덜 끝났는지 신입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음 저긴 들어갈 수 없겠어. 일단은 복도 의자에 앉아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강의실에 우르르 들어갔다. 두리번거리다가 앞자리이면서 맨 오른쪽 가에 앉았더니, 뒤에 들어온 2명의 친구가 내 옆자리에 붙어 앉았다. 그리고 말을 걸어왔다.


 20살 친구들이었다. 29살이라고 하니 약간 놀란 듯 보이더니, 금세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며 친근하게 굴어주었다. 어제처럼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역시 대화는 나이가 아니라 사람을 타는 건가 보다. 인스타 맞팔을 맺고서, 첫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었다. 이 친구들도 MBTI 이야기 꽤 좋아하는구나. 너무 귀엽고 얘기하다 보니 웃겼다. 전공은 당연히 같이 듣지만, 교양 분반까지 같아서 이번 주 내내 같이 다녔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아 그런데 개강 첫 주 수업들이 OT라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열정적인 교수님들 덕분에 꽉 채운 수업들을 들었다. 이건 이 학교만의 특징인가 보다. 쉽지 않네.


 개강총회와 신입생 환영회에 가보니 동기 중에는 21~25살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제일 많긴 하다. 허허. 술자리에서야 조금씩 동기들 얼굴을 익힌 것 같다. 그리고 2, 3학년 학생회 선배들과도 얘기를 나눠봤는데, 사소한 꿀팁들을 좀 얻었다. 그중에 첫 번째는 '학생회는 해야 좋지만 나는 안 하는 게 좋겠어.'라는 결심을 서게 만든 것과 두 번째는 중국어 교양 수업을 들으면 더 좋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1학년 전공과목도 쉽진 않지만 2학년부터는 역시 빡세지는구나 싶었던 것.


 중국어 자격증으로 교양을 대체할 생각이었는데, 그런다고 학점을 인정해주진 않아서 어차피 그만큼 다른 교양으로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럴 바엔 중국어를 듣고 성적을 받아가는 게 더 낫다고 추천한다는 거였는데. 흠.


 그리고 문과를 졸업한지라 '물리', '생물', '화학'의 기초 지식이 없으면 전공과목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수능 준비할 때 '물리'를 개념이라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물', '화학'은 고등학교 때 들었었고. 다만, 과연 얼마나 기억할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다. 걱정되는군.


 게다가, 학생회 지원을 포기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술자리가 아닐까 싶다. 공부도 버거운데 다른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싶어서다. 물론 학생회를 가면 학과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뽑힐 확률이 높다고 하기는 했다. 그래서 탐은 났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여하튼 신입생 환영회에서 얻은 것도 있고 동기들을 더 알게 된 것도 있었지만, 술 마시는 게 조금 힘들었다. 너무 대단해 다들! 20대 초중반 친구들의 엄청난 텐션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이전에 대학을 다닐 때는 분위기도 잘 타고 꽤 마시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닌가 보다. 사실 대학교가 아닌 사회로 치면 내 나이가 어린 나이긴 하고 그런 나와 같은 또래 분들 중에 술을 좋아하고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E 성격을 가진 것과는 달리 잔잔한 분위기의 술자리를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하므로 더욱 그 텐션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술자리가 2차로 넘어가고 거의 파할 때쯤, 나는 몇몇과 함께 조금 일찍 기숙사에 들어왔다. 휴. 그래도 2차까지 갔다 왔다. 피곤한 채로 씻고서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막막한 기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미래에 내 선택을 잘했다고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들어 조금 우울해졌다. 그래도 사실 힘든 건만 있던 건 아니었는데. 대학을 들어온 걸 축하받았을 때 왠지 뭉클했고, 함께 수업을 들을 때, 같이 밥 먹을 때, 학교 주변을 구경 다닐 때 꽤 즐거웠으니까. 괜찮다고 다독여보며, 그냥 적응해 보는 거지 뭐.


 금요일에는 가족들이 대전에 놀러 왔다. 교양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 고깃집에서 만났다. 무한리필 집이었는데 신이 나서 2시간 동안 열심히 구워 먹었다. 그간 있었던 얘기를 하며. 재잘재잘.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 고깃집 아르바이트 할 때 배운 [육즙 빠지지 않게 굽는 법]을 떠올리며 고기가 떨어지기 전에 리필하고 또 리필하며 계속 구웠다. 좀 잘 구웠다.


 다 먹고 나서 아빠 차를 타고 성심당 본점으로 넘어갔다. 가자마자 줄부터 섰다. 그곳에서 거의 4만 원가량의 빵을 산 뒤에 성심당 문화원에서 아아까지 먹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줄이 너무 길어. 그래도 먹을 땐 행복한 걸. 맛있기도 하지만, 성심당은 가성비가 너무 좋다.


 가족들은 오후 7시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갔고, 나는 기숙사에 돌아와서 당일 가족들이 가져다준 큰 짐들을 정리했다. 혼자 내려오면서 못 가져왔던 옷들, 각종 잡동사니들, 나의 비상식량들을 갖다 줘서 차곡차곡 수납장에 잘 정리했다. 서랍을 채우고 나니 든든하고 뿌듯했다. 씻고 나서 노래를 좀 틀어두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가며 글을 써 내려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즐거웠던 시간들을 보냈음에 감사했던 한 주.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앞길이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져 힘들었던 한 주. 평소 새벽 2시 즈음 잘 때가 많은데 이번 주는 12시만 되면 곯아떨어졌다. 너무 생각하느라 애쓰지 말고 그냥 즐겁게 지내봐야겠다. 다음 주는 본격 수업이 시작되니 잘 듣고 필기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푹 쉬고 나서 러닝을 시작해볼까 한다. 살을 좀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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