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왕 할 거면 재밌는 걸 하고 싶어
취준 할 당시에 은행 쪽으로 준비하고 있었어서 데이터 분야와 경제 자격증 2가지를 공부하고 있었다. 비록 기업은행 하계 인턴은 떨어졌으나, 21년 6월 공공데이터 인턴에 합격했고 감사하게도 높은 순위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관광공사 중에 고민하다가 집과 더 가까운 인천관광공사 경영지원팀에 지원했다. 7월부터는 관광공사에서 데이터 인턴 일을 하면서 AFPK 자격증 취득까지 마무리했다. 시간이 없어서 오전 6시, 7시에 일어나고 오후 10시, 11시에 하루가 끝나는 일정이라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취득하고 나니 왠지 든든했다. 하지만 9월 초 신한은행 등에서 떨어지면서 금융 관련 분야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흥미가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뭐라도 해야 덜 불안하던 시기였던지라 내가 할 수 있는 취업 방향으로 정하고 공부했던 거였는데 그런 이유로 내 앞으로의 10년, 20년을 흥미 없이 겨우 겨우 살아나가는 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의료' 분야로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의료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뭘 하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불안은 안고 가는 것일 텐데, 힘들더라도 의미 있고 내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걸 진로로 정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12월까지 인턴 일을 마무리하면서 대졸자전형, 편입, 수능 여러 방면으로 한의학, 간호학, 물리치료학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졸자전형은 전문대만을 노리는 경우 준비하는 것 같았고, 나의 경우 한의학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다. 편입은 해본 적이 있어서 도저히 다시 할 엄두가 나진 않았고, 한의예과를 못 들어가더라도 간호 혹은 물리치료를 갈 수 있는 수능 쪽으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끝을 내고 싶어서 메가스터디도 끊고 수능 기초 수학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간 취준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들,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생긴 것들 때문에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인 게 느껴졌다.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필라테스도 시작하고, 치과나 정형외과도 다니면서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숨 쉬어간 뒤에 수능 기초 공부를 이어나갔다.
수능 기초를 떼면서도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마다 중간에 공무원 준비를 고려했던 적이 있지만 성격상 공직에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관광공사에서 보고 듣는 게 때로는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사무 업무가 위주인 일들은 때때로 지겹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아가면서 공부를 이어가다가 22년 9월부터는 모아둔 돈도 떨어지고 사람 만난 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 주말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 지원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집 근처 피자헛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지만, 매장직 근무를 하는 건 꽤 재밌었다. 홀서빙 위주가 아닌 주방보조여서 그랬던 것 같기도. 그러다가 어느새 11월이 되었는데, 11월 중순에 엄마가 사랑하는 외할아버지, 나의 포근한 외할아버지께서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말았다…